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역사한당> 미션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처음을 되새기는 의미로, 첫 미션 포스팅을 썼을 때와 그 내용을 떠올려 본다. 1주차 포스팅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 사회탐구 과목으로 3사(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를 선택했다고 적었다. 좋아하지 않는데 선택권이 있는 네 개의 자리 중 세 개를 역사 과목으로 채웠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역사 과목을 좋아했을까?

 

  입시나 취직을 준비하는, 그러니까 수능이든 공시든 어떠한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공부에 대한 방법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암기’와 ‘이해’로 나뉜다. 암기를 먼저 하고 이해를 할 것이냐, 이해를 한 후에 암기를 할 것이냐. 시험을 더 이상 치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유의 선문답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험생은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그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론을 하루라도 빨리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준비하는 시험의 강사들도 강의 첫 시간에는 상기한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쨌든 시험에 합격해야 할 거 아니냐고!

 

  역사 이야기를 하다 왜 뜬금없이 암기니 이해니 하는 이야기를 했을까? 정규교육과정을 지나온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기본적으로 ‘역사 과목=암기 과목’이라는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 주요 과목이 아닌데 다루어야 할 항목들은 많다. 인물, 사건, 연도, 왕조 및 단체명, 기타 등등. 그럼 주요 과목이 아니니 시험도 안 보거나 덜 봐서 다양한 역사관을 접할 기회로 삼으면 좋으련만, 이 과목도 시험을 본다! 그렇다면 안팎으로 말이 많은 역사적 사항을 바탕으로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누가 봐도 ‘객관적’이라고 인정될 만한 사항을 바탕으로 출제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안다. 이상은 전자에 있었지만, 현실은 항상 후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역사=한 번 암기하고 말 것’으로 이해해 버렸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암기한 것을 쉽게 잊어버렸다. 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으므로.

 

  나 역시 이러한 혐의, 그러니까 역사를 역사로 대하지 않고 시험용 도구로 대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머릿속에 내용을 ‘입력’하고 ‘보존’만 잘 하면 시험에서 두고두고 써 먹을 수 있고, 그 결과로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3사’를 선택했던 진짜 이유다. (덧붙여, 국사는 당시 모 대학교 입시전형에서 사회탐구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과목이었다. 모 대학을 가려면 국사를 억지로라도 좋아해야 했다. 내 경우, 억지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에는 다양한 사람과 중요한 사건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사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이는 드물 터,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민족의식이 투철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요새 그런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당연히 우리 역사의 민족주의적 해석도 경계하는 편이다(환단고기에 열광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질색’한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찾고,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통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할 뿐이다.

 

  『쟁점 한국사』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국사를 세 개의 시기(전근대, 근대, 현대)로 나누어 시기별로 여덟 개씩, 모두 24개의 주제를 다루었다. 교과서의 역사와 다른,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하다 보면 흔히 흥미 위주의 야사로 빠질 우려도 있는데 『쟁점 한국사』는 그러한 측면에서 균형감각을 잘 잡았다. 물론 주제에 따라 어떤 주제는 다른 주제와 일정 부분 겹치기도 하고, 하나의 사건이나 흐름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것도 있다. 이 많은 역사적 쟁점 중에서 독자와 공명하는 부분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의외로(!) 전근대편에 있는 강종훈 교수의 「신라의 여왕 출현, 어떻게 가능했나」가 깊게 인상에 남았다.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성골’과 ‘진골’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한 것도 유의미했지만(이런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글 말미에서 과거사와 현재의 사회 현실을 잇는 통찰의 전형을 보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을 앞두고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상상을 뛰어넘는 실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능과 후안무치의 대명사로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의 몰락이 여성의 정치력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촛불집회 때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항의 의사를 전달한 여성단체에게 ‘친박 페미’ 운운하는 딱지를 붙인 SNS 기반 논객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최근 TV 토론에서 성소수자 관련하여 실언을 한 유력 대선 후보를 두둔하며 마음껏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냈다. 역사적 관점이 없으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의 인식과 사고 체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에 대해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국가가 무능하고 부패한 이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를 참담하게 목도했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10년의 폐허 위에서 새 정부를 세우는,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모두 폐허 위에 서 있다. 우리 모두 그 동안 조금씩은 망가졌을 수도 있다(당장 유력 대선 후보의 발언도 5년 전보다는 후퇴한 수준이라 평가된다). 이제부터 망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더는 폐허를 새로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퇴보의 순간에 있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