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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평점 :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8 : 생각의 요새, 고명섭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Ride for ruin...and the world's ending!...(중략)...Forth! Eoringas!"
(폐허뿐인...세상의 종말을 향해 달려라!...(중략)...진격하라! 에오를의 후예들이여!"
이 대사는 영화사상 최대의 전투씬으로 회자되는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에서 수세에 몰린 인간들의 요새(미나스티라스)를 위해 달려온 "로한"의 왕, 세오덴이 휘하의 기병대를 이끌고 수없이 펼쳐진 모르도르군을 향해 일격의 돌진을 하며 내뱉은 말이다. 물욕과 야만으로 더럽혀진 인간들의 마지막 전투를 위해, 각지에서 모든 영웅들과 요정들(엘프, 드워트 등)이 합심하여 거대한 전투를 벌이는 명장면이다. 백척간두의 미나스타리스를 외면하지 않고 달려온 세오덴은 이 전투에서 끝내 장렬히 전사하지만, 악의 세력을 굴복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여정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며 전설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된다.
요즘 나는 최근의 우리 사회와 세계의 흐름속에 위 장면이 자꾸 겹쳐져 보인다. 이미 어느덧 우리의 현실 속에 "전쟁"은 다가와 있고, 각 국의 정치 상황은 점차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며, 이를 반증하듯이 지구 기후마쳐 파멸의 전주곡을 우리에게 들려주는것 마냥 연일 뉴스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류 보편의 화합과 공생을 온데간데 없고 급기야 "지속가능성"이란 처절한 단어까지 우리의 생존을 위해 꺼내야만 했으며, 여기에 더해 가혹하게도 "COVID 19 펜데믹"마져 우리 모두의 삶을 움켜쥐고 송두리째 뒤흔들었지 않은가...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빛의 서광이 내려오듯이 우리는 결국 이 펜데믹을 극복하고, 그동안 우리를 둘러싼 어떤 것들에 대해 조금씩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예외없이 드러워진 "양극화", 이에 편승한 "혐오의 정치"등 구 체제의 모순들이 드러나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의 연구와 테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의 개별적인 외향과 근원은 다르지만 나는 이들 모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위의 질문이다. 아직은 누구도 어떤 것이 우리의 미래에 답을 줄거라고 성급히 예단할 수 없으며 여전히 논의가 진행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의 가슴 속에 위 질문이 공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데에 있다. 더이상 현 체제로는 이 산적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없다는 데에 적어도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반증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이 "전간기"ㅇ[ 해당하는 시기에 과연 어떠한 담론이 자리를 잡는가이다. 그동안의 역사 흐름을 보면 이 전간기의 논의가 이후 수십년간의 역사 향방을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더욱 치열하게 우리는 생각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토론하며 사유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점가나 온라인 컨텐츠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여러 담론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양과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일반 시민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담론들을 정리하고 비교적 적절하게 전달하는 "지식유통"의 역활이 최근들어 급격하게 주목받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생각의 요새"도 이러한 맥락안에서 읽혀져야 하는 텍스트인 것이다.
2. 저자의 의도...


본 책의 저자는 기존 철학자, 학자들의 사상이나 이 시대의 담론에 기여할만한 인물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사유와 실천을 꾸준히 조명하는 기자 출신의 작가이다. 또한 그동안 담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서구 사상에 대비하여 동양 사상내지는 한국의 사상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독자들에게 그 소개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저서는 앞서 밝힌 전간기의 시대에 놓인 우리들에게, 보다 더 다양하게 지적 사유를 자극하는 인물들의 대표작들을 선별하여 제시해주는 일종의 선집의 성격을 띄고 있다. 크게 보아 6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각 장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주제로 구성된 것이 엿보인다. 각 장에서 선별된 인물들과 대표작들은 짧은 호흡으로 명료하게 끝나는 글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장대한 구성을 따라가며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어느덧 철학, 사회, 종교, 예술/과학을 넘어 역사적 통찰에 이르도록 하는 거대한 "통섭"의 흐름을 저자는 의도한듯이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이 책을 처음 본 독자들은 그 압도적 분량에 적잖이 당활할 수도 있겠다. 더욱이 저자의 의도대로 지적 사유의 미로속에서 방황하며 돌파구를 찾고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책의 진가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휘된다. 기자 출신답게 독자들의 호흡을 충분히 감안하고 쓴 문장들과 그 명료한 표현에 어느덧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문학 그 특유의 레토릭과 복잡한 서술 구조를 최대한 자제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한 현 세대들에게 충분히 배려한 서술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선정한 인물들의 위대함을 크게 잘 포착하여 전달하고 있으며, 향후 더 발전된 독서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효율적으로 인물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는 다년간의 필력을 짐작케하는 저자의 진면목이며, 기존 인문학 책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구구절절한 설명"에 지친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준다.
