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의 일기 ㅣ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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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발 아래 다다른 노인은 더 이상 염치고 체면이고 없다.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여인을 눈 앞에 두니 인륜따위는 하찮았을지 모른다.
이 늙은이가 과연 미친걸까? 라는 의문은 금새 지워졌다. 미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사쓰코만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뿐 아닌가.

정작 이 미친 것만 같은 노인네의 바람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 며느리는 무슨 마음일까?
병든 노인네를 골려주고 싶은 나쁜 마음인가? 그런 노인네라도 연민을 가진 휴머니즘?

이 미묘한 정서의 이야기를 일본색이라고만은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니자키를 쭉 읽어오면서 퇴폐에 대한 어떤 의미를 조금 갖게 되었는데, 그런 나조차도 그 범주에 욕망에 이글대는 노인을 넣어보진 않은 것 같다. 이것도 편견이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처절하기도 하고, 그냥 변태 노인네 같기도 한 어떤 생.

다 읽고 나니. 표지가 참으로 적절하게 변태적인 포인트를 잘 담아냈다.

- 만약 지금 세상에 오덴과 같은 여자가 나타난다면 오히려 그런 여자의 손에 걸려 죽는 것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사람을 잡는 듯한 수족의 통증을 견디며 사느니 차라리 눈 딱 감고 잔혹하게 살해당했으면 한다. - 36

- 승리하여 의기양양한 사쓰코의 얼굴을 보니, 아픈 것이 몹시도 즐겁다. 말년의 거처 따위를 짓느니 이게 훨씬 더 좋다. - 88

- 어머니가 돌아가신 1928년에서 햇수로 33년 후에 아들이 이런 미치광이가 되고, 이런 손자 며느리가 자신의 집안에 들어오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하셨을까? 나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97

-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녀에게 짓밟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개에게 짓밟혀 죽는다면 그것은 견딜 수 없다. - 113

- “어때? 이 얼굴?”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늙고 추한 얼굴이군.”
나는 거울 속의 얼굴을 보고 난 다음 사쓰코의 자태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둘이 같은 종류의 생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거울 속 얼굴을 추악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쓰코라는 생물은 더욱 더 한없이 우수해 보였다. 나는 거울 속 얼굴이 더 추악해지면 사쓰코가 지금보다 더 우수해 보였을 텐데, 하며 유감스러워했다. - 117

-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 165

2019. 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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