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세계 - 저울과 자를 든 인류의 숨겨진 역사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 까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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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1 : 측정의 세계, James vincent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이 그림의 미소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미소이다..." (Giorgio Vasari)

위 문구는 인류 문명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칭송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대한 유명한 평가이다.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유명세로 인해 매년 엄청난 인파를 불러모으는 찬란한 문화 유산이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과 비평가들이 끊임없는 담론과 평가를 해왔으며, 지금도 다양하게 그것들을 접할 수 있다. 특히 위에 르네상스 미술사가, 바사리가 언급한 "신비의 미소"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추측과 담론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이런 담론의 흐름에 변화가 감지된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다. 1956년에 한 관객의 작품 훼손으로 인해 그 밑그림이 노출되며 다빈치의 작업이 고유한 층상 구조를 기반으로한 '덧칠작업'에 의해 이루어짐이 드러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품의 복원을 위해 조사가 다시 이루어지고 그동안 우리가 추측했었던 작품에 대한 사실들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때부터 또다른 일군의 학자들은 그동안의 평가를 뒤로 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 비교적 객관적인 과학 분석 기법을 도입하여 - 모나리자를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X-ray 사진' 기법으로 인해 (위 사진 참조) 그동안의 미소에 대한 해석에 '비수'를 꽂는 평가가 나오며 기존의 해석을 수정하는 동시에 다빈치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된 에피소드이다. - 그리고 많은 추측(억측)을 낳은 비평가들이나 학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ㅎㅎ-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인식 체계는 경험적인 습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아무리 명성이 드높은 그림이라도, 객관적인 사실이라 인정되는 것들이 발견되면 주저없이 그 해석이 뒤집히게 되지 않는가? 이처럼 인간은 "직접 보고 들은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인식하며 지식을 체계화한다. 이는 유사 이래로 큰 변함없이 이루어져 온 관습이며, 다만 문명의 지적 기술 수준에 따라 그 양상이 바뀔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론, 즉 관찰의 방법은 매우 핵심적인 근간이며, 이를 어떻게 추상화하는지는 그 당대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좋은 기준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외부 세계를 '측정'하고 '기호화'하는 방식은 문명의 근간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이를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한,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한 시대의 사회 속 일원이며, 기존의 합의된 기준으로 이미 구축되어 있는 시스템을 '학습'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기준은 의문을 잘 허용하지 않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

그러나 독보적인 권위를 가지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 법...누군가는 이 강요된 권위에 의문을 제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하며, 반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연원을 궁금해하는 독자도 꽤 존재하리라 사료된다. 이 저자 또한 마찬가지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여 이 책 "측정의 세계"를 쓰기에 이른듯 하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빈센트 James vincent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사람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기고를 하고 있고, 이번이 그의 첫번째 저서이자 베스트셀러이다. 출간되자마자 다양한 매체에서 호평을 받으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찬사를 받은 바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측정"이란 단어의 뉘앙스로 인해 딱딱한 과학책을 연상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과학책은 아니다. 책에서도 밝히듯이 저자는 작가이고, 전문적으로 과학 지식을 훈련받은 이력도 없다. 다만 '측정(측량)'의 역사를 인류의 문명사와 함께 추적하고, 그 변곡점들을 지적하며 이것들이 우리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분류와 각 장에 할애된 분량도 대단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뤄주고 있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교양과학 내지는 역사서의 역활에 충실한 책을 지향한듯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데로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이는그 결과물로서 우리 앞에 이 책을 내놓았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인류 문명사 초기에서 나타나는 의문점 중 하나인 "측정이 먼저인가? 척도가 먼저인가?"데 대한 의문점으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해보이는 질문이지만 실상 자세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시말해 "인식이 먼저인가? 실재가 먼저인가?"라는 철학의 근본 문제와도 맞닿는 부분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된다. 우리가 흔히 인식 체계론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부분이고, 이 물음에 대해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 보지만...- 

우리가 주위를 둘러싼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경험적 사실에 의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 사실은 그 자체로 불완전함을 이내 깨닫는다. 개인의 경험들은 고유하며, 유사하지만 일치한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세금'이라던지, '상거래'와 같은 개인의 이익을 기반으로 한 행위양식에서는 이 불완전성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위 말해 '공정성'의 문제, 즉 '신뢰'의 문제를 반드시 동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두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성"에 근거하게 되며 이는 곧바로 측정의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인류의 문명은 당연히 척도와 그 궤를 같이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저자 또한 이 척도의 발생사를 따라가며 이와 같은 맥락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즉 우리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지적 산물의 하나라는 점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준다.

