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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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 ‘키에나’. 이제 더는 한국인이 아닌 너를, 한번쯤은 이렇게 불러 보고 싶었어. 어, 초면에 왜 반말이냐고? 너는 이제 호주 사람이고, 재인의 말마따나 ‘호주에서는 호주 법을 따라야’(36) 할 것 같아서. 사실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의 형식을 빌려 너의 이야기를 들은 나의 반응을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이렇게 몇 자 적어. 아마 너라면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야, 현실에 있는 사람한테도 편지를 안 쓰는데 소설 속 주인공이 뭐라고 편지를 써? 그거 혹시 중고생 숙제 같은 거냐?” 음, 숙제는 아니고, 너의 이야기에 크게 감화되어서 네 말투까지 비슷하게 따라해 보는 거라고 생각해 줘.

  나는 네 이야기를 문예지에서 한 번, 책으로 나왔을 때 또 한 번 보았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네 이야기에 공감할 줄은 몰랐어. 다만 읽으면서,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런 생각은 했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을까? 네 말의 일부를 빌리자면, 한국 소설 대부분이 ‘한국이 싫어서’라는 자명한 전제를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24)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거야. 좋은 소설들이 많지만, 그 소설들은 어쨌거나 ‘한국을 떠난다’라는 결론만은 피하고 있으니까. 네 이야기가 처음 책으로 나온 후 책 속의 몇몇 구절이 SNS에서 공유될 때,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아닌 줄 알았다’ 같은 반응을 보였지. 그만큼 지금,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네가 당연한 듯이 이야기한 ‘한국이 싫다’라는 문장에,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네가 선택한 ‘한국을 떠난다’라는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

  너를 대신해서 네 이야기를 써 준 사람, 장강명 소설가는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 “이 책은 ‘한국을 떠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이 싫지. 그건 맞아.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해 주시는 게 작가로서는 가장 감사한 반응이죠.” 지금 내가 기억나는 대로 적어서 정확하지는 않을 텐데, 저런 맥락이었다는 것만 알아 줘. 어쨌든. 그러게, 확실히 네 이야기를 읽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던 생각들이 흔들리기는 하더라.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꼭 한국 안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한국이 아니라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 고민들이,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다시 생각해 보니, 네가 한국을 떠날 때의 고민하고는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더라고. 말하자면 나는 네 이야기에서 키워드를 잘못 파악한 거였지. 너에게,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네 이야기를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행복’이었지, ‘한국’이 아니었어. 달리 말하자면, 꼭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에게는 있다는 거지. 아, 물론 너를 설득하는 건 아냐. ‘누군가’에게는 그렇다고. 예를 들어, 너는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185)라고 네 친구들을 판단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라. 네 친구 미연이나 은혜가 너와 같은 실천력을 가지지 못한, 말하자면 너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 각자의 이야기에 기초한 행복론이 필요하다고 봤거든.

  그래서, 이미 호주로 간 ‘키에나’,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을 말 치고는 다소 김새는 감이 있지만,

  미안, 나는 한국을 떠나지 않을 거야. 나는 한국을 싫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행복을 발견해 볼 거야.

  굳이 네게 미안할 필요는 없겠구나. 너는 이미 남반구의 먼 나라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고 있을 텐데. 이 이야기를 덮으면 너와 나는 만날 일이 없을 텐데.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 이름은 들어 봤지? 이 밴드가 지은 노래 중 유명한 게 있는데, 그 노래의 노랫말 중 일부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할게.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브로콜리 너마저-<졸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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