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쩜 산문도 김애란 이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마음을 툭 건드리는.
너무 반갑고 좋아서 천천히 읽었다.

자주 쓰인 ‘단정한’이라는 단어가 작가 김애란을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일것 같다.

성장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충만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불행하거나 부족하게 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좀 낯선 느낌이었다. 왤까?


-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 12

- 죽는 것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던 시절. 정말로 용감하기 보다 죽음이 너무 멀어, 죽음이 추상이라 깔봤던 때. 나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삶을 업신여기는 방식으로 삶을 만끽하며 젊음을 누렸다. - 16

- 단지 모두가 ‘키 크는 무렵’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돌이켜보면 이렇게 아련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건 아마 그때 내 예민한 살갗위로 내려앉은 햇빛과 바람을 먹고, 서툴고 어색하게 주고 받은 눈빛 안에서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24

- 너를 안고 나는 내 팔이 두개인 것을 알았다. 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그래, 나는 팔이 두개였지’ 중얼거렸다. 나는 곧 내 다리가 두 개인 것과 내 입술이 하나인 것도 알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다 정말 내 이름을 알게 될까봐. - 76

- 활자 속에 깃든 잔인함과 어쩔수 없는 아늑함에도 불구하고 ‘말’ 안에는 늘 이상한 우스움이 서려 있다. 멋지게 차려입고 걸어가다 휘청거리는 언어의 불완전함 같은 것이. 언어는 종종 보다 잘 번식하기 위해 보다 불완전해지기로 결심한 어떤 종 처럼 보인다. - 99

- 나는 이곳이 낙원이 아니라 기쁘다. 인간끼리 소통이 잘 안 돼 다행이고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 좋다. - 100

-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 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한다. - 124

-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 300

2019.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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