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중에는 장강명의 소설을 마저 읽었다. 배경이 북한이라는 것을 빼면 무엇이 이 소설의 특기할 만한 장점인지, 이런 킬링 타임용 소설에 특기할 만한 장점을 바라는 것이 과한 기대인 건지 등 내면에서 여러 질문이 일어났으나 책을 덮고 나니 곧 잠잠해졌다.

 

 

장강명의 신작 알림이 떠서 이번엔 어떤 소설을 썼나 했더니 독서 에세이다. 그래도 미운 정이라고 장강명의 신작 알림을 차마 해제하지는 않아서 알림이 오면 한 번 쳐다는 보는데, 이번에는 내가 수많은 분야들 중 그나마 자주 쳐다보는 독서 에세이라니. 어쩌면 단 한 번뿐일 교집합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 하마터면 바로구매를 누를 뻔했다. ‘바로구매를 실행하지 않은 것은 간만에 자제력이 발휘되어서라기보다는 책 소개 페이지에 있는 인용구 하나(‘정치적 올바름어쩌구 운운하는)를 보고 약간 울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닌 글을 쓰는 장강명은 교묘하게 삼천포로 빠지는 일을 잘 하는구나. 물론 인용구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니 전후 맥락을 읽으려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는 해야 할 텐데, 싫어하는 주장의 확인을 위해 내 돈을 쓰는 것은 어쩐지 저어되었다. 내 돈 주고 사기는 싫은데 무슨 책인지 한 번 보기는 해야 할 때, 책을 어떤 방식으로는 제공받을 수 있는 쉽고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그런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에, 사인본도 놓쳤겠다, 지금은 그저 전자책 출간일이나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또는 열)를 받지만 이내 다음 편을 기다리는 한국인의 얼(K-Soul)이 나에게도 있는 것일까?

 

    

 

지난 주말 중 하루를 잠까지 쫓아가며 플레저에 과몰입한 탓일까? 덕분에 이번 주는 내내 피곤을 달고 지냈고 심지어는 입술 위에 수포도 생겼다. 누가 보면 일이 많아 그런지 알겠다만. 플레저는 넷플릭스에 있는 중국판 삼국지드라마였다. 한 편당 평균 재생시간 40. 95.

 

왜 하필 삼국지를 봐야겠다고 의식의 흐름이 점프했을까? 다는 알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아는 이야기니까, 라는 막연한 생각도 점프의 시도에 한 몫 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정확히는 나의 상위인지meta-cognition)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막연하게 파악했다고밖에 여길 수 없었다.

 

15세 관람가인데, 모자이크 처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잔인한 장면은 끊이지 않는가. 나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을 못 본다. 그걸 회피형 방어기제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못 보는 건 못 보는 거다. 문학 작품에도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못 보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똑같은 내용이 영상으로 실감 나게’ ‘시청각적 감각으로다가오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 화웅의 기세에 부장들의 목이 일합에 달아났다를 문장으로 보는 것과, 목이 달아나기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지켜보는 것과의 차이란…….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격투 신이 만약 영상화되었다면? 나는 적어도 99%의 확률로 그 영상의 관객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삼국지니까 드라마는 재미있었으나 영상으로는 못 보겠다. 나중에야 다시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플레저에 대한 갈망은 곧 다른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삼국지 책을 보자!’ 그러나 이문열이나 황석영이 번역한 열 권짜리 소설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가는 한 4~5권쯤에서 중도 하산할 것이 빤히 보였다. 내 시간은 소중하고 주말은 더더욱 소중한데 그럴 수는 없다. ‘어쨌든 삼국지를 다룬 한 권짜리 책을 찾다 보니 이 책이 나왔다.

    

 

 

 

 

 

 

 

 

 이중톈의 저작은 처음이다. 삼국지 강의는 말 그대로 삼국시대에 대한 대중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소설 삼국지(삼국연의)’가 아닌 삼국시대(의 주요 인물)’가 강의의 주제다. 1차 사료를 주 근거로 하되 삼국연의와 근대 역사가들의 견해 또한 다양하게 참고하는 방식이 꼼꼼해서 좋았는데, 사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기로 결정을 내리게 한 부분은 서두에 있었다

    

 

 우리들이 저 난세의 영웅들을 찬미하거나 좋아할 때, 그 당시 백성들이 받았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문-"장강은 동으로 흐른다" 中)

 

 

이중톈의 실제 생각을 반영한 말인지, 아니면 그의 실제 생각과 상관없이 대중 강의의 특성상 체면치레를 위해한 말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전쟁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다루는 이들에 대한 의심을 항상 가지고 있다.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 줄 영웅전략’, 화려한 전술병기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이 전쟁이라는 비극의 원천을 한낱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땔감은 아닌지 하는 의심.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적어도 그런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영웅이나 초인과 같은 비범한 존재를 고대하는 집단 무의식은 힘을 키우지만, 그럴수록 영웅주의에 쉬이 빠지지 않는 태도(또는 결기)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여튼 일주일이 넘도록 꾸준히 읽어서 드디어 어제에야 다 읽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주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바로 다음 강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1권 마지막에서 던진 것이다. 다른 강의 말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래서야 2권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자와 나오키는 각 권의 서사가 기승전결 구조를 독립적으로 갖추었다 보니, 3권까지 보았어도 4권은 나중에 보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한 강 한 강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구조의 대계에서 나머지 절반의 흐름이 끊긴 시간이 오래 된다면 이 책은 안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책을 며칠 전에 사서 또 책을 살 수는 없고, 배우자에게 대출 신청을 부탁했다. (우리 지역 도서관은 무기한 휴관중이지만 내일부터 회원에 한해 최대 세 권까지 대출 신청을 하면 개별적으로 대출해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코로나 빨리 끝나라도서관 가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공개를 앞두고 복습 차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특별판을 사서 만 하루 사이에 독파했다.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5년 전에도 사흘 만에 후루룩 읽었다. 취준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2회독을 하게 만들 정도로 나에게는 특별한 작품이지만 정작 나는 이 작품의 리뷰를 재미도 감동도 없게 쓴 전과가 있으니. 작품의 디테일에 대한 감상을 이 글에 옮기지 않고 넷플릭스 시리즈나 조용히 기다리는 게 충성 독자로서 다할 의무라 생각할 따름이다.

 

특별판에서 달라진 것은 표지 일러스트, 작가의 사인이 인쇄된 페이지, 20209월 시점에 쓰인 작가의 편지, 다섯 편의 추천사, 정도이다. 초판에는 안은영홍인표의 이름을 어디서 빌려 왔는지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특별판에서는 초판 작가의 말을 앞서 언급한 작가의 편지로 갈음했다. 특별판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참고하기를.

    

 

이 글에 담긴 기간은 약 2주다. 이 기간 동안에는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그러나 중요한 통찰을 일깨워준 책을 한 권 더 읽었는데 글의 주제가 판이하게 달라질까 봐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쪼록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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