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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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울하고 암담하고, 결말이 느닷없다는 점이 당혹스럽다.

작가 자신의 불행을 모티브 삼은 이 이야기는 오로지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입장의 글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고난 앞에 지금의 시대라면 상식적으로 의아한 행보의 아버지 ‘버드’는 그 닉네임처럼 부유한다.
물론 아픈아이가 태어난 일은 누구나 당혹스러운 일이며 어느 누구도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릴 엄청난 일이다.

아프리카에 갈 미래를 꿈꾸는 이 철모르는 아빠는 부인의 산고중에도 동네 양아치와 드잡이를 하더니, 막상 출산이후에는 술과 섹스에 빠져들어 도피를 꾀한다. 당장의 괴로움은 이제 아프리카에 갈 일은 요원하겠구나 정도의 심정이라 그 지점에서 독자로서 당혹스러웠으나, 태어난 아이를 축복하지 않는 것은 버드 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아이, 부상병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은 아이는 그저 죽는 것만이 유일하게 해야할 일인냥.

버드의 도피처인 히미코는 그에게 위로와 동시에 자기기만의 기회를 주는 존재로 등장했는데, 그녀의 이 역할이 어쩐지 위악같이 느껴져서(게다가 히미코에게 버드는 가해자의 범주아닌가), 이야기의 전반을 차지하는 이 두사람의 대화 내내 불편할 따름이었다. 정작 아버지가 된 버드는 내내 상황의 주도권을 히미코에 일임하고 뒤로 물러서 있는 모양새 때문일까.
그야말로 버드는 막바지의 결심 전까지 ‘우울한 백치’(240) 같을 뿐이다.

어떤 이라도 버드의 어떤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조차도 읽는 내내 아이의 무탈을 빌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같은 심정으로 괴로웠고, 냉담한 시선들에 온 몸이 시렸으나......

물론 작가에게는 모티프만 같을 뿐인 이 이야기는 결국 어떤 해피엔딩의 형태가 되었으나, 사실 내가 원한 결말은 사적으로 출판했다는 비극의 형태였는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이 이야기를 ‘청춘 소설’이라고 여긴다고 한 점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방황이 청춘이라는 것인지 묻고 싶을 따름.

‘그가 꿋꿋이 견지하고 있는, 의지에 의해 선택된 명랑함과 낙관주의는 눈물겹게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299, 해설)이라고? 정말 모를 문장이다.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하며 교수는 그럴듯한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이 반복했다. 그러고는 버드를 향해, 라기 보다 차라리 세 사람의 조교수를 향해 “글쎄,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태어나는 편이 좋은 건지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시대니까.”- 63

“분유도 힘차게 빨고, 팔다리의 움직임도 활발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분유를 빨고 무엇 때문에 움직여? 하고 원망스럽게 묻고 싶은 것을 버드는 참았다. 버드는 대책 없는 불평꾼이 되어 가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 125

몇 번짼가 잠이 깼을 때, 버드는 자신이 집행유예의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버드는 자신이 지금 외톨이가 아니라 히미코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는 사실에서 뜻밖에도 깊고 강한 위로를 발견했다. 버드가 어른이 되고 나서 그처럼 타인을 필요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176

2018.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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