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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우화같은 , 사실주의적인, 판타지같은 다양한 단편들.
다채로움이 가장 눈에 띠는 작가다. 아쿠타가와는 이 책으로 처음 읽어봤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수많은 일본 작가의 책들을 읽었는데, 정작 상 이름의 주인인 이 작가는 참 늦게 만났달까. 낯선데, 기묘하고, 또 이상하게 현대적이라 뭐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이다.
뭔가 끝이 아닌 것만 같은 지점에서 문을 닫아버리듯 맺어지는 결말이 있는 작품들이 종종 있는데, 내가 채 캐치하지 못하는 일본의 무엇?을 놓치는 건가 생각된다.
또 유사한 느낌의 주제에서도 작가의 시각이 달리느껴지는 부분들도 세월의 흐름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라쇼몬>, <지옥변>, <갓파>가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태중의 갓파에게 태어날지 말지 의사를 묻고 원치않는 경우 그대로 소멸이 가능한 것. 뭔가 상당히 효율적인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 하인은 다른 건 다 관두고라도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할텐데하고, 말하자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해 보려고, 부질없는 생각들을 해가며 아까부터 스자쿠 대로에 내리는 빗소리를 무심코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 48, 라쇼몬
- “여보.”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진 후, 이렇게 불렀을 때도 도시코는 여전히, 남편에게서 안색 나쁜 얼굴을 돌린 채였다.
“왜?”
“내가...... 내가 나쁜 걸까요? 그 아기 죽은 것이......”
도시코는 갑자기 남편의 얼굴을, 묘하게 열에 들뜬 눈길로 쏘아보았다.
“죽은것이 기뻐요. 안됐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기쁘다고요. 기뻐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여보.”
도시코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격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사내는 와이셔츠 어깨와 조끼를, 이제는 가득 비치기 시작한 눈부신 햇살로 도금하며서 그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앞을 턱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 89, 엄마
- 뭐, 사내를 죽이는 것쯤이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여자를 빼앗게 되면 반드시 사내는 죽는 거거든요. 다만 나는 죽을 때 허리에 찬 칼을 쓰지만 당신들은 칼은 쓰지 않고 그저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여차하면 위해 주는 척하는 말만으로도 죽이죠. 그러면 피는 흐르지 않고 사내는 멀쩡하게 살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죽인겁니다. 죄의 깊이를 생각해 보면 당신들이 더 나쁜지 내가 더 나쁜지, 어느 쪽이 더 나쁜지 알 수 없지요. - 211, 덤불 속
2018. 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