또한 이 책은 측정의 발달적 측면에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점을 부각하고 싶다. 첫째, 17세기 과학혁명 이전의 측정에 대해 자연 발생적인 근원부터 출발하여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거쳐 중세 기독교 문명까지를 아울러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측정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성서에 나온 구절이나 신화의 전승에서 언급되는 특정 요소들을 강조하고 설파하기 위해 "천문학"의 발달과 그로 인한 "시간" 단위의 변화같이 말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시간개념이나 달력은 어찌보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 맞도록 우리가 고안해놓은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제는 거꾸로 그 체계에 종송되어 살아가는 측면 또한 존재함을 역설한다. 둘째로 소위 "탈주술화"로 대변되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시대부터 측정이 어떻게 급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측정이라고 흔히들 믿는 것들의 상당수는 이때 폭발적으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존의 관념론적인 세계관을 버리기 시작해, 실증적인 지적 체계를 추구하고 새롭게 자연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며 그 도중에 얼마나 많은 과학적 발전이 그 역활을 담당했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세번째로는 이런 혁명적인 발견들을 통해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내고, 문영의 이기를 경험한 우리 인류가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측정으로 지배"하기 시작하는지를 역설한다. - 저자는 이 시점에서 "통계"의 등장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 다시말해 외부 세계를 성공적으로 정복하는 그 경이로움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들어감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측정은 도구일 뿐,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는 인간이며, 그 목적과 대상을 선정하는것 또한 인간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측정하고, 그로 인해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으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우생학" 같은 과거의 오점과도 같이...-

더군다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정보의 혁명이 "디지털"로 가능해진 오늘의 시점에서 이 지점은 더욱 유의미하다. 소위 "빅 데이터"를 둘러싼 찬반양론의 측면에서 모두가 동의되는 각자의 논리는 분명 존재한다. 기존에는 어쩔 수 없이 통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도구와 데이터의 발달로 인해 해석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이를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마져 가능하다는 그 희망을 인식했을 때, 과연 이를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의 논쟁을 의식하듯이 끝에 가서, 언급한 점들을 개인 경험에 비추어서 언급하며 우리에게 화두를 살며시 던지고 있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습득한 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 엄밀해진 측정의 다양한 기술적 경이나 원리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미터법"의 재정의나 "킬로그램 원기"의 폐기와 재정의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엄밀성을 들이밀지 않는다.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다양한 과학사적 배경 또한 간단하게 설명한다. 이는 대중적인 독자를 지향하려는 저자의 의도 및 출판 기획에 기인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인듯 하다. 그러므로 보다 더 세밀하고 엄밀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책의 뉘앙스도 과학의 외피를 쓰고 있을 뿐, '역사'서에 가까운 서술을 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과는 그리 맞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정치적 또는 인문학적으로 측정 - 혹은 계량화 - 에 대한 논쟁은 최근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바가 있다. 본 책에서 드는 "미터법 반대론자"의 에페소드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담론들이 이미 다수의 학자들에게서 논의된 바 있다. 근래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명 비판 이론이라든가, 현대 실존주의와 관련된 논쟁에서 계량화에 대한 우려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이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 쪽에서도 현대 문명 비판의 한 근거로 "과도한 계량화" 내지는 "폭력적 지배에 대한 열망"에서, 이 계량화적 시도의 폐해를 누차 지적한 바가 있다. 따라서 본 저서의 맨 끝에 잠시 나오는 챕터 정도보다 훨씬 다양한 지적 담론들이 존재하였던것을 이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 - 물론 대중서적이라는 그 목적하에서라면 이해가 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 따라서 보다 더 심도있는 논의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은 그다지 흥미를 끌 요소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그저 중립에 가까운 정치적, 인문학적 스탠스를 취하고 될 수 있으면 가치 판단의 부분은 배제한 것이 명백히 내게는 읽혀지니 말이다. 달리 말해 이 책의 같은 사실들을 놓고, 누군가는 훨씬 대담한 논의를 펼칠 수도 있고, 보다 더 높은 강도의 비판도 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서적의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아쉬움은 존재한다. 

5. 나오며...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시간을 보며 움직이고,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며, 수없이 많은 척도로 어떤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구조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말하면 마치 "백기를 이미 들고 투항한 어린 양"에 가까운 위험한 양에 지나지 않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 우리가 굳건히 믿는 척도의 기준을 정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인지 체계를 규정할 수 있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다면, 이처럼 과도한 '권력'은 너무나도 많은 폐해를 양상할 수 있다. 마치 푸코가 지적했듯이, 판옵티콘의 현현화가 다름아닌 이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인간에게 세상을 바라볼 기준을 내면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일테니 말이다. 

요 몇년간 이 땅에서는 통섭의 유행 만큼이나 뜨거운 이슈가 생물학적 사실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중에 "종의 다양성"에 대한 많은 담론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핵심에는 애초에 처음부처 우월한 특정 종이 진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양성으로 인한 개체군 가운데 그 당시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종만이 살아남아 그 유전자를 후대에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자연은 다양성에 그 가능성을 배포한다. 그중에 어떤 것이 살아남을지는 누구도 인위적으로 정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에게는 사실어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가 그 가능성에 해당하지 않는 종임이 판명되는 순간, 도태의 숙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항상 자연의 흐름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전례가 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의 수단으로서 '측정'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정의 순간에 우리는 또다른 국면을 맞을수도 있음을 인정해야한 한다. 그것은 그러한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야말로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말이다. -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을 통한 보다 나은 인류의 가능성을 꿈꾸는 다수의 욕망들 - 

우리는 신이 아님을 또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을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의 문명사를 통해 축적된 지식으로도 이 자연의 모든 원리와 의문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이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지배하려는 행위는 어떤 결과를 다시 우리에게 초래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의 기후위기도 그러하지 않은가? 도구로서의 이성은 그 절제를 반드시 알아야만 미덕이 있으리라. 이 소중한 교훈 또한 이 책으로부터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독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흔하게들 잊고 살기 쉬운 이 "측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저자의 노고를 치하하며 오늘도 밤하늘을 바라본다. 우리의 존재가 이 세계에 더이상 폐가 아니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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