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책자 생리학 ㅣ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평점 :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29 : 산책자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저, 2022(1841)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어김없이 주말이 오면, 난 저녁 식사를 위해 오후 일찍 장을 보러 나간다. 주말 만찬을 위한 메뉴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동네마트나 재래시장 보다는 대형마트로 향하게 되기 마련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생각한 만찬 메뉴들에 어울리는 각종 식재료와 그에 걸맞는 주류가 다같이 한꺼번에 구비된 곳은 그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열대를 가득 채운 온갖 재료들과 다양한 식품들 앞에서 오늘의 메뉴를 위한 나의 구상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신없이 쇼핑을 하고있자면, 늘 불청객들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들이 같이 나온건지 운동장을 방불케하는 어린 아이들의 쉼없는 질주, 공중매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머니들의 무례한 행동들, 방금 자다 나온것처럼 대충 걸치고 나온 아빠들의 모습...그제서야 내가 나만의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 사이에 나와 있음을 실감하게 되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잠시 눈을 팔고는 한다. 때로는 그림 속의 군중들의 모습처럼 밋밋하게 지나쳐갈 때도 있고, 셜록 홈즈에 비견되는 예리한 관찰력을 동원하여 분석할 때도 있다. 그러다보면 시간의 흐름이 순간적으로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존재하게 되고, 어느새 나의 장보기가 끝나감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비단 마트뿐만이 아니다. 가끔 의류를 구매하기 위해 들리는 대형 쇼핑몰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목도할 수 있고, 천지에 가득한 상품들과 함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간단하게 먹거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간편한 세상인가! 나는 현대의 문화는 단연코 "몰 Mall"로 대변되는 대량 소비 사회라 감히 규정한다. 내 의견에 동의를 못한다면 슬픈 일이다. 당신의 이해와 상관없이 휴일에 한번만 몰에 나가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소비에 "진심"인지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 "산책자 생리학"은 19세기 파리로 대변되는 "벨에포크 Belle-e-poque" 시대의 한가운데에 루이 후아르트의 베스트 셀러 "생리학"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저자는 당대의 저널리스트로서, 남다른 예리한 관찰력과 그 특유의 해학으로 세계 최초의 풍자 일간지의 편집자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 시기는 바야흐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서구 근대 국가들이 눈부신 산업 발전과 과학 기술력을 자랑하며, 이른바 소위 "제국주의"의 시대로 나아갈 그 무렵이다. (그리고 우리를 비롯한 중동과 아시아의 침체 시기이기도 하다.) 하루게 다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그 상징과도 같은 대도시 "파리"에서 시대의 흐름과 인간 군상들을 마추질 수 있고, 이를 저자는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소재로 차용해서 큰 반향을 얻은 바 있다. 본 저서는 특별히 "산책"이라는 소주제에 맞춰 평소 자신의 생각과 지적 유희를 무겁지 않게 위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대의 모순들이나, 어두운 면을 슬쩍 보이기도 하는 날카로움을 또한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이 책에서 저자는 산책을 하며 (가상으로) 동행하는 독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하는 일없이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는 "룸펜"들, 애써 짐짓 있어보일려고 비만한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나 이내 땀범벅이 되고마는 "부르주아지"들, 온갖 일들을 겪으며 닳고 닳아 언제든 만만한 시민들을 등쳐먹고자 하이에나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양아치"들... 정말 살아 숨쉬는 듯이 생생하게 등장하는 인간들에 대한 묘사는 보는 내내 흥을 돋운다. 게다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단순한 현장의 나열이 아닌 저자 특유의 지적 관찰력에 의거한, "미리 세심하게 분류"된 인간군상들의 나열이란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때로는 위대하게, 때로는 측은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온종일 "비아냥"거리는 그 특유의 해학은 정말 대목마다 웃음을 유발하게 만든다. (심지어 200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또한 저자가 분류한 각 인간 군상들을 매우 촌철살인의 일러스트로 그려내어 풍부하게 배치해 놨다. 글에 지쳐갈만한 독자들도 이 일러스트만 보는 재미에 한장씩 책을 읽어나가게 만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잘 표현한 그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는 저자의 일간지에서 작업한 전설적인 판화가 "그랑빌"과 탁월한 풍자화가 "도미에" 같은 유명 작가와 일종의 콜라보 작업을 통해 이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만드는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몇 줄을 넘어가는 장황한 문장이 단 하나의 그림으로 한번에 표현되는 그 일목요연함을 일찍이 편집자로서 알아보지 않았을까 사료된다. 매우 효과적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또한 그림 자체로서도 예술 작품이 된다는 저자의 안목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실제로도 많은 예술가들과도 교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그 특유의 "비아냥"거리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례"하지는 않은 풍자의 문체가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세상 모든 것에 삐뚤어지게 시비를 거는 듯한 비평가 특유의 시선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독자들이 불편해하게 하지도 않고, 매우 위트있게 비꼼으로써 표면상으로는 코메디의 형식을 취해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쓰여져 있다. 그러나 등장하는 다양한 문학작품의 인명, 작품 곳곳에서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역사적 배경이 서린 장소들, 시대적 함의를 내표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가볍게 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라"는 저자의 숨은 의도도 눈에 띈다. (당시에는 검열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니 말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작품에서 전면적으로 다루는 "산책"은 말 그대로 인간의 행위양식을 대표한 것 뿐이다. 반드시 산책을 선택해야하는 이유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저자의 주장대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인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굳이 "산책"이 아니어도 또 다른 무엇이 되어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를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책의 고도로 계산된 그 의도가 진심으로 느껴졌고, 거기에 기꺼이 동의하여 한참을 웃으면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저자의 지적 유희에 동참한다. 이 책은 대단한 철학책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싸구려 소설에 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경박함에 대해 뒤틀린 심정으로 비아냥대는 지성인의 한 편의 블랙 코메디인 것이다. 아쉬운 것은 단 하나, 이 책이 케케묵은 고전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도입부에서 밝혔듯이 나는 이 책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말하고 싶다. 단지 그 당시의 파리 시내를 산책하는 것에서 현대의 "쇼핑몰"을 거니는 사람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5. 나오며...

이 책이 나올 시점의 파리와 동시간대의 한국은 적어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100년이 넘는 간극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저자가 느낀 감정과 유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점은 채만식과 같은 작가들의 "태평천하(1938)" 정도에 비견할 수 있겠다. 역사는 반복된다. 산업의 발달 정도와 사회 성숙의 단계, 그리고 도시화의 정도에 따라 연도는 다르지만 현대 국가들이 대부분 겪었던 시절의 어느 한 순간일 것이다. 단지 이 시기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들이 동서양 공통으로 존재하고, 그 원류가 되는 작품이 이 책인 것이다. 또한 또다시 세대가 변함에 있어 이러한 시각의 작품들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다. 지금도 이 취지를 이해하는 독자들이 읽었을때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가. 고전이 지닌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부디 과거의 작품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 책을 "쇼핑몰"의 카페에 가서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보고 싶다. 겉모양새만 다르지, 바로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의 예리한 관찰을 여전히 목격할 수 있다. 아직도 이 책을 못접해본 독자들에게 간곡히 이와 같이 부탁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책이다.
#산책자생리학 #루이후아르트 #페이퍼로드 #파리 #풍자소설 #19세기 #벨에포크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a_seong_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