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너무 피폐하여 주변을 돌볼 손톱만큼의 여력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운이 좋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을 통과해 그 지점을 벗어나기도 하겠지만, 오롯이 나 하나의 힘만으로는 그런 운을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다.

1960년대의 20대 여성 아일린에게 그런 운이 찾아온 것일까? 어떤 변곡점이 있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빠져들었으나 아일린은 쉽게 호감을 가질 수가 없는 캐릭터다. 자기혐오와 비관으로 가득 찬 채 안으로만 움츠러들고, 세상에 충분히 두꺼운 벽을 치고 있다.
아일린의 세상은 지극히 단순한 지옥,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말하기도 싫은, 꺼려지는 속내를 툭툭 털어내어 놓는 아일린에게 그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도 된다.
가족에게도, 지역사회에게도, 스스로 에게도 감정적인 학대를 받아 뒤틀린 자아.
그 역겨운 고난의 삶을 끊어내는 것은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일린에게 어처구니 없는 사고처럼 다가온 레베카도 그렇다.

아일린은 x빌을 떠나면서 그동안의 울분을 난장판으로 풀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떠날 뿐이다. 구 세계와는 더 이상 어떤 인연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이 이상 부서질 수 없다 싶을 만큼 부서진 후에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힘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울과 몽상에서 조금 더 평온한 실재를 위해 상처입은 몸을 움직이는 힘 말이다.

아일린이 한 겹의 세계를 뚫고 나와 비로소 행복해 진다 라는 쉬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후에도 아일린은 더 두터운 벽과 더 견고한 트랩을 부수고 부숴야 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불안하고 우울하지만 결국 이제는 평온하다는 노년의 아일린이 아주아주아주 약간의 안도를 느끼게 해준다. 안도가 충분치 않다는 말이다. 충분치 않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 사람들은 항상 모든 게 괜찮은 양 행동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 괜찮지 않다고요. 사람들이 죽어요. 아이들이 굶주려요. 어딘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얼어죽고 있어요. 공정하지 않아. 옳지 않다고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얼씨구나, 조롱하죠. 우린 지옥에 있어요. 안 그래요? 여긴 지옥이야, 아니에요? - 106

- “하느님은 지어낸 이야기야.” 어머니는 우리에게 말했다. “산타클로스처럼 말이야. 아무도 너희가 혼자 있을 때 지켜보지 않아. 뭐가 옳은지 그른지는 직접 판단해라. 착한 소녀들을 위한 상이란 없단다. 뭔가 원하면 싸워서 얻어내. 바보가 되지 말고.” 어머니가 이보다 훨씬 더 마음을 담아 한 말은 이런 무시무시한 선언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느님 따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너희 아버지.” - 110

- 마침내 x빌을 떠나는 길에 나는 전혀 회한을 느끼지 않았고 혼자도 아니었다. - 364

2019. ju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