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 - 제1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당선작
최재원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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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시간은 직선적이고 비가역적이다. 시간의 절대적인 질서 앞에서는 모든 인간의 조건이 구차할 정도로 평등해진다. 그렇기에 인간은 후회와 미련으로 채색된 과거를 떠올릴 때면 어느 가요의 노랫말을 빌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이라고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모티프로 한 타임리프 서사물이 끊임없이 창작되는 이유이다.

  시간여행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자 할까? 과거의 어리석음과 미숙함 때문에 생겨나 결과적으로 현재의 불행과 불만족을 불러온 ‘하나의 계기’를 시정하고자 할 것이다. 단 한 번의 계기(또는 기회)로 인해 어긋나버리는 인간사의 영역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랑, 그 중에서도 특히 지나가 버린 사랑, 이루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헤맨 나날들』(이하 『스테파네트』)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간여행 서사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주인공인 ‘나(이민혁)’는 전처와 이혼한다. 이혼 수속에 마침표를 찍던 날, 13년 동안 연락이 없던 옛 연인 ‘세은’의 편지가 ‘나’에게 도착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편지. ‘나’는 어머니가 예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부적을 건네받고, 한 노파를 찾아간다. ‘나’는 옛 사랑을 현재의 사랑으로 복원하기 위해 노파로부터 제안 받은 방법, 즉 시간여행을 선택해 과거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간여행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계장치의 신’처럼 여겨진다.

  『스테파네트』는 바로 이 지점, 독자가 ‘이제 과거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군’이라고 예상하는 지점에서부터 서사 전통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노파가 제시하는 시간여행의 (양자택일해야 하는) ‘옵션’이라든지, ‘나’가 과거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적’인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은 ‘시간여행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여행은 문제에 대한 열쇠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 그 자체이다. 시간여행이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내려오면서 ‘나’는, 그리고 ‘나’의 행적을 따라가는 독자는 이전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와 독자는 한 가지 다짐을 얻는다. ‘일단 2000년에 머무는 동안에는 2000년에 충실하자’(78)라는 다짐.

  『스테파네트』는 시간여행이라는 현상의 기이함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현실을 겪게 할 뿐이다. ‘잘 쓴 소설’을 판별하는 기준 중 하나로 ‘소설 속 현실이 소설 밖 현실에 얼마나 울림을 주는가’를 든다면, 『스테파네트』는 충분히 ‘잘 쓴 소설’이다. 독자는 ‘이민혁’이 시간여행을 통해 넘어온 과거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며 뜻밖에도 인간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감지할 수 있다. ‘이민혁’이라는 캐릭터가, 그와 동반하는 ‘현재로서의 과거’가 가져다주는 ‘현재성’ 때문이다.

  가독성 있는 서사를 결말의 반전까지 모조리 통과하고 나면, 『스테파네트』가 무수히 많은 ‘떡밥’을 남긴, 완결성이 2퍼센트 부족한 소설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있다. 『스테파네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 미처 챙기지 못한 것, 놓친 것, 흘러가 버린 것들의 의미를 ‘지금, 여기’에서 다시 찾도록 도와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민혁’이 ‘시간여행’을 통해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았던 것처럼.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이라고 가끔이나마 노래 부르는 이들에게라면 더욱 더 이 소설이 필요하겠다.

  p.s. 그런데 정말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았느냐고? ‘이민혁’은 밤하늘의 별을 자의적으로 이름 지어 부르던 전력이 있다. 앞의 문장으로 답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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