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 없는 두나 ㅣ 창비시선 542
김상희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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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 루꼴라 재배 일기부터 아! 내가 딱 좋아하는 무드다!!라는 기쁨.

넘어지고, 놓치고, 뛰고, 구른다.
바쁘게 죽어간다.
그리고 애써 모르는 척하는 얼굴이 있다.
희망은 어렴풋하다.

- 생략할 수 있는 것은 다 생략하게 된다
괜찮다는 말이나 몇 통의 부재중 전화에 대한 답신이나 우리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이나 - 루꼴라 재배 일기

- 지구 가장자리에 서서 생각한다 무엇인가 지나가고 있다 달라지고 있다 그 언니의 느린 인사와는 관계없는 서글플 만큼 어린 소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지구적인 면모를 갖춘 소녀다 나를 보며 웃을 줄 아는 소녀다 그 뜀박질에는 능력이 없다 의식도 없다 그저 지나갈 뿐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인데 나는 가장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소녀를 바라볼 뿐이다 행동이 없는 감정이 볼을 찢고 흐른다 - 지구적인 면모

- 이 몸을 선택해야겠다
하나만 잊을 수 있다면
영혼을 엎질러진 차처럼 흘러가게 둬야지
조금도 닦지 않고 스며들게 해야지 - 빈잔

- 태어나 쓸모를 다하는 것들
그래서 차갑고 외로운 것들 - 빈잔

- 어젯밤 그는 계속 걸었다
구겨진 채로 걸었다
교차되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너무나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였다 - 무심코 발견되는

-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지
그들이 지닌 애틋함이 좋았다
등뒤에 죽은 자신을 업고
산을 오르는 사람의
정상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얼굴이 - 마음 오르기

- 이제 교복은 맞지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이렇게 늙어버리다니 - 늙은이로 보내는 밤

- 나는 여러번 접었다
접을수록 질겨지고 볼품없어지는 것을
버리지 않았다 - 이 여름의 설계도

-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우림
이 행성에서 가짜인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것처럼
고정된 세계 - 홀로그램 되기


2026. aug.

#두나없는두나 #김상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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