또한 통섭을 방불케하는 주제간 연결 고리를 전개함에 있어, 매끄러운 진행과 유연한 사고의 매력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전문 분야의 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지나친 "자기과시적 현학"이나 특유의 "아집"에 진절머리가 난 독자들도 다수일거라 사료되는 바인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꽤 적절치 못하게 느끼는 대목이다.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 독선적인 "자만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100년간 우리는 이전 시대의 모든 인류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지식의 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활자 매체를 넘어서 디지털 혁명으로 유래된 정보의 우위가 무너진 시대아닌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훨씬 거대한 지적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수많은 정보를 취득하는데 익숙한 현 세대에게 학자의 오만함만큼 시대착오적인 것도 없을테니 말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이 휩쓸고 지나던 그 시대 지식인들이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헤겔"의 지적을 다시한번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최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담기위한 전략으로 유연합을 택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싶다.(이는 기자 출신의 이력이 작용한 측면에서도 이해가능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의도 중 가장 돋보이는 점은 특정 인물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라고 보인다. 저자가 직접 서문에서 밝히듯이 심연을 뒤흔드는 "경계의 사고"에 독자들을 과감히 끌여들일려는 노력의 흔적들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이트"의 리처드 다이어드나 "공-산의 사유"로 파란을 일으킨 도나 해러웨이 같이 도발적인 지식인들도 기꺼이 지면을 할애하여 과감하게 소개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백낙청 선생의 그 독특한 사상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결코 대한민국이 지적 담론의 장에서 더이상 변방으로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지적 사대주의에 열등감을 느끼기 쉬운 우리들에게, 충분히 우리의 것들도 "세계적"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듯이 말이다. 이번 펜데믹에서도 나타났듯이, 대한민국은 더이상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것처럼 작은 나라에 머물고 있지 않다. 동북아라는 위치와 크기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서서히 서구 중심의 인식 체계에서 균형감을 찾아야 진짜 우리의 모습을 비로소 볼 수 있음을 저자 또한 동의할 것이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지적했듯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인물들과 저작들을 담고 있다. 이는 저자의 통섭적인 사유의 지향점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일부 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대목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꾸준히 독서를 해오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인물들이 등장이 난무하고 다양한 분야의 담론에 흽쓸려 자칫 거대한 대양의 한복판에 갖힌 느낌마져 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독자들을 위하여 일종의 "나침반"을 제시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든다.(물론 이러한 시도가 독자들에게 저자의 선입견을 강요하듯이 느껴질수도 있겠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든다.)
또한 어섯 개의 각 장으로 구성된 부분이 다소 모호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눈에 띈다. 평소 다독을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저자의 숨은 의도를 읽고 그 흐름에 맞춰 저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의 깊이가 깊지 않고 분야가 넓지 않다면 각 장의 의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선정한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글은 매우 짧은 흐름으로 되어 있어, 각 장의 의도를 모른다면 "파편화"된 지식들을 피상적으로만 느낄 소기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각 장의 의도와 인물들의 선정 기준을 보다 더 명확히 드러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각 장다마 따로 짧은 서문을 할애하여 앞서 지적한 저자의 의도를 제시하였어도 충분히 그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럼으로써 저자의 의견을 강요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들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측면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인 "요새"라는 단어에서 나는 자칫 "사고의 고착화"가 유래할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략의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사방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프로이센의 지리적 한계로 인해 기존 전략인 요새 위주의 "거점방어"를 기반으로 한 공격 전술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간파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과감한 결단은 내린다. 그것은 요새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기동전술"의 활용을 골자로 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에 기존의 장성들과 참모들은 큰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하였지만 젊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직접 선두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꿋꿋히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요새에 의존하는 기존 전략은 우리 군을 스스로를 수동적으로만 행동하게끔 제약한다. 우리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유연함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기동 전술이어야 한다."
이 주장은 이 책의 저자에게도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얼핏보면 요새라는 든든한 벽으로 자신의 사유의 힘을 강화시키는 좋은 수단이지만, 반대로 그 요새라는 벽 안에 스스로의 사유를 가두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더욱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듯이 사유의 유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요새라는 벽을 허물고 과감히 돌진하는 선두의 "지향점"을 독자에게 제시했으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해본다. 흔히들 말하는 "공감의 시대"에 맞춰 독자들을 위해 잘 차려진 식탁위로 인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모로도르군을 향해 돌진하는 세오덴의 모습을 원하는 독자들도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모든 것을 과도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만 대한다면 정작 이 혼돈의 시대에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한 줄기 빛을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저자는 좀더 과감히 현실세계로 나아가 실천적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여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5. 나오며...


다시 반지의 제왕으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듯이 로한의 왕 세오덴은 자신이 이끄는 기병대와 연합군에 피가 끓어오르는 명연설 후 맹렬하게 돌격한다. 거침없는 돌격으로 힘입은 연합군은 치열한 전추 끝에 승리하지만, 세오덴은 장렬히 전사하며 다음의 말을 남긴다.
"이제 위대한 선조들의 전당에 들어가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다..."
이때, 세오덴의 얼굴에는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평온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장엄한 전투의 승리자로 기록되며 전설의 반열에 오른다. 이 장면이 책을 읽는 내 기억속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토록 거대하고 장대한 사유의 군단을 통솔하고 배틀라인으로 일렬로 서게하며, 독자들에게 마치 거대한 구원군처럼 보이게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닐까... 물론 이렇게까지 느낄 수 있도록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였으며 누구보다도 더 격렬히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접하며 준비했을 저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백척 간두의 미나스타리스 요새에 갖힌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달려와 준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싶다. 분명 나와 같은 독자들은 저자가 위대한 사상의 선조들이 모셔진 전당으로 들어갈 자격이 충분히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생각의요새 #고명섭 #교양인 #철학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