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전부터 버스나 택시를 타면 가끔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쑈>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가 이야기하듯 소탈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박장 대소를 하면서 들려주던 그 방송을 나이드신 분들은 좋아한다. 지금도 그 둘이 부부라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 김혜영이 코미디언 김혜영이라는 걸 알고 더 자세히 들었던 기억도 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김혜영을 본 일이 여러번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방송인 김혜영의 작은 행복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후배 아줌마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인 만큼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유용한 정보가 맛깔나게 들어있다. 행복하기 위한 사소한 생활의 지혜, 직업적 성공을 위한 자기만의 유용한 노하우, 돈에 얽힌 이야기와 자녀교육 이야기. 그리고 가장 아기자기 재미나는 살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는 도중 곳곳에 공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고 배우는 점에선 얼마 전의 나의 경험과 맞 물리면서 더욱 크게 다가왔다. 방송인 하면 생각하는 사치스러움 따위는 찾아볼수 없을 만큼 소탈하고 털털한 이야기들이 그녀를 친근하게 느끼게한다. 공중 목욕탕 다니는 이야기와 아파트에서 호박고지 말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야무진 살림 솜씨에서는 배울 점도 많이 느꼈다. 그녀의 레시피는 따라하기 쉬울 것 같아서 수첩에 옮겨적은 것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유명인답지 않은 이런 소탈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를 다시 보는 계기도 되었지만, 이 정도의 살림과 이 정도의 생활과 삶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유명인의 힘이 발휘되는 또 다른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하다. 한 때 우후죽순으로 발표되던 연예인들의 자기가 쓰지 않은 자서전이 생각나서이다. 이 사람만큼은 그런 의도와는 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책 곳곳에서 묻어나는 삶의 진정성때문이다.
오랫만에 라디오에서 맘에 드는 노래를 들었다. 개그맨 출신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란다. 옆 자리의 사람에게 이 노래 한 번 들어보랬더니,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다. "뭐 뻔하지 사랑한대." 우리는 날마다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들은 무슨 얘깃거리로 살까 싶게 온통 사랑 타령이다. 세상이 둥글다고 외치는 것이 네모의 꿈인것 처럼 어쩌면 이 세상엔 사랑이 하나도 없어서 우린 날마다 사랑을 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만큼...... 슈거 앤 스파이스라는 제목에 달콤한 사탕을 떠올리는 건 비단 나뿐은 아니겠지? 그것도 짧은 자루가 달린 주황빛 사탕을 떠올린채로 책을 열었다. 역시나 사랑얘기다. 늘 들어도 지겹지 않은 남의 사랑애기말이다. 다른 책들과 다른점이라면 이 6편의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 육체노동이라는 점일까? 늘 보던 일본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좀 섬세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점이 느낌이 좀 달랐다. 6편의 각각의 이야기는 조금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아버지의 새 아내가 된다든가. 엄마의 어린시절 친구에게 연정을 느끼는 소녀의 이야기들이다. 어느 누구든 사랑할 자격이 있다. 누구든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생각을 하고 보고싶어해도 된다. 사랑은 우리 인간의 끝없는 화두니까. 내가 하는 사랑도, 친구가 하는 사랑도 사랑이니까.
오랜만에 만난 이순원님의 책이다. 처음엔 소설이라고 해서 늘 보여주는 이순원님의 스타일을 생각했다. 어딘지 몽환적이고 늘 눈 속에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 <나무>는 다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나무로 표현한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작은나무의 열매에 대한 욕심은 빠른 성취를 원하며 조바심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작은 나무의 할 일은 몇 개의 열매를 장마와 태풍에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뿌리를 단단히 내려서 긴 나무의 삶을 준비하는 데 있었다. 모두들 조급한 우리의 세상. 빨리 사랑하고 빨리 헤어지고. 빨리 일하고 빨리 빨리 먹고 치워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은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먼 앞일을 내다보고 지금은 미련해 보여도 의지와 신념을 갖고 가지고 잇는 모든 것을 투자하고 그것을 지켜내는 힘. 그 의지를 믿고 기다리는 가족의 든든한 후원들. 나뿐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이들을 돌아보는 따뜻함들을 우리는 이미 잊어버린 건 아닌지. 많은 돈이 줄 수 없는 잔잔한 감동들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 그 긴 기다림 끝에는 더 오랜 세월을 우리 곁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켜주는 나무가 있다. 내 인생의 어느 곳에서 그런 나무를 만날 것인가. 아니, 이젠 내가 누권가에겐 그런 나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케이타이란 일본어로 핸드폰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거나, 전시회를 보러가거나 나마바루를 한 잔 하러 갈 때 카메라가 없는 사이에 찍은 핸드폰 사진인 것이다. 사진을 공부하는 이답게 책 속에는 어디인지 남다른 사진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찍을 때의 저자의 감성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는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의 얼굴이라든가 맘에 드는 예쁜 나무라든가 암튼 피사체를 정 가운데에 두고 커다랗게 찍었는데, 이 사진들은 어딘지 다르다. 약간 핀트를 빗겨간 느낌이랄까? 어딘지 모르는 곳을 응시하는 외국인들의 텅 빈 시선들에서 낯선 땅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이 사진들을 찍었을 작가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국 땅에서 찍은 이국인의 눈동자에서 향수를 보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핸드폰 사진이라서인지 흐릿한 느낌들과 낯선 각도들이 더욱 외로워 보인다. 저자는 일본에서 일상을 살았겠으나, 나는 그의 사진들에서 집 떠난 이의 고독과 낯선 곳에서의 불안감과 그러면서도 감출 수 없는 자유가 보였다. 마치 그 핸드폰의 주인이 나인것처럼 내 핸드폰의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 거기, 어디니? 누가 있는거지?"
이 세상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 많다. 나중에 꼭 가보려고 적어둔 여러 곳들. 가기 전에 미리미리 공부하려고 많은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사진을 모아보곤 했다. 한 때 너무나 빠져있던 곳, 티벳.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 라싸. 포탈라궁의 사진을 한 장 아직도 소중히 가지고 있다. 포탈라궁에선 라싸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라싸 시내 어느 곳에서든 고개만 돌리면 포탈라궁을 볼 수 있다. 희고 붉은 성채. 인간의 힘은 어디까지인지. 도대체 그 곳에 어떻게 그런 건물을 세울 수 있었는지, 참으로 위대하다는 말 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걸까? 이 책 <위대한 건축의 역사>는 정말 많은 곳들을 가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들을 사진과 그림으로, 그리고 그 역사를 소상히 알려주는 친구같은 책이다. 이 책 덕에 나는 여행을 떠나야하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이 책에 나온 그 건물들을 다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아이라면 아이대로, 학생이라면 또 학생대로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꿈을 줄 수 있는 멋진 건물들을 한 번 꼭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