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애정하는 작가.
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시니컬하고 어른답고 반면 어른답지 못하면서 뭔가 차별화되는 비범함이 있고 비밀스럽지만, 구지 무엇인가를 은폐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유머를 잃지 않는 캐릭터들이라서 편한한 점도 있지만,
이데아며 메타포며 상당히 시각적으로 쉽게 캐릭터화해버려서 그게 좀 웃기는 지점이랄까.
조금 늘어지는 묘사가 지루하게 만드는 포인트이고, 아무래도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그냥저냥이네..라는 감상을 남길 수도 있겠다.
내가 원한 것, 혹은 필요로 한 것은 그곳에서 긍정적으로 반짝이는 의지였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확고한 열원 같은 것이었다. 내겐 무척 친숙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었다. - 49
숲의 정적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 369
하얀 저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늘 저녁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꿈속에서 겪은 일처럼 느껴졌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정상이 아닌지, 뭐가 현실이고 뭐가 현실이 아닌지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야, 기사단장이 귓전에 속삭였다. 두눈 똑바로 뜨고 봐두게나. 판단은 나중에 하면 돼. - 474
선생님은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리에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고마워. 나는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무척 용기가 생기는구나.
선생님도 용기가 필요해요?
물론이지. 용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야. - 538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른다 해도.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 425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ㄹ. 내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날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고, 나는 먼지투성이 코롤라 왜건을 몰아 산머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584
2017. j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