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15 : 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저, 2022(1930)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한때 한국 가요계를 호령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한 구절이다. 일찍이 이 시기를 학창시절로 보낸 나에겐 (또는 동년배의 세대에겐) 이 곡의 가사가 떠오를 것이다. 사랑타령 따위보다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곡들과 가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서태지와 아이들은 완전히 가요계를 바꾸어놓았고, 지금에 와서 K-팝을 운운하는 이 시점의 대중음악계는 분명 이들의 혁신에 빚을 지고 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 더 공교육의 모순점들은 심화되고, 이제는 그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멀리 근대 국가의 성립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변되는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발로하고, 이를 국가의 근간으로 표방하는 근대 국가가 성립되어 가면서부터 필연적으로 두 가지의 기틀이 마련된다. 하나는 시민에 의한 "군대"의 필요성과 압도적인 폭력(또는 무력)의 독점이다. 굳이 "리바이어던"을 들먹이지 않아도, 대내외적으로 발생하는 갈등해소, 사회불안의 안정, 치안 행정의 기반에는 "국가"가 시민들의 의사에 근거하여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시민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이다. 각 나라 마다 의무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시민들의 소양과 국가관을 확립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여기서 비극의 단초가 제공되는 것이다. 소위 "공교육"은 국가가 원하는 "국민"의 상을 규정하고, 교육 제도를 동원하여 "바람직한 국민"을 만드는 데에 그 촛점이 맞춰질 경우가 많다. (파시즘이나 구 공산권의 교육이 그 극단적인 예이다.) 창의성이나 개인의 다양성은 심할 경우 말살되며, 전체 사회를 하나의 "규격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지배 계급에는 늘 존재하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민주주의를 표방한 현대 국가들은 이를 견제하고자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다양한 방법들을 통하여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려는노력들이 있어왔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프라하에서 유태인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상당히 권위주의 교육으로 점철된 프라하에서 느낀 공교육의 야만성과 무기력을 경험하고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 권위주의의 심화로 격랑에 빠져들고 있는 1930년대에 이 소설을 출간했다. 예상되다 시피 나치 정권에 의해서 "금서" 처분을 당하고, 수난을 겪게 되지만, 전후 다시 복권되어 독일 교과과정 서적으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암울했던 당시 사회상과 오직 "승자"독식주의로 대변되는 국가관에 의거, 교육마져도 그에 부역하던 시기였으니, 그 분노와 절망은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3. 인상적인 부분...
책의 첫 서문에 "세상은 세 가지 것에 근거한다. 바로 진리와 정의, 사랑이 그것이다." 라는 문장으로 포문을 열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저자는 학교에 저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마, 요즘 한국의 현실에 오면 철부지 아이라고 치부할 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저자는 "도데체 무엇을 위해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학교의 교육에 순응하고 졸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이후의 취업과 인생에서의 진로가 보장되는 당시의 구조, 그럼으로써 학교에서 최고의 목표는 "졸업시험"으로 대변되고, 이에 모두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안에서 교사는 절대 권력을 부여받게 되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학생들을 파멸시킨다. 마치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의 명작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가사와 알란 파커 감독이 그려내었던 뮤직비디오의 원형을 그 당시에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슬프게도 한국 사회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또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창의적 발언을 묵살하고, 오로지 교수의 의견만이 절대진리이며 그에 따르는 학생들만이 좋은 점수를 받아가는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누가 그런 권위를 그들에게 부여했는지 되물으며 현실을 고발한다. 마치 현재 한국 국어 교과서에서 한 편의 시를 두고 "여기는 (밑줄긋고) 비유법을 쓴 대목이며, 저기는 저자의 의도가 이렇게 반영된것이야"라고 기계적으로 해부하며 그 시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떠오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기존의 책을 찢어버리고 "이런 비평은 쓰레기통에나 갖다 버려랴"라고 극단적으로 비판하며, 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학생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장면이 겹쳐진다.
마지막으로 모든 갈등이 수렴하고 극적 전개는 숨가쁘게 치달아, 결국 화자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폭발하였음에도, 정작 합격했음을 허망하게 알리는 마지막 신문기사가 이 부조리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한 편의 블랙코메디 같은 결말을 남긴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그토록 주위에서 원하던 "합격"을 받았을텐데, 정작 화자는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모순들을 견디어내지 못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리는 충격적 결말을 보여줘,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4. 아쉬운 부분...
1930년대에 초판이 나온 소설인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독자들이 읽기 수월한 구조는 아닌 것을 인정한다. 사건의 전개나 심리 묘사에 있어서 고전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올드함"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가 "9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게 번역하여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소설의 시의성은 현제에도 적절하며, 더욱이 교육제도의 붕괴마져 예건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더욱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출간 의도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5. 나오며...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작품이 전후 독일 교과과정에서 채택된 공식 작품이었단 사실이다. 물론 전후 독일이 "전범 국가"로서의 이미지와 국민 의식을 바꾸려 군대, 정치제도, 교육제도를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대내외적으로 "나치즘"과의 연관성을 지우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다 하겠으나, 대놓고 공교육의 허상과 헛점을 여과없이 비판하고, 더욱이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고발하는 이 작품을 과감히 채택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만일 요즘 한국 고교과정에서 "태백산맥"이 참고작품으로 채택되었다면 어떤 논란이 일어날지 불보듯 뻔한 현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처에서 권위주의 정부 또는 귄위주의적 지도자들의 대거 출현으로 불안감이 조성된 국면이 있다. 그런 와중에 최근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 "평화헌법 개정 "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 등등 전후 약 70년간 이어져운 "평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시 "갈등의 시대"로 전환됨을 알리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를 그동안 견제하여 온 "지성"의 힘마져 "맹목적인 교육"에 의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멸시킬만큼의 과학적 힘을 보유한 만큼 다시한번 휴머니즘의 따스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이상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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