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갔더니 동기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ㅇㅇ(오빠/형)~ 얼굴 진짜 좋아졌네!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졌어.”

 

  물론 나는 단박에 알았다. 한국어 화법의 전통으로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완곡어법’인데, 그네들이 나에게 그것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살이 쪘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살이 찌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자그마치 ‘체중 미달’로 학교에서 실시한 일제 헌혈에서 제외되기도 했었으니, 말 다 했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영양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아서, 몸무게‘만’ 따지고 보면 어지간한 남성 아이돌 가수 못지않았다. 술, 패스트푸드 등 체중 관리에 안 좋은 것들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도 그 몸무게를 유지했으니, 돌이켜보면 그때가 축복받은 시절이었다.

 

  과거의 영광 늘어놓으면 뭐하나. 운동은 끔찍이도 싫어했고 먹는 것, 특히 살찌는 음식은 끔찍이도 좋아했으니 살이 찌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새삼스럽게 배우자와 함께 하는 외식(=맛집 탐방)의 즐거움에 빠졌다. 집에서도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결국 결혼한 지 1년이 안 된 시점에 몸무게 증가폭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예의 인상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내가 죄인이다. 배우자를 살찌운 죄인…….

  BMI 수치가 ‘비만’으로 나오는 일은 내 인생에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였다. 조금 더 살이 찌면 ‘고도비만’으로 넘어가겠다 싶었다. 당장에 다이어트 시작.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그런데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운동이 싫다. 그럼에도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무한반복.

 

  그러던 중에 ‘생각하는 운동쟁이들’ 피톨로지의 신간을 보게 되었다.

 

  

 

  피톨로지는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를 통해 생존체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생존체력이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체력이다. 바야흐로 ‘맨정신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 시대이다(바꾸어 이야기하면 이 시대는 불안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 매일 스스로를 번아웃시키는 시대다). 식스팩이니 S라인이니 하는 몸짱이 되겠다고 운동을 하면, 안 그래도 지치는 일상이 더 지친다. 그래서 피톨로지는 제안했다. 일상을 보다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체력, 생존체력을 기르자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소개된 운동법은 정말 간단하다. 스쾃, 버피, 푸시업, 플랭크. 네 가지가 끝이다. 물론 실전으로 옮기면 알게 된다. 이 운동들은 정말 간단하지 않구나, 라는 혹독한 현실을. 결국 나는 생존체력도 제대로 못 기르고 스쾃 단계에서 며칠 버티다 뻗어 버렸다. 그러면 그렇지.

  어찌 되었든, ‘생존체력’이라는 개념의 제안도, 이것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컨텐츠로 가공하는 피톨로지의 내공에는 신뢰가 갔다. 그래서 블로그도 찾아가 업데이트된 새 글도 꾸준히 읽고 했었다.

 

 

 

  그런 피톨로지가 신간을 냈는데, 무려 다이어트 책! 제목부터 거창하다. 『공포 다이어트』. 그렇지. 살을 뺀다는 건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힘든 일이야……. 이건 아니고. 책 소개를 보니 여기서의 ‘공포’는 ‘공복감/포만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즉, 공복감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공포 다이어트’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덜 먹으면 빠진다’는 것인데,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우리는 당연한 소리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마나한 소리, 식상한 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대개 진실은 그 ‘하나마나한 식상한 소리’에 있다. 안 먹으면 살이 빠진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리 쉽게 굴러가던가. 어쩌다 과음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미친 듯이 야식이 당길 때도 있고, 아픈 시기가 있어 입맛이 싹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도 있다. 먹는 게 계획한 대로 조절되지 않다 보니, 다른 묘수를 찾게 된다.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지방 다이어트 등등…….

 

  피톨로지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정도(正道)를 포기하고 샛길로 가는가? 단지 다이어트의 목적이 ‘살만 덜어내는 것’인가? 물론 다이어트는 살 빼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살 빼서 뭐 하려고? 예뻐지고 멋있어지려고? 아니면 단순히 건강해지려고?

 

  최근에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거식증으로 활동을 중단한 일이 있다(관련 기사). 살이 빠지면 지금의 한국 사회 기준으로는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게 맞다. 그런데,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것이 인생의 유일 목적인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의 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문제에 주목해 본다면, ‘어떻게든’ 살을 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살을 빼되, 건강하게 빼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대다수는 아이돌이 될 것도 아니고, 아이돌이 될 수도 없다.

  결국 우리 생활 습관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피톨로지는 이 점에 주목해, 지극히 기본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제시한다. 공복감과 포만감의 패턴을 포착하고, 이를 조절해 궁극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것.

  물론 지금 당장 살을 덜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피톨로지가 제안한 방법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두 달 뒤부터 바캉스 철인데, 그렇게 천천히 해서 살 언제 빠지냐고! 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다이어트는 결국 내가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을 잃은 마른 몸을 보고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 할, 평생까지는 무리더라도 장기간 함께 할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다면, 일단 먹는 것부터 차츰 줄여나가는 게 어떨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남들이 다 자는 새벽. 아직 갓난쟁이인 딸을 돌보느라 낮밤을 바꿔 생활하다 보니 저녁을 열두 시 이전에 먹고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공포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나흘째, 예전 같으면 4시가 되자마자 패스트푸드점에 아침 메뉴 주문을 넣었을 텐데(‘x모닝’은 내 소울 푸드다), 물만 마시며 버틴다. 다음 끼니는 자고 일어나야 먹을 수 있다.

다이어트는 장기전이니까, 작심삼일하지 말고 버텨야겠지. 그래도 배고픈데 참는 건 정말 힘들다!

 

 

  ps. 『공포 다이어트』 에필로그에서 밝히기를, 원래 ‘교양과학서’로 기획되었던 원고가 지금의 ‘실용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그 증거다. “‘다이어트 책’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내용이 많아?”라고 생각이 되신다면, 두 번째 챕터만 볼 것을 권래 드린다. 방법론으로만 따지자면 두 번째 챕터가 핵심이다.

  ps2.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색이 ‘다이어트 책’이니만큼, 첫 번째 챕터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나름의 동기부여를 하는데,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식/서술인지에 대한 고민을 잠깐 했다. 잠깐 했는데, 뭐, 다이어트 책이니, 어쩔 수 없겠다 싶어서 가볍게 읽고 넘어가버렸다. 혹시 모르니, 참고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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