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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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그 곳에 좀더 머물러 있으면서 수정같이 맑은 날씨가 지나가고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추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는 것을 보았을 때, 2월의 폭풍이 그 운명의 마을 주위에 흰 천막을 둘러치고 3월의 강풍이 난폭한 기병대를 이끌고 이 폭풍을 지원하려고 돌진해 내려올 때, 나는 왜 스탁필드가 마치 굶주린 수비대가 살려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고 항복하듯 여섯 달 동안의 포위에서 빠져나오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4쪽

 

 이 문장을 작품 해설에서 발견하고 깜작 놀랐다. 읽는 도중에 접어두고 여러 번 다시 읽었던 문장이었던 까닭이다. 차갑고 길기만한 스탁필드의 겨울을 묘사한 이 문장은 내게 스탁필드가 어떤 곳인지, 마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짐작케 했다. 외롭고 쓸쓸한 시골 마을, 일년의 반을 흰 눈 속에 보내야하는, 외부와 단절된 고독한 그 곳에 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선 프롬이 산다. 그는 사고로 몸을 다쳐 불구의 몸과 얼굴을 가지고 새로을 것도 없고 즐거울 것도 없는 삶을 마지못해 이끌어 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그는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병으로 꿈을 접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머니를 간호하던 친척 누이 지노비어가 집을 떠나려 하자, 긴 겨울을 지낼 것이 두렵기만하던 이선은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 지나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병을 핑계로 이선을 괴롭히기만 한다. 그런 이선에게 삶의 한 줄기 희망이라면 집안 일을 도와주는 아내의 친척 매티뿐이다. 매티가 있으므로 그는 가난과 아내의 신경질이라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집이라도 기쁘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하던 이선은 결국은 소극적으로 저항을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온갖 추문과 불구의 몸과 역시나 불구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만 살아가게 된 매티, 그리고 자신과 매티를 돌보는 지나였다.

 

 이선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죽도록 일을 해도 아내의 약값을 충당하지 못하던 이선은 이제는 불편한 몸으로 아내와 매티까지도 부양하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오랜만에 읽어보는 이디스 워턴의 소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섬세하고 떨리는 인물의 심리묘사는 나를 이선이 되게도 하고, 지나가 되게도 하며 책 속의 보이지 않는 서술자가 되게도 한다. 이상을 향한 평범한 사람의 몸부림과, 주위의 소문과 평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당시의 풍습에 대한 서술들이 나를 충분히 그 시절, 예의와 인사를 중시하고, 품위와 도덕이 목숨이던 그 시절로 이끈다. 이미 <순수의 시대>에서 확인한 바 있는 고전을 읽는 이 즐거움을 다음 번에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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