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세월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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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88올림픽이 개최되던 시기부터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2023년까지 이 소설은 아우르고 있다. 총 8장인 각 장은 모두 쌀과 관계된 문장으로 시작된다. 1988년 열살된 미령은 밥을 안치고 있었다. 엄마처럼 잘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린 미령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고 미령은 엄마를 원망하다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만다. 맨초롬히 예쁜 얼굴로 첩질을 하던 엄마는 아버지의 마음이 변하자 자살을 택한다. 남은 자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즉흥적이었던 엄마 선옥의 선택은 미령과 태호 남매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아버지의 본 부인인 명옥은 정신 나간 시누를 돌보게 하려고 딸인 미령을 택해서 데리고 가고, 오빠 태호는 폭력적인 외삼촌에게로 보내진다.

 1992년 미령은 4년 동안 '바구미 여사'인 고모를 돌본다. 별 어려움없이 고모와 보낸 시간 속에 바구미 여사에게 정이 든 미령은 고모가 돌아가시자 허전한 마음이 든다. 1995년 미령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클럽에서 민구를 만난 미령은 그와 끈질긴 인연을 맺게 되고, 1999년 스물한 살이 된 미령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을 나와 장사를 시작한다. 2002년 미령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민구와의 관계도 이어지지만 오빠 태호는 그녀에게 걱정거리이기만 하다. 2012년 서울은 대지진으로 페허가 되고 미령은 언니의 애인이었던 제철과 사업을 한다.

 그렇게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미령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치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미령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대로 사랑과 희망과 좌절과 모욕의 세월들을 견디고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아마 제목이 주는 의미도 그러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미령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미령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주는 역할을 할 뿐 굳이 미령이 없어도 그들은 잘들 살아갈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 없으면 세상 역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나 하나쯤 없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쌀알처럼 모여사는 우리, 쌀 한 톨 정도야 없어도 밥이 되지만, 쌀 자체가 없다면 밥은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 하나하나가 있어야만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없는 세월이란 정말 반어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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