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 「초혼」 中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넋을 이승으로 부르는 절규. 「초혼」의 어조는 「진달래꽃」으로 대표되는 김소월의 시적 어조와는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겹다는 임에게 진달래꽃을 뿌리고 반어법을 구사하고 그러지 않는다. 곱게 돌려서 이야기하는 대신 떠난 사람을 직접적으로 목 놓아 부른다. 이 시만 보면 김소월의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 자신으로 생각하는, ‘물아일체’의 진정성을 가진 이다.

 

  시인으로서의 김소월은 한국문학사에서 독보적 존재다. 하지만 김소월이 쓴 「초혼」의 시적 화자, 그러니까 대상 하나를 자기의 목숨(또는 정체성)과 동일한 무게로 두고 끊임없이 그 대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갈구하는 사람도 한국 사회에 드문, 독보적 존재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작년에 한 회고록이 출간과 동시에 때 아닌 ‘북풍’을 일으켰다. 회고록의 저자는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참여정부가 UN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과 관련해 북한과 사전 연락을 주고받았다’라는 주장을 회고록에서 한 모양이다. 이 논란이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다시 점화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합리적 보수’로 규정한 후보가 토론 초반에 이 회고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력 후보를 공격했다. 이에 다른 후보가 ‘합리적 보수’ 후보를 비판했다. 비판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북한이 없었으면 보수는 선거를 어떻게 치렀겠어요?” (관련기사: http://omn.kr/n4pm)

 

  유력 후보 말마따나 ‘제2의 NLL’이라고도 할 수 있는 회고록 사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써 놨지만, 정작 나는 회고록이 출간되었을 당시 해당 사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연히 회고록도 읽어 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놈의 북풍, 꺼지지도 않는구나. 그런데 이 지겹고도 식상한 북풍이 똑같은 내용으로 또 부는 것은, 대통령 선거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한국에서 보수의 본질은 국내의 모든 정치적 현안을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과 연결 짓는 능력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한국의 보수파는 해외의 극우파에 가깝고, 한국의 진보파는 해외의 보수파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흔히 접한다. 아마도 한국의 정치 지형도가 보수파에 유리한 식으로 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희한한 기준으로 갈리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바로 북한 문제다. 범세계적 평화와 인류 평등 실현에 앞장서야 할 것 같은 진보파가 정작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으며, 반대로 국내의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국익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둘 것 같은 보수파는 북한 정권을 어르고 달래기보다 도발하고 대치하여 긴장 국면을 조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뒤틀린 기준은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역사의 상흔이다. 해방 후 신탁통치에 찬성하느냐(친탁), 혹은 반대하느냐(반탁)를 기준으로 좌익과 우익이 나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한국적 좌우익 구분 기준’의 기원이 된 것이다.

 

  『쟁점 한국사: 현대편』에 수록된 정병준 교수의 「해방과 분단의 현대사 다시 읽기」에서는 해방 공간의 운명을 가로지른 몇몇 역사적 순간 혹은 주체를 조명한다.

  첫째,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논의치고는 내용적 측면과 시기적 측면 모두 적절하지 않았던 모스크바 회담 결정.

 

  “모스크바 회담에서 한국 문제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고,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만약 양국이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직후에 대한정책을 결정했다면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모스크바 결정은 시기적으로 너무 지체된 정책적 결정이었고, 내용적으로 실현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한국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둘째, 모스크바 결정 이후 각국의 진영 논리와 이해 관계에 따라 한국 문제를 자의적으로 처리하고자 한 미국과 소련.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미국은 4대국과 협의하는 신탁통치 단계에서 미․영․중 대 소련의 3대 1 대결구도로, 국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소련은 오랜 식민통치를 겪은 한반도에서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폭발 일보 직전이므로, 임시정부 수립 단계에서 큰 방향에서의 좌파적 정권, 즉 친소적 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고 판단, 국내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국제적 우위를, 소련은 국내적 우위를 자신의 정책적 지렛대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셋째, ‘소련은 신탁통치, 미국은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던 동아일보의 계산된 오보.

 

  “한국인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이 보도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 보도에 기초해서 신탁을 반대하는 반탁, 신탁을 주장하는 소련에 대한 반소,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이 반탁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즉 반탁=반소=반공운동이 된 것이다. 사실 반탁의 핵심논리는 한국인들이 즉시 독립할 자격이 있으므로 이를 부정하는 외세를 배격하고 즉시 독립하겠다는 반탁=반외세 즉시 독립이 타당했다. 그러나 전혀 사실과 다른 반소․반공이 핵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모스크바 결정의 사실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 반탁운동은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의 3․1운동에 비견될 정도로 민족주의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게 집결된 사례다. 이렇게 집결된 에너지가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의 에너지 대신 즉시 독립을 향한 긍정의 에너지로 폭발했다면, 한국현대사의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필자는 모스크바 회담 결정 내용이 반탁운동으로, 종국에는 분단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한 원인으로 당시 한국 사회 정치 지도자 계층의 권력투쟁을 든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 세력 보전을 위해 지지층이 결집된 지역에서 운신했을 뿐, 조국 통일을 위해 대국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해가 된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한반도의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한반도를 무대로 자기 이익의 최대 실현만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리바이어던’의 재림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상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이어져 왔다. 북한, 친북, 종북, 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이름이여!

 

  요새 한국 문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장강명 작가는 작년에 통일 한국의 미래를 가상으로 다룬 장편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출간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니, 한국의 보수파들이 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최근에는 눈치 보여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던 바로 그 메시지 아닌가! 그러나 정작 작가는 소설 출간과 관련해 진행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밝혔다.

 

  “보수진보를 떠나서 북한이 비정상국가고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인 건 맞다. (중략) 다만 그것과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하고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립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543)

 

  TV 토론이 끝났다. 정책과 상관없는 네거티브 공방만 오갔다는 언론의 평가가 있다. 언론이 뭐라 하든, TV 토론에 나선 다섯 명의 후보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되어 향후 5년간 국정의 기본 방향을 정할 것이다. 부디 그 때에는 10년 전에 참여정부가 북한에게 어떻게 했는지의 문제 같은, 민생과 1도 상관없는 쟁점이 지금보다는 덜 전파되길 바란다. 부디 그 때에는 북한 문제에 따른 해외 정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될지 보수파와 진보파가 모두 ‘합리적’으로 방법을 궁리하길 바란다. 지금은 21세기고, 지금의 대중은 오보 하나에 쉽사리 입장이 나뉘었던 해방 직후의 대중이 아니다. 대중은 민생과 동떨어진 ‘북풍’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이 와중에 역사한당’ 3주차 미션: ‘한국의 진보 보수를 나누게 된 역사 쟁점’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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