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연습
아가타 투진스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이 생에 꼭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나라, 티벳에는 "내일이 먼저 올 지, 내생이 먼저 올 지 아무도 모른다." 라는 의미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늘 알고 있는 상식처럼 생각하지만, 가끔씩 이 말을 떠올려 볼 때면 주변이 서늘해지면서 허무의 경지를 이해할 듯한 느낌이 들곤한다. 그러니 말로만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모든 만남이 헤어짐의 시작이고 언젠가는 이 세상 모두와 헤어져야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나의 일로 체감하기엔 이 삶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이 책 <상실 연습>을 읽으면서 나는 그 동안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한 가지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두고 내가 떠나는 것만 상상했지, 내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모두를 두고 떠날 것을 상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떠난 후에 가는 곳이 어디인 지는 모르겠지만,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슬픔의 울림은 그 형태가 다를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남겨질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는 것은 내가 그 만큼 나를 중심으로만 사고를 한다는 한 증거가 아닐까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이 책의 지은이는 작가이다. 많은 글들을 쓰고 독자를 만나고 학생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사람이지만,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영원을 꿈꾸고 있었다. 대륙을 넘나들며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살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 온 소식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뇌종양 소식이었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지적이며 토론을 좋아하던 사람의 뇌에 생긴 글라이오블래스토머 멀티폼(아형성신경교아종)은 운에 매달려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단 몇 달 만에 사람을 죽인다는 병이었다.(본문 7쪽) 한 달 새 두 번이나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하고, 그 사이 두 번이나 결혼식을 치렀지만, 그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그들은 더 이상 함께 와인을 마시며 토론을 할 수 없고 호숫가에서 낚시도 할 수 없다. 폴란드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캐나다로 옮겨서 그의 병간호를 한다. 더 이상 그녀는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다. 그녀가 하는 기록이란 오로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병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의 모든 사회적 삶을 버리고,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병간호를 하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는 모습에 상실감으로 상처 받고 가슴 아파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그녀에게 찾아오는 위안이란 헨릭의 병세가 호전되어 짧은 여행을 하고, 잠시나마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깊은 사색과 삶에 대한 천착을 하는 작가인 아가타 투진스카는 사랑을 잃는 과정을 처절하고도 섬세하게 기록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헨릭의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하고, 헨릭의 가족과 친적들과 이별을 준비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들을 추억하고, 서로의 얼굴울 쓰다듬으며 이별을 준비한다.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맞는 이별과 이렇게 긴 시간동안 아픔을 겪으며 하는 이별 중 어떤 것이 덜 아플까? 전자는 준비없이 맞이하는 이별이므로 이별이 오기까지의 가슴 아픔이 없겠지만, 헤어지고 난 뒤의 아쉬움이 사무칠 것이다. 후자는 충분히 준비를 할 수 있으므로 그 시간동안 많이 아플 테지만, 그만큼 후회가 덜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떤 헤어짐이든지 그 아픔의 총량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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