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4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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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모순과 아이러니의 시인, 이명의 작가.

1900년대 초라는 시대에 대한 감각이 대한 제국 기준인지라 아무래도 그 시절의 페소아라는 시인이 대단해 보임은 어쩔 수가 없다.

그에게는 왜 그 많은 이명들이 필요했을까.
시대와 맞물린 분열적인 어떤 정신이었을까.

언제고 곱씹어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시집.


-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그래, 이것들이 내 감각들이 혼자서 배운 것들이다.
사물들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존재를 지닌다.
사물들의 유일한 숨은 의미는 사물들이다. - 양떼를 지키는 사람 중

-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이것이 내가 매일 하는 발견.
저마다 있는 그대로의 그것,
이것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어렵다,
이것만으로 얼마나 충분한지도.
완전해지려면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때로는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것 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
한번은 누가 나를 유물론자 시인이라고 불렀다,
나는 감탄했다, 한 번도 나를
무언가로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나는 시인도 아니다, 단지 볼 뿐. -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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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견 ㅣ 테이크아웃 15
임현 지음, 김혜리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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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과 작품 속의 이야기가 매우 설득력있다.

맹목의 무엇은 언제고 상황이 달라지면 그 반대의 무엇이 될 수도 있지.
정의라는 것 말이다. 하나로 규정지어 놓았으나 어느 경우 가변적인 것.

억울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작은 목소리에 대한 경각심을 잠시 갖게 된다.
짧지만 강하게.

-내가 보는 것을 모두가 함께 보는데 그래서 이것이 개라니요, 당신이 설명하는 것은 고양이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되묻습니다. 누군가는 화를 냅니다. 대부분에게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다릅니까. 자기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왜 맞는다고만 우기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지점에서 긍정하는데도 왜 나만 틀립니까. 우리는 이제껏 같은 말만 하는데 왜 하나는 잘못되었다고 합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맞을 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왜 한 번도 그걸 의심하지 않나요. 진짜는 내가 보지 못한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을텐데, 그럴 수도 있지요. 내가 잘못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다들 그건 말하지 않고 내가 보는 것을 그대로 보면서 나만 틀렸다고 합니까. 왜 나만 그렇습니까. - 38

-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제들도 그런 종류의 것이지 않을까. 명백하고 더 의심할 바 없는 일들조차 실은 우리가 그냥 그렇다고 믿어 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나는 매우 자주하는 편이고, 그런 것 중 어느 것은 무언가를 쓰게 한다. - 작가 인터뷰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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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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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김연수의 작품 3개가 좋았고, 그 외엔 딱히 와닿는 작품이 없었다. 이효석 문학상이 어딘가 나와 맞지 않나 싶게.

특히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매우.
수리탐구영역 같은 뉘앙스의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인간들의 관계에 관하여. 어느 틈엔가 벌어져 버린 그런 사이에 관하여.

단편들이 잘 읽히는 시즌이고, 이 참에 많이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시간이 뜻대로 나질 않고 괜히 바쁨의 감각으로 살고 있다. 더 읽고 싶다.

- 낮달을 오래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 했고 문득 자신의 페인팅에서도 색과 기운을 조금씩 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세지지 말자 그런 생각.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빛나지 않아도, 선연하지 않아도, 쨍하지 않아도, 지워질 듯 아슬해도 괜찮다고, 겨우 간신해도...... 그런 생각 끝에 그는 마치 그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라도 한 듯 여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 10, 모르는 영역, 권여선

- 순간 다영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고, 그게 그러니까...... 한 번은...... 한 번은 해도 됩니까 묻던 다영의 말이 식당 여자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그는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자갈 위에 주저앉았다. 과연 그렇다. 왜 한 번은 해도 되나? - 28, 모르는 영역, 권여선

- 거기에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가 있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 만의 세계. 하루에 일 만톤에 가까운 네이팜탄과 칠 백톤이 넘는 폭탄이 떨어지는등 종일토록 불비가 쏟아져 평양 곳곳이 불타오르던 순간에도 기행은 적개심 가득한 문장을 통해서만 그 잔인한 세계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던 집도 불타버리고, 빼곡히 꽂혀 있던 책이며 은은하게 풍기던 커피 향내 같은 것이 모두 사라지고, 아내와 어린 것들과도 헤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문자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자들을 쓰거나 읽을 수 있어 그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 179, 그 밤과 마음, 김연수

- 아침이 되어 재를 치우느라고 난로 아래쪽의 재받이통을 꺼내니 타버린 종잇조각들이 있었따. 혹시나 해서 손끝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니 글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비비니 종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기행은 무척 기뻤다. 자신이 쓴 글자들이 강철이나 바위 같은 것이 아니어서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쉽게 타버려 ㅓㄴ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 191, 그 밤과 마음, 김연수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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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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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에도물은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전래동화, 기담 형식의 이야기지만, 소시민의 삶과 그들의 윤리가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있다.
요괴, 원령이 등장해도 오싹한 공포가 아닌 애틋한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

현대물도 좋지만, 에도물을 읽을 때 훨씬 즐겁다.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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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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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염세적이고, 음울한 이야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는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뭔가 상당히 뒤틀려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만하면 좋을 지점에서 네번쯤 더 뒤로 밀어내는 불편함.

책 제목 그대로다 모두가 부서진다.

판단은 유보.

- “아는 사람이었니?”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니?”
마리안느는 선로에 핀 꽃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수를 열어 대답했다.
“사랑 때문에, 라고 했어요.” - 48, 마르첼리노, 마리안느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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