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 백
슬라보미르 라비치 지음, 권현민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의 한계는 어디인가.

 이 책 <웨이백>을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의문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유를 위해서 12개월 동안 장장 6500킬로미터를 걸었다. 그것도 시베리아의 추위와 고비 사막의 열기를 견디고 히말라야를 아무런 장비도 없이 오르면서 말이다.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폴란드인 슬라보미르 라비치는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단지 군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된다. 그가 첩자 노릇을 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는 아무런 변호도 받지 못한 채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하고 엉터리 재판을 받은 후 시베리아 강제 노역 25년 형을 받는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스물 서너 살이었던 같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화물칸에 선 채로 이송을 당한다. 근 5천킬로미터의 거리를 한달간 서서 달린 그들은 바이칼 호수 남단 근처의 이르크추크에 도착했다. 그들은 다시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를 지나서 북쪽으로 걸어서 이동을 한다. 그들의 손에는 쇠사슬에 매달린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1600킬로미터를 12월부터 2월까지 한겨울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시베리아 벌판을 오로지 걸어야만 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303수용소로 북극권 한계선으로부터 5-600킬로미터 정도의 남단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추위와 강제 노역, 그리고 배고픔과 불결함보다 더 슬라브를 힘들게 한 것은 그 고통이 25년이나 남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그는 답답했지만, 포기하는 순간 죽을 것을 알기에 그는 단 한 번도 그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수용소장의 아내는 그를 가엾게 여기고 탈출을 돕겠다고 한다. 슬라브는 함께 탈출할 사람들을 은밀히 구한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하고, 고난을 이길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두려워하며 현실의 작은 빵조각에 길들여져갔지만, 슬라브와 함께 치사한 빵보다 위험한 의지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레나강을 건너 바이칼 호수까지 간 다음, 몽골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동쪽으로 가서 캄차카 반도를 건넌 일본으로 가려면 여러가지 위험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변변한 준비라고는 약간의 음식과 칼과 도끼가 전부인 여섯 남자는 눈덮인 시베리아 동토의 땅으로 뛰어든다. 단지 수용소를 벗어났을 뿐이어도 그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맛이 달랐을 것이다. 이후 6500킬로미터를 오로지 자신의 두 발에 의지하고, 주위에서 먹을 것을 얻으면서 그들은 달리고 걷는다. 눈보라와 추위, 그리고 죽음의 모래 사막, 얼음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최후의 한계까지 경험하지만, 서로 의지하고 믿는 마음으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자신의 발조차 한 발 내디딜 힘이 없어도 동료를 안고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서 입이 타들어가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더러운 물일망정 컵을 내밀어 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베풂과 나눔은 인간의 고결한 특성임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긴 여정을 그들과 함께 한 듯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 때 함께 고통스러웠다. 사막의 더위 아래서 동료를 일허갈 때 가슴이 아팠고, 손님을 환대하는 티베트 사람 집에서 마음껏 먹고 푹 쉬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조차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가.

 평생을 함께 지내도 다 가지지 못할 우정을 그들은 가졌다. 이 짧은 생에서 어느 누가 그 만큼의 깊이와 너비를 가진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받는 빵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삶을 그려본다. 살을 에는 바람에 얼어붙은 수염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슬라브의 모습을 나는 쉽게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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