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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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사망한 작가 헨리 제임스. 한국사 연표에 비교해 보면 정말 아득한 시절의 작가인데, 무척 현대적인 느낌의 소설이다.

초현실적인 현상, 인간의 아수라같은 심리, 규정하기 어려운 선과 악의 경계, 드러나지 않은 비밀들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이야기다.

전임자가 이루어 놓은 아름다운 아이들과의 공고한 세계에 들어가려는 주인공은, 그들의 신뢰에 질투를 하고, 앞선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과 소유욕, 완벽을 향한 편집증으로 불행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된 모든 것위에서 스스로 파멸한다.

아이들을 세계로부터 단절시키려는 행위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아이들은 결국 자란다. 어린아이가 이야기의 주체가 될 때 언제나 충분히 예견되는 불안의 요소다. 언제나 후대는 세계를 부수고 성장한다. 그를 저지하려는 애처로움은 독자에게 연민과 조소를 얻게 될 뿐 아닐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존재하는 듯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다중적인 심리를 부각하고 덕분에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읽기가 된다. 과대망상에 빠진 선생이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이지만, 애초에 이 판을 기획하는 자와 불행한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을 방관하는 블라이 저택의 사용자들도 신뢰할 수 없다.
개인의 맹목적인 도덕적 믿음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타인의 불행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실이 가장 크게 보였다.

단순하게는 심리 스릴러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요소들이 다채롭고 매력적이다.

- 만일 어린아이 하나가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낸다면, 어린아이가 둘일 경우 어떻게 되겠어요? - 8

- 생각해보니 내가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군요. 매혹을 당하려고. - 24

- 나는 동료와 함께 끝까지 일을 견뎌내려고 했으며, 분명히 뭔가에 홀려 그런 노력에 수반되는 파장과 함께 무척 힘든 관계를 쉽사리 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몰입과 동정이라는 거대한 물결 위로 높이 솟아올랐고, 무지와 혼란과 자만에 빠져 세상 교육이래야 겨우 걸음마 단계를 밟았을 뿐인 이 사내아이를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 37

- 나의 일을 막중하고도 단순하게 여긴다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칭송하기까지 했다고 고백하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고곳에 있었으며, 아이들의 가련한 처지가 갑작스레 너무나 뚜렷이, 이들에게 헌신하려는 내 마음에 깊고 지속적인 아픔이 되었다. 우리는 실로 세상과 단절되어 함께 위험 속에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드레게 나밖에 없었고, 나에겐 그들만이 전부였다. - 68

- 그 아이들은 지금까지 착한게 아니었어요. 겉으로 나쁜 짓만 하지 않았을 따름이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건 쉬운 일이에요. 아이들은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아이들은 내 소유도, 우리 소유도 아니에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소유랍니다! - 113

- 어떤 것도 선생님의 지금 태도보다 우아할 순 없겠죠. 우리가 지금 응당 외롭다고 한다면, 가장 외로운 편은 선생님이 될 테니까요. - 188

2018.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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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 ㅣ 테이크아웃 20
김이환 지음, 박혜미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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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오염으로 폐쇈된 지역으로 자살을 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사는 등장하지 않으니 그들의 죽음의 이유나 당위를 알 수는 없다. 뭐... 타인의 죽음에 대해 당위를 따지면 무엇하나 싶긴 하지만.

어찌됐든, 주인공이 그 길 중에 어린아이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는 부분은 오묘하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면서 대체 왜?
나는 죽지만 너는 살아라. 그런 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보다 우울해 지는 이야기.

- 나는 사람을 구하러 온게 아니야, 죽으러 왔지. - 16

2018.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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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1
이현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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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가 풀어놓은 양들이 나의 여름 속에서 풀을 뜯는 동안은 삶을 잠시 용서 할 수 있어 좋았다 - 양들의 침묵 중

-밤을 부르러 가는 저녁의 뒷모습은
상처받은데도 없이 다리를 절었다
우리의 체온에 실망하지 않으려고 짐승은
보통의 표정을 지킨다 - 보통의 표정 중

- 다 버렸는데도 남아서 아픈 마음에 대해
번번이 나는 의문을 희망으로 착각하는데
너는 진즉 깊은 사료를 마쳤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털을 고르고 있다, 결백한 피조물의 모습으로 - 악마인가 슬픔인가 중

마음의 방황, 정처없어, 어딘가 안착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방황이 시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2018.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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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발 살인사건 ㅣ 코니 윌리스 소설집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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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것이다! 라고 쟁여둔 코니 윌리스만 4권인데, 드디어 첫발을 뗐다.
그리고 무척 마음에 든다. 소소한 사건들 안에 담긴 따뜻한 정서랄까 하는 것들.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도, 부록으로 실린 추천 영화 도서도 좋다.

