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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평점 :
체제의 탄압을 받던 작가 ‘나‘는 가정부 에메렌츠의 헌신으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한다. 에메렌츠의 헌신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온 마을에 주어지는 선물같은 것이었다.
자신은 철저하게 닫아놓은 채로 존재한 에메렌츠는 나의 성공과 맞물려 강제로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두 여성의 관계는 고용인-피고용인이기도 하고, 딸-엄마이기도, 친구이기도 하지만, 뭐라 규정할 만한 특정한 용어가 없는 무엇이다. 사람간의 신뢰, 유대같은.
이런 모호함은 감정표현에 인색했던 두 여성이 보여주는 감정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독자의 탓일지도 모르겠다.
예견되어 있던 에메렌츠의 비극은, 시대가 알아채지 못한 트라우마를 방치한 결과이다.
자의로 결정할 수 없었던 죽음 앞에서 최소한 지키고 싶은 자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작가는 어떤 글을 쓴것일까.
조르바의 건너 편이라든가, 여성화라든가 하는 평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이 아닌 두 여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이다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다가, 아 됐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성녀의 이야기인가 싶으니까.
큰 감동까지는 아니라고 기대한 바가 확실히 있어 고른 책인데, 그에 미치지는 못했고, 다만 존엄한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이 어수선해지는 이야기다.
- 손님들이 반문할 거라고 알리거나, 예기치않게 누군가가 방문할 때면 그녀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그럴 때 나는 주로 그녀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바로 나의 집에서, 내가 이름도 없이 지낸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메렌츠에게는 내 남편에 대한 호칭만 있었을 뿐, 그녀에게 나는 여성작가도,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의 삶에 마침내 내가 자리매김하기 전까지, 그녀의 관계망 속에서 내가 누구이며, 나에게 적합한 호칭은 어떤 것인지 그녀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그 기간 동안, 나에 대해서는 그 어떤 호칭도 없었다. 물론 어떤 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인가에 대한 파악없이는 그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기에, 이 경우에도 그녀가 옳았다. - 19
- 누군가에게서 모래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저지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죽어가는 그에게 당신은 삶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으니까요. - 145
2019. 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