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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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랑 소설가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이 나를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소설가의 작품으로 인도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발랄한 표지 디자인 때문에?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제목 때문에? 아, 그렇다. ‘대체 보건교사를 주인공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을까?’라는 (반쯤은 의구심에 가까운) 호기심이 제목을 보는 순간 생겨났고, 그 호기심이 나를 이 소설의 독서로 이끌었다. 내 기억 속의 보건교사란 도무지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없는 존재다. 담임을 맡아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담당할 수도 없고 주요 교과목을 가르치지도 않는, 그러나 어쨌든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위치가 ‘애매한’ 교사.

  그러나 소설 속 보건교사 안은영은 전혀 애매하지 않다. 오히려 특별하다. 그는 특별한 능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많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문제 없음’을 증명하는 사립학교 M고는 안은영의 능력과 홍인표의 조력이 더해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모이는 관문으로 변모한다. ‘이야기가 될 수 없는 밋밋하고 평평한 현실을 가공해 이야기로 만든 것’이라는 소설의 정의를 따른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근래의 소설 중 가장 소설다운 소설인 셈이다.

  하여, 밋밋한 현실에 놓여 있던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입체적인 감정의 지류들을 지나올 수밖에 없다. 혜현과 승권이 애정행각(?)을 보이는 부분에서는 그 나이 대의 자식을 둔 부모처럼 흐뭇해했다가, 안은영이 중학교 때 단짝이었던 김강선과 조우하는 대목에서는 몸의 일부분이 시큰해지고, ‘온건 교사’ 박대흥이 겪는 고초를 보며 발을 구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내내, 씩 하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재미있으므로.

  아니, ‘재미있다’라고만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고백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은 통상적인 의미 이상의 것이다.

  쾌감에도 급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저열한 쾌감이 있는가 하면, 감히 비틀거나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견고함에 야유하는,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즐거울 수 있는 쾌감이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이런 것들이다. 명랑하고 활기찬 인물들을 대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 ‘고등학생이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믿지 말아야 할 어른들까지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38),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233)와 같은 문장에 담긴 성찰과 ‘때이르고 폭력적인 죽음’(81)을 안타까워하는 구체적인 목소리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이러한 쾌감들은 건강하다. 미국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개그에 왜 많은 한국인들은 열광을 하는가? 간단하다. 지금껏 우리는 쾌감을 ‘저열함’에 뿌리박아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급의 쾌감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2015년 여름, 한국 문단을 뒤흔든 사태 이후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말들 중 하나는 ‘한국문학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진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나, ‘미학적’이고 ‘문학적’으로 곧은 마름새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재미없는 한국문학’이라는 테제를 깰 하나의 실증적 사례를 찾았다. 여간해서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과 흥미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에로에로 에너지는 생각보다 대단하니까요.”(40)

 

  ps.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없게 소개해서 작가께 죄송한 마음이다. ‘언젠가 다시 또 이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이제 그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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