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녀석
한차현 지음 / 열림원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후면 수능을 보아야 하는 딸아이와 본 가장 최근의 영화가 <써니>이다. 처음 영화관의 광고를 듣고 보았을 때는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실제 영화관에서는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순식간에 시간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주인공 나미의 교실 모습은 진정 우리반의 모습이었다. 교복자유화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이들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아식스와 나이키, 프로스펙스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음악 감상실과 단발머리가 청순하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전경들이 방패를 세운 채 대기중이던 골목길을 기억한다. 국산 노래는 어딘지 싸구려라며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팝송을 흥얼거리던 아이들과 우리 고장의 명물 떡볶기집에서 왁자하게 웃던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눈물이 나오는데도 즐거웠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는 시절의 일인데도 함께 울고 웃는 딸아이를 보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 소설 <사랑, 그 녀석>을 읽으면서도 영화 <써니>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거슬러 어디론가 빨려들다 보니 예전의 친숙했던 음악이 들리는 듯한 느낌말이다. 작가는 91학번으로 시작한 대학 시절의 일들을 당시 신문의 주요 기사를 장식했던 헤드라인에서 뽑아 낸 듯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민주화라는 거대한 담론을 어깨에 지고 수업 거부와 공청회와 최루탄으로 점철된 대학 생활을 했던 우리 80년대 후반의 학번들과 달리 91학번들은 사랑 밖엔 할 게 없었다는 그의 말은 참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다.

  91년에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 차현은(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독자들은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은 세 살 연상의 선배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저녁을 함께 먹고 버스를 타고 그녀의 동네로 간다. 연상연하의 커플이 흔하지 않았던 그때, 차현은 미림 선배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두근거리고 ‘어떻게 하면 뽀뽀를 한 번 할 수 있을까’를 동아리의 친구인 은원과 상의한다. 결국 미림선배는 알티(참 추억이 묻어나는 단어이다)와 사귀게 되고 차현은 배신감에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 때 처음 생긴 편의점에서 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월이 가서 선배가 되고, 은원과는 연인이 된 차현은 수순대로 군대에 가게 된다.

  결코 얄팍하지 않은 소설은 그런 차현의 군대 생활과 대학 생활을 들려주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했던 그런 비루하고 평범한 일상들 속에서 차현과 은원은 웃고 울고 싸운다. 그것이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남루하고 너절한 일상들, 술 마시고 주정하고 시험 보는 그런 일상들은 민주화 운동의 기수였던 선배들도 경험했을 것이고, 2011년의 대학생들도 지금 그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변하고, 또 일상적인 삶보다 더 중요한 대의가 있는 듯이 떠들어대지만, 결국 젊은이의 삶이란 늘 앞날이 불안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근거리며, 없으면 찾아다니면서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서평은 열림원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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