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재택근무의 한계부터 교실의 재발견까지 디지털이 만들지 못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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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5 :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데이비드 색스 저, 202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오늘은 청량한, 그러나 한 낮의 열기가 남아있는 오후의 나른한 하늘을 나는 마주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한 잔의 샴페인을 따른다. 시원한 청량감을  담은, 폭발하듯 날라가는 코르크 마개의 날림으로 시작하여, 투명한 잔 속에 비치는 무수한 작은 기포들, 넘치는 거품으로 그 포말의 역동과 향긋하고도 달달한 과실향아 내 코를 자극한다. 푸른 하늘의 코발트 냉감과 한낮을 지나친 오후의 샴페인이 어우러지고, 한 모금의 순간은 "한 낮의 샴페인이 나를 일으킨다..."는 나폴레옹의 예찬론을 떠올리게 하며 피식 웃음을 머금게하고, 그렇게 느긋한 초여름의 오후는 흘러만 가고 있었다. 무심코,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의 한 순간 내가 느끼고 행복이란 거창한 단어를 기꺼이 부여해도 될만큼 충분히 납득이 된다고 되뇌이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문득 거리에는 늘 그렇듯이 연인들이 지나가고, 늘 나의 작은 우주인 이 작은 골목 구석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표정도, 나의 한순간의 여유가 투사된듯한 부러워하는 눈길도 순간적으로 느껴지고,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내 기억속 한켠에 자리잡아 오늘의 나를 느끼게 하고, 또다시 찾아올 내일을 위한 순간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두에게 공감이 될 풍경이 아니겠는가...

지난 3년간의 지긋지긋한 펜데믹은 정말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앗아갔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바꾸었다. 이제 슬그머니 "엔데믹"을 선언하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그동안의 많은 변화와 성찰들에 대해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렇게 우리는 또다른 우리의 삶을, 마치 그동안의 일들이 없었던 것인양, 그렇게 이어가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게된 계기인 이 책은 데이비드 색스(다소 민망한 어감의 이름이라고 본인도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고 있는)의 또다른 신간 때문이다. 이미 우리에게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린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TED 강연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 작가이다. 앞서 언급한 책을 포함하여 일련의 저서들 제목에서부터 명확히 자신의 지향점을 숨기지 않고 일관되게 말해온 주제는 소위 "아날로그"로 대변되는 인간 중심의 가치 체계가 이미 펼쳐진 "디지털"환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그 고유의 유효성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특별히 "펜데믹"이라는 불가항력적 사태로 인해 강제적으로 (때론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전면적" 디지털 전환의 경험과 그로 인한 여러 문제점들을 돌아보고, 이로써 우리에게 인간 가치 중심의 기술이 아직도 유효하며 이는 대체불가적이고 나아가 영속적일 것이라는 믿음으로까지 우리를 이끄는 예찬의 형식을 띄고있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책의 형식상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거창하게 추상적 담론으로도 접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매우 "실증적인" 공감가능한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번 펜데믹 상황에서 모두가 겪음직한 일상의 문제들을 "일주일"이라는 시간적, 사회적 활동에 빗대어 분야별로 짚어나가고 있다. 회사, 학교, 쇼핑, 도시생활, 문화생활, 대화, 휴식의 7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각 요일별로 상징되는 인간 행위 양식들을 체험적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는 저자의 주된 동기인 "아날로그"적 실제 삶을 보다 독자가 더 친근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재미를 주는 접근으로 보인다.

또한 위 구성으로 논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여러 학자들,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나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의 인지감성,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등 철학적 담론에서 기술적 담론을 거쳐, 종교적 담론까지 폭넓게 건드려보고 있다. (물론 심도깊은 논의는 차치하고, 그 논거의 준거점이 되는 지점들만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가 그동안 "모호"하게만 느꼈던, 그러나 분명히 인지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의 논의장으로 올리기 위해 대중들을 설득하는 장으로써 이번 저서를 기획한 것이 엿보인다. ("디지털 러다이트"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의도를 관철시키고 싶은 저자의 소망도 같이...)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벗어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그 의도의 이면을 경계하며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디지털화 된 세상을 누가 꿈꾸는 것인가? 또한 그럼으로써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라는 원초적인 문제들에 다름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다수의 독자가 동의할법한 "폭거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 그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소위 FANG(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으로 대표되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명시적으로 거론하며, 이들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말한다. 우리가 그토록 누려온 간편하고 저렴하며 빠르게 편리한 소비가, "누군가"의 눈물과 피땀을 희생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누리게끔 조장한 측면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호르크하이머가 일찍이 "도구적 이성비판"에서 지적했듯이, 디지털이 잘못되었다기 보다 우엇을 위한 디지털인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가치판단을 위한 성찰이 없는 도구적 이성은 크나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지난 세기들의 과오를 경계하며, 그 중심에는 반드시 우리 "인간"이 중심 담론이 되어야 하고, 그 가치는 지속적으로 논의될 영원한 주제임을 천명한 맥락과 그 궤를 동기화한다. 결코 디지털은 "도구"이지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다

4. 아쉬운 부분...


