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은 여러모로 <포트노이의 불평>의 연장선이자 대척점에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공격적으로 유년의 생명력을 이야기하던 젊은 작가가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죽음을 지척에 둔 노년의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고해성사를 하듯 제 삼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에서도 그러하다. 케페시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읽는 중간에도 오락가락 했으나, 결국 그 지점은 건너 뛰기로 했다.개인적 호오를 떠나 그가 죽음 앞에 애처롭게 서있는 듯 한 절규? 주절거림?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에게 유의미했으므로. (60년대 자유를 찾아 나선 케페시는 고작 의무의 방기, 변덕의 합리화를 위해 페미니스트인 제이니의 사상에 편승했다. 그 지점은 정말이지 무슨 개소리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나는 소설 속 인물을 좋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케페시 역시 좋지 않다에 가까운 인물일 뿐 아니라 혐오스러운 인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렇다면 콘수엘라는? 부유한 이민자라는 것은 그녀를 구속하기도, 자유롭게도 하는 이중적 정체성이다. 죽음을 앞둔 콘수엘라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생에 대한 끔찍한 갈망이라고 말한다. 폭발적인 대사들의 강렬함은 머지않아 사라질 생명이라서 일까? 그녀의 생은 끝내 구속된 것일까? 자유로웠던 것일까?외설스러움에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다. 더럽게 떠들면서 생의 전부를 반추하게 한다.2018.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