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사랑 지상주의자의 이야기.
몰두할 무엇이 오로지 사랑, 사랑 뿐인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이고, 사랑을 모든 것의 변명으로 미화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생의 연인을 위해 ‘단지 결혼만 ‘하지 않은 채 그 여인을 기다리는 남자.
딸과 아내라는 역할 말고는 비참한 독신녀나 창부가 될 수 밖에 없던 시대의 여자.
초반에 미스터리 추리물 처럼 등장하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존재가 너무 휙 지나가 버려서 이 캐릭터는 대체 왜 등장한걸까하고 잠깐 생각했었는데, 죽음도 이겨내는 사랑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나?
다사가 원한 것과 아리사가 원한 것이 동일하다라고 느껴지질 않아 그 점에서 이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다 여겼으나, 그것은 독자가 나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해석과 사고 때문일지도.
맹목의 사랑에 평생을 의지한 사람과 자기의 삶이라는 것 자체를 평생 고민한 사람으로 달리 보였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그들이 영원히 그 배에서 내리지 않을 수는 없다. 산채로는 말이다.
영원한 항해가 없듯, 영원한 생, 영원한 사랑도 없을 것이라 믿는 나에게 이 책이 말하는 사랑은 그저 대책없는 낭만일 뿐이다. 그럼에도 매혹되어 읽었다.
투박한 정서와 시대반영, 사랑관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리라.
다만.... 나는 아리사의 어린 애인... 그 소녀의 등장 자체가 불필요했다라고 생각하는 독자다. 몹시 그렇다.
- 그들이 결혼의 대재앙을 피하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불행을 피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제때에 배웠더라면, 아마도 두 사람의 삶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때 온다는 것이다. - 51
- 그들은 느린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늙거나 병들거나 혹은 죽는 대신, 단지 시간 속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안개와 같은 다른 시절의 기억을 망각으로 여기게 될 때까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 199
-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할 유일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인생이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이었다. - 26
- 그녀는 다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종속된 생활을 하면서 양보해야했던 모든 것을 되찾고 싶었다. 물론 남편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그가 죽자 그녀는 누구인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 아침에 고독하게 변해버린 거대한 타인의 집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유령이 되어, 죽은 남편과 살아남은 자기 중에서 누가 더 죽은 것인지 자문하면서 고뇌하곤 했다. - 209
- “이 집에서 떠나고 싶어요. 계속해서 걷고 또 걷고 싶어요. 더 이상 이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
“그럼 배를 타고 떠나도록 해요.” - 289
-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 331
2018. de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