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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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역에 서있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 시인의 말 중

나비처럼 훨훨 날아 사라져버린 시인의 글, 이것들을 천천히 읽고 쓰며 며칠을 보냈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 이 가을의 무늬 중

우리의 몸은 추상화가 아니었다 우리는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몸은 커녕 삶도 추상화가 아니어서 - 오렌지 중

별들이 많다고 쓰다가 이 생에 다시 만날 사람들의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러 만나보지도 못했던 유령들도 있어서 누군가 영혼의 물을 따라주자 나는 그걸 눈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네 - 유령들 중

누군가 끌고 가는 바퀴가 달린 가방만큼
어릿하게 슬픈 세계는 없었다 - 카프카 날씨 1 중

나는 ‘진주 저물녘’의 시간으로부터 독일의 오래된 도시와 폐허의 유적지로 이어지는 시인 허수경의 장소들과 시간들을 다 알지 못한다. 모국어의 도시에 살지 않는 시인의 운명을 말하기는 너무 무겁고, 그 몸과 언어의 감각에 대해서라면 상상하기가 더욱 더 쉽지 않다. 그 세월들 속의 ‘허공’과 ‘뒤돌아섬’과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해서, 혹은 ‘몸 없음’과 ‘장소 없음’에 대해서도 도저히 알지 못한다.
한 실존의 어릿한 세월에 대해서라면, 어떤 짐작도 무력하며 때로 무례할 것이다. - 해설 중

2018.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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