고양이 발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에 홀려 샀는데, 역시 고양이로 낚으면 성공률 높게 낚이고, 좋아하게 되는 마법이란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말미에 실린 추천영화에 <스포트라이트, 2015>가 있어 봐야겠다 새삼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추천 영화라는 것도 킬링 포인트. ㅋㅋ

- “당신은 사람이 진실한 말을 듣고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믿지 않나요?”
“저는 스크루지가 너무 쉽게 변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말했다. “살면서 제가 만난 스크루지들과 비교해보면요.”- 21, 말하라, 유령

- 그건 희망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 모양이지만 어떻게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려는 결심이었다. 소공녀가 추운 다락방에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나는 즐겁게 지내다 올게.” 아이는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 다시 말했었다. 그 말은 나를 한꺼번에 꾸짖고 상기시키고 교훈을 주었다. 그리고 위로했다. - 47, 말하라, 유령

- 나는 문앞에 서서 투페가 나더러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고 말했더 것을 떠올렸다. 그는 틀렸다. 누구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으므로. - 128, 고양이 발 살인사건

- 요즘같은 리부트와 리메이크의 시대에도, 지난주보다 오래된 작품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 136, 절찬 상영중

2018.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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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 단편집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백신애 지음, 김문주 엮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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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언어로 쓰인 말이라 낯설지만 입말로 해보면 충분히 쉽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인용을 올
리는 부분에 있어 기술적인 문제로 안타깝지만 나름의 번역으로 인용한다.

<나의 어머니>
- 연습을 시키고 있는 나는 아직 예전 그대로의 완고한 시골인만큼 일반에게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여러가지로 완고한 시골에서 신여성들의 취하기 어려운 행동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른 위원들과 같이 여러번 토론도 하여보았으나 내가 없으면 연극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는 다른 위원들의 간청도 있어서 나는 끝까지 주저하면서도 끝까지 일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 3

- 보통학교 교원으로 있던 내가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일조에 권고사직을 당하고 나서는 그대로 할 일이 없으니 부득이 놀 수밖에 없이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먹고는 식구가 단촐한 얼마 안되는 집안일이 끝나면 우리 어머니의 말씀마따나 빈둥빈둥 놀아대인다. 어떤 때는 회관에도 나가고 또 어떤 때는 가까운 곳으로 다니며 여성단체를 조직하기에 애를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또는 밤이 새이도록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을 하는 것 뿐이다. 한푼도 벌어들이지 못하지마는 어쩐지 나는 나대로 조금도 놀지 않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종종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 어쩌느냐!’고 벌이 없는 것을 한탄하시기도 한다.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까운 재주가 쓸데 없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생각이다. - 4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근대적 여성관을 떨치지 못한 시대에 신여성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답답한 심경이 담겨있다. 시대를 앞서 뛰어난 지성과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재능인가 생각한다. 그 생각의 끝은 자조가 아니라면 좋겠다. 편이기를 바라고 충분히 편이 되줄 수 있는 이들에게 비난받는 당시 여성들은 얼마나 외롭게 그 자리에 서있었던 것일지.

<꺼래이>
- 그저 순이들은 바람맞이에서 까물거리는 등불을 두 손으로 보호하듯 냉각해진 몸둥어리 속에서 까물거리는 한 끼의 ‘삶’이란 그것만을 단단이 안고 무인광야를 가듯 웅크려질 대로 웅크리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쩔룸쩔룸 걸어갔습니다. - 23

- ‘꺼래이’라는 그 귀에 익고 그리운 소리가 그때의 순이들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말 같았습니다. - 30

무력하게 신세한탄만 하는 무리 중 용기를 내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 ‘순이’. 그들의 고난과 차별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냐마는, 온 몸이 시린 기분이다.

<적빈>
- 자기도 예 세월 같았으면 너희들은 감히 나의 집에도 만만히 못 들어올 상놈들이다 하는 뜻을 암시하여 양반자랑을 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다- 우스운 일이었다. ‘돈 없고 가난하면 지금 세상은 이런 것’이라 하는 것만은 날이 갈수록 더 똑똑하게 알리어질 뿐이었다. - 58

극단의 가난이 인간을 어떻게 야만적으로 만드는지. 문학에서 종종 비춰지는 가난의 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경우라면 왠진 다르게 느껴졌다. 왜일까? 여성 작가가 그려낸, 가장 밑바닥에서 고스란히 모든 피해를 떠안는 여성의 이야기라서 일까 생각했다.

<광인수기>
-내 이놈 하느님아, 얘이 빌어먹을 개새끼같은 하느님아.(...) 저 빌어먹다 낮잠 잘 하늘님은 저를 위해주고 겁내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건방이 늘고 심술이 늘어가드라.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 - 81

- 아예 당초에 인간이란게 공부를 잘못하면 제 행동이 옳든 그르든 간, 아니 아무리 틀린 일이라도 교묘하게 이론만 갖다붙여서 그저 합리화하려고만 하는 재주만 늘어갈 뿐인 것이라오. - 108

미친 여자의 넋두리라 위장한 통렬한 가부장제의 비판이다. 어딜봐서 이 여자가 미친 여자일까. 세상이 억울해서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뿐.

<아름다운 노을>
- 울지 말어요, 사람의 삶이란 괴로움이란 것이야요, 괴롬이 즉 삶이란 말이지요. - 123

성별과 연령 반전의 비극 로맨스랄까. 여성 문인이 드문 시절이라도 이러 시도가 없으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막상 보니 반갑다. 비극이라도......

빈궁문학, 현실주의문학, 여성주의 문학이라...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좀더 이 시기의 여성주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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