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윤이형 외 지음 / 작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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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한 지인(知人)이 있다.

한 때 꽤 실력있는 연주가였던 그이는  지금은 연주를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그가 내게 한 말 중에 가슴 깊숙이 들어와서 오랫동안 머무는 말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은 연주 활동을 하지도 않으면서 연주회 팸플릿을 볼 때마다 연주가의 나이를 본다는 것이다.

어느 샌가 자기의 나이를 지나쳐서 이젠 까마득한 나이의 후배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주회를 갖는 것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말로 표현하기조차 그야말로 쪽 팔리는 질투의 마음이 너무도 커서 스스로 짜증이 난다는 그 이는 지금도 연주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이 이리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말을 듣는 그 순간 나는 너무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이 음악이 아니므로 연주가들을 경외하면서 산다.

그러나, 나는 새로 나오는 소설책을 보거나, 각종 문학상의 수상작을 읽을 때 은근히 작가의 나이를 살폈다.

언제부턴가 그저 인생과 글세상의 선배들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해지더니, 이젠 조카뻘의 작가들이 버젓이 내로라하게 문학상을 수상하고, 책을 낸다.

딱히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다거나,  내게 글 재주가 있다거나, 평생에 걸쳐서라도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질투의 감정을 품었는지 모른다.

해마다 모모문학상 수상작을 구입한다거나, 올해의 소설 혹은 오늘의 소설 따위의 작품집을 꼭 읽어야할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런 연유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책  <2008'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젠 그러한 감정들이 정리된 듯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표지의 작가 사진 중에는 아주 어리고 예쁜 아가씨의 사진도 있고, 인생의 무게란 것이 한바탄 웃음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앎직한 사진도 있고, 눈매가 매서운 청년의 사진도 있었다.

작가의 사진을 미리 보고 작품을 읽어 본 경험이 흔하지 않기에 유별나게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 사진의 표정과 그들의 작품이 그리도 닮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총 9편의 작품들이 실려있다.

그 중에는 환상의 세계를 다룬 작품도 있고, 너무도 그 묘사가 리얼하여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같은 친숙함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나 이번 소설집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어서 행복했다.

성석제님의 <여행> 모처럼 깔깔 웃으면서 읽게 해 주었다.

어쩌면 그리도 천연스럽게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도 넉살스럽게 풀어갈까?

그야말로 타고 난 이야기꾼이다.

얼마 전 읽었던 작가의 새 수필집이 떠올라서 다시 들추어 보기도 했다.

또한 각 작품마다 말미에 그 작품들에 대한 전문가의 서평이 곁들여있어서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서평들이 작품에 대한 풍부한 상상을 혹시나 한계짓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서 옮겨본다.

"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진실을 알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진실로 인해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니까. 진실이 불편하고 잔혹한 것은 온 세상은 내버려 두고 우리 자신만 덜렁 바꿔놓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두려룸에 떨고 진실을 알고 나서는 회한에 몸서리친다. 그 두려움과 회한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거짓을 우리는 진부함이라 부른다."

                                    <혁명 기념일>  중에서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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