고백컨데, 나는 이 책의 서평을 자처한 때부터 이미 작가의 주장에 동조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목적을 명확히, 기꺼이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읽어나감에 있어 전혀 반감이나 무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물론 나를 포함)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 책은 시작부터 "편향"되었다고 오독할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 드는 사례나 인용하는 주장들이 "확증 편향"의 오류가 있을수도 있다고 느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누구나 공감핳 법한, 논증의 여지가 분명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 대해 저자에 덧붙여 말하려고 한다.

먼저 "디지털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이는 감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로 환원되어서 증명되는 명백하 사실이다. "아날로그", 즉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객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물리적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객체에 대한 측정의 문제일뿐 실재하는 모든 존재를 완벽히 "정보화"하는 기술은 현재로써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는 처음부터 "디지털"기술의 의도에 어긋나며, 현재의 디지털기술은 그 탁월한 접근성과 효용성 및 효율성을 고려한 "축소된 이미지"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체험적으로 경험하는 실재와 우리에게 전달되는 디지털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이는 보들리야르가 언급한 "실재의 부재"를 경험하게 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이미지의 "조작 또는 가공으로 인한 실재의 전복"마져 가능케하는 지점이 오리라고 누군가는 경고하지만, 공허한 러다이트들의 회한쯤으로 치부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펜데믹을 통과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실례는 무수히 목격되고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딥페이크로 인한 온라인상에서의 폭력과 같이...) 

 더욱이 가장 근본적으로 "디지털 신봉자"들이 간과한 점은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이용하는 우리 스스로가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가정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디지털"적이지 않다. 보고, 듣고, 만지고, 입에 넣어 맛보며 우리의 뇌를 실재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지각하며 인식을 해온 것은 유사이래로 변함없이 진행되온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실재라고 인식하는 것들을 지각하고 판단할 때는 단순히 특정 감각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종합적 경험"에 기초하여 세상을 이해한다. 따라서 "축소된 이미지"의 근본적 한계를 가진 디지털은 우리에게 경험의 일부를 "체험"하게 해줄지언정, 경험 자체를 대체할 수 없다. 책에서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얼굴의 표정, 그 사람의 말, 살짝 느껴지는 체취까지도 그 사람의 특징으로써 각인되며, 우리는 각인된 거대한 정보들을 모두 충족시킬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축소된 디지털 이미지만으로 행위양식을 강제하면, 우리 뇌는 현재 가용한 감각에 의존하여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디지털적 모호함" (나는 개인적으로 "디지털 기시감"이라고 종종 부른다.) 을 극복할 수 없으며 이는 이번 펜데믹에서 수없이 목격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분석에 초석을 제공한 카를 융은 일찍이 심리학적 분석과 접근법을 주창하며 "페르소나"와 "아니마"의 상보성에 주목한 바 있다. 페르소나(인식의 가면)와 아니마(무의식의 원형)은 때때로 상호대립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며, 외부적 환경에 의해 그 균형이 깨질 경우 어느 한 쪽의 힘이 다른 영역으로 흘러가서 병리적 현상을 일으킨다고 봤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많은 것이 분명해진다. "의식의 세계"에서 아무리 디지털정보를 그럴싸하게 조작하고, 가공한다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이것이 "실재"가 아님을 근본적으로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재라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페르소나"와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갈등관계의 모순에서 우리는 소위 "실재의 부재"를 경험하게 되며 허탈감과 무기력이라는 "병적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디지털은 함께하는 유대성과 공감의 현실을 제약하고 왜곡시키며, 더욱더 사람들이 "실재이 허기"에 지쳐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도록 부추길 뿐이다. 이는 엔데믹을 선언하고 있는 지금을 전후하여 사람들의 폭발적 행위양식 안에 이 무의식적인 집단 반발이 목격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디지털과 공존해야만 하는 현재 우리의 삶에 중요한 점을 이 책은 시사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며 우리 안의 어떤 것들에 대해 더 성찰해야 함을 말이다. 

5. 나오며...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즐겨듣던 "유재하"의 LP를 턴테이블 이에 올려놓고 함께하고 있다. 과거에 CD로, 이제는 물리적 실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스트리밍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이 무슨 원시적인 고집을 부리는가...라고 냉소적으로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처음 이 음반을 듣던 그때의 느낌을 잊지 않는다. 

조심스레 레코드 판을 꺼내어 올리고, 조용히 바늘을 얹는 그 긴장의 순간과 어떤 노래가 나올지에 대한 호기심, 곧이어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투박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따스한 느낌의 LP 특유의 톤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그의 노랫말...때론 약간 마음에 들지않는 곡이 있어도 바로 "skip"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다음 곡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한 인내, 한 면이 다 돌아갈동안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전체의 예술적 조형미, 그리고 그 다음 면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탐험을 기꺼이 나는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유재하를 좋아하는 이유에 영향을 미치고 그가 우리에게 하는 노래에 내 감정을 같이 이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말한다. 시작부터 skip이 되지 않기 위해 "기형적"으로 클라이막스부터 나오는 긴박함의 요즘 곡들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우리가 소중함을 느낄려면 무언가 불편함을 감수할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자기 감정을 투사할 여지도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명제를 현대인들도 어서 깨닫기를 바란다. 이 멋진, 소소한 이야기를 해준 작가에게 감사를 다시 표하며 나는 오늘도 유재하의 노래에 상념에 잠긴다.

 

#디지털이할수없는것들 #데이비드색스 #아날로그의반격 #신간도서

@across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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