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심드렁하고, 타인을 신용하지 않으며 세상의 불합리에 분노하는 자기연민에 빠진 화자들이 등장한다. 어찌보면 성욕이 배제된 홍상수적 캐릭터, 다자이 오사무적 캐릭터 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무쓸모함을 툭툭 내뱉는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다.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의미 없이 요상한 심드렁 흡인력이 있는 단편들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언젠가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공부를 계속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책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뒤엔 죽은 걸들이 있었으니까. 살아 있는 것들은 바깥에 있고 이 안에는 늘 죽은 것들이 있었다. - 13, 레바논의 밤- 우리의 삶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우연이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말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이 생겨난 이래 일어난 모든 일은 우연이다. 이 간결하고도 명백한 명제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 86, 여름의 궤적- 우리는 이미 엎어져 이쓴 쓰레기통에, 그것도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는지도 몰라. - 121, 음악의 즐거움- 내가 영화감독이나 건축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진취적인 목표가 없었다. 그저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게 나의 소망일 뿐이었다. - 142, 특히나 영원에 가까운 것들- 나는 곧잘 지겨워하는 편인데 어느 정도냐면 벌써 인생에 질려버렸다. 사는 건 참 지긋지긋한 일이다, 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 작가의 말 중2019. j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