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지음 / 메종인디아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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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39 : 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저, 2022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https://photos.app.goo.gl/JiMNNfSMo7VZxt2y7

(최순우 옛집 공연의 한 장면)


때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머나먼 수원에서 서울 성북동으로 살던 집을 옮기며 이사를 오게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사를 마치고, 모처럼의 주말을 맞아 늦잠을 자고 있을 무렵, 어디에선가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었다. 이윽고 귀를 기울이니 어디에선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고, 클래식 공연을 하는 모양새가 계속 들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옥상에 올라갔다. 이 때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마한 한옥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고, 클래식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위에 첨부한 링크의 동영상을 참조.)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한옥의 이름은 "최순우 옛집"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이고, "내셔널 트러스트 1호"라는 타이틀로 당당히 남아있는 유적지였던 것이었다. 

이 최순우 옛집의 내력에 대해 조금만 첨부하자면, 우리에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년)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처하였던 한옥이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타인의 소유로 넘어갔으나, 최순우 선생을 기리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일종의 "사적 유적지"로서 조성한 첫번째 케이스이다. 실제 이 곳에 와보면 근대문화와 관된 모습 그대로 보존이 잘되어 있고, 지금도 많은 이의 발길이 닿는 곳이다. 또한 지자체에서 문화사업으로 전시나 공연을 상시 주최하여 왔던 것을 그제서야 몸소 체험한 것이다. 이후 출퇴근할 때나 집에서 생활을 할 때, 늘 이 한옥을 보고 살았고, 지금도 풍성한 문화적 추억으로 내 기억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개인적으로 촬영한 공연의 일부 영상을 위에 링크로 확인 가능하다.)

이처럼 아직도 서울에는 근대 문화가 서려있는 곳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조선이전의 고대나 중세에 비해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많이 소실되었으며, 최근에야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의 유산들이 재조명받으며 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자연과학을 전공한 분으로, 한참후에야 미술 세계에 빠져 한때 갤러리를 운영하시다, 현재까지 도슨트를 비롯 미술에 관한 대중들과의 소통을 업으로 하는 다소 특이한 경력의 작가이다. (물론 이는 평범한 선입견일수도 있다.) 최근 NFT로 촉발된 미술계의 대중 부흥 운동과 궤를 같이하여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는 서적들 중에서도, 한국의 근대미술에 대해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같은 화가들을 포함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화가들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다. 특히 이런 작가들을 다룸에 있어 기존 작가들과 다르게,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미술의 발자취와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같은 유서있는 장소부터 구 구세군회관과 같은 시대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포함시켜 그 당시의 분위기와 그림에 얽힌 사연들을 다루고 있는 특색있는 책이다.

3. 인상적인 부분...



먼저 이 책은 외피적으로는 "여행 에세이"에 가까운 면이 보인다. 마치 동네 산책이나 시내 산책을 나가듯이 가벼운 여정으로 독자들을 대동하여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양새이다. 아마 이는 도슨트로 오래도록 활동하는 저자의 습성에 기인할 것일수도 있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 특유의 친절함에 있다. 마치 곁에 좋은 동행자를 두고, 게다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과 함께 하는 동반 산책의 느낌이 역력하다. 따라서 이 책을 그냥 들고, 서울 지도를 확인해가면서 그대로 하나의 테마 여행으로 해도 될 정도이다. (실제로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 앞서 소개한 장소들을 하나의 지도에 모아 잘 알아보기 쉽도록 배치하였다.)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근대 화가들의 자세한 이력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같은 작가들은 그동안 많은 전시회와 여러 매체에서 꾸준히 다뤄왔던 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서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 그런데 본작에서는 박노수, 이상범, 나혜석과 같은 화가들을 소개하며 다양한 작가들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미술 대중 부흥운동으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 광풍이 "작품"으로서가 아닌 "투자대상"으로 비춰지는 양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있어야 작품으로서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가는 미술계의 관행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된 비평이나 대중들에게 선보임없이 단지 가치의 척도로만 기능하게 되는 비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일단 양적으로 활성화된 각종 전시회를 통해, 전례없이 대중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늘어나 일면 반갑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각 화가나 그림에 대해 얽힌 에피소드들을 자세히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사실 예술작품의 평판에 있어, 호사가들의 입소문은 필수 요소이다. 하다못해 마네의 "올랭피아"도 처음에 그 혁신적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분노와 관심이, 거꾸로 후에 인상주의의 태동을 만방에 떨쳐 많은 작가들이 영감을 얻은 일화도 있지 않은가. 세상 만물에는 발생사가 존재하듯, 그림에도 그에 걸맞는 자기만의 역사가 존재할 때, 소위 "전설"은 완성되는 법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 전설에 열광하고 나중에 하나의 "표상"으로 각인화하는 과정을 겪게 마련이니, 저자 또한 이러한 에피소드에 관심을 두고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4. 아쉬운 부분...

본 저서는 여러모로 기존 미술계 역사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이 돋보이는 저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단점이 보인다. 먼저 미술이라는 주제를 명분으로 걸고 있는 저서치고는 관련 그림의 화보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독자들은 미술을 주제로 다루는 책에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작품"의 화보이다. 아무리 에피소드에 대한 설명이 있다해도 그 실체적인 본질의 중심에는 늘 "그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작품들의 화보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책의 맨 끝에 순차적으로 작게 등장한다. 물론 어떤 기억과 장소에 대한 관련성이 이 책의 주된 촛점이라고 설득하더라도, 그림에 관한 독자들의 갈증을 풀기에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추측컨데, 저작권 문제와 비용문제가 주된 요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만일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화보를 저서 곳곳에 배치한다면,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의 전개상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의 접근성 또한 덩달아 높아질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이와 같은 구성을 취하지 않았나 사료된다.)

5. 나오며...

우리가 일제강점기의 일상사를 생각할 때, 간과하는 지점을 하나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보다 상당히 교육 문화적으로 뒤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의지보다는 점령국 일본의 기조 정책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첫째로, 일본은 경성을 수도 지위를 박탈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한반도 지배의 핵심 지역임을 인정했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 여전히 경성을 유지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본토(일본)에 못지 않은 수준을 가졌음을 여러 사료로부터 알 수 있다. 게다가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남촌"으로 대표되는 사대문 남쪽 지역에 자리잡음으로써,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화적 유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둘째로, 2차대전 당시의 동맹인 독일과의 교류가 오늘날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에 못지 않은 동시성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예나 지금이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며, 유행의 최일선에 위치한 최첨단의 도시이다. 따라서 동맹인 일본의 동경에서도 매우 동시대적으로 유행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 경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성은 문화나 유행에 유럽 못지 않은 조류를 따라가는 도시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 민족의 자율적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비극일 것이다.) 따라서 그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있고, 일제 청산이라는 기치하에 상당수 묻혀버린 역사가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최근에 이를 다시 재조명하는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고, 그에 따라 대중들도 상당히 그 시절의 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이와 같은 시도에 더해져 이 저서도 기존의 시각을 넓히고,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한다고 믿는다.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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