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배우자와 함께 오찬호 선생님의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출간 기념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강연의 주제는 왜 한국 사회에서 소위 ‘공시(공무원 시험)’ 열풍이 생겨났는지, 공시 열풍을 있게 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논의한 책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정도였는데, 강연에서만 언급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오찬호 선생님이 한 공시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단다. 그에 대한 공시생의 답: “최순실이 누구예요?”

 

  여기까지 읽은 사람 중 누군가는 공시생의 몰역사적 인식에 대해 고상하게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요지는 그게 아니다. 그만큼 ‘평균적인 인간의 삶’을 위해 청춘들이 바치고 있는 열정의 정도가 기이할 정도로 크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공시생은 공시 준비를 위해 모든 사회적 커넥션을 끊어버렸었다고 하니 말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마냥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나도 현재 공시생과 비슷한 수험생인데, 수험생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희한할 정도로 없거나 망가진 사람들을 주위에서 생각보다 자주 목격한다. 그러다 보니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굳이 쟁점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기대되는 것들조차도 논란과 쟁점의 대상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최근에 광주 학살의 주범인 사람과 그 부인이 나란히 회고록과 자서전을 펴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미친X이 욕먹고 오래 살더니 흰소리를 지껄이네’ 하고 무시해야 하는 게 맞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해당 도서 서평란을 보니 그 추종자들이 학살범 찬양과 광주 비하 등 차마 입에 담기 싫을 정도의 쓰레기들을 서평이랍시고 도배를 하고 자기네들끼리 추천을 남발한 것이었다. 그걸 본 내 첫 심정은 솔직히, 암담했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적폐가 청산되기는커녕, 그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라고, 독재도 당연했던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국정 교과서가 정부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정 교과서는 사실상 불발되었지만, 검인정 기준이 사실상 국정 교과서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대로라면 무늬만 검인정인 교과서들이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정농단을 저지른 무리들은 지금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지만, 법의 심판이 능사만은 아니다. 최근에 회고록을 펴낸 학살범도 법적으로는 ‘사면’됐다. 그렇기에 지금,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미 있는’ 역사적 쟁점을 가리고 토론하여 역사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평가를 내리는 일이다. 국정 교과서를 추진했던 무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올바른 역사’ 말고.

 

  역사적 전환기에 타이밍 좋게 『쟁점 한국사』가 출간되어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집에는 책 둘 공간이 부족해 전자책으로 샀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3사(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를 선택했었지만, 정작 국사, 그러니까 한국 전근대사(고대,중세,근세사)는 왜 배우는지, 빼곡하게 적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과 유적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의 의미와 학습 동기(?)를 찾기 어려웠던 과목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포기하기도 했고(솔직히 입시가 걸려 있는데 점수가 제일 안 나와서 포기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을 양으로 ‘이 와중에 역사한당’ 미션 부여 전부터 전근대편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 읽고 있다는 것은 내가 전근대편 진도를 잘 못 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책 속에서 어떤 쟁점을 발견하게 될지, 그 속에서 내가 찾을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 될지, 한 달 간의 역사 산책이 새삼 기대가 된다. (마무리가 급 상투적이 되었다!)

 

-구매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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