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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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MI 하나. 나는 냉면을 싫어했다. 다 떠나서, 그 질깃질깃한 면이 도무지 면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평냉'이라니. 평냉에 관한 내 머릿속 등식은 '평냉=힙스터들의 음식=맛없고 실속도 없는데 있어 보이려고 먹는 음식' 정도였다. 게다가, 평냉 예찬론을 대형 일간지 주말 섹션에 당당하게 실으신 분이 '간장 두 종지' 가지고 화를 내셨다는 분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더더욱 평냉에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TMI 둘. 첫 문장은 왜 과거형으로 썼을까. 이제는 냉면을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최소한 '함흥'과 '평양'을 구별할 줄은 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가 본 평냉 전문점은 두 군데 정도밖에 안 된다. 거의 안 먹어 봤다는 이야기다.

  이런 내가 왜, 평냉 전문점 비평집(?)을 사다 읽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저자와 그의 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TMI 셋. 지금은 끊은 SNS에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시던 내 이웃 한 분은 요식업계 종사자였다. 그 분과 그 주위 사람들(물론 동종 or 유사업계 사람들이다)은 하나같이 이 저자에 대해 '번역은 잘 하지만 글솜씨는 엉망이고 음식에 대한 기본도 모르는 사람' 정도로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이용재 씨)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으니, 아 그런갑다, 하고 넘겼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는 문득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이다.

  '번역은 우리말에 대한 체계와 감각이 없으면 잘 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 좋은 시스템이 번역할 때는 돌아가고 자기 글을 쓸 때는 안 돌아갈까?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저자의 책은 이번에 처음으로 읽었다. 전작 『한식의 품격』을 놓고 글의 체계와 문장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은 것을, 당장 100자평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특정한 형태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다른 형태의 글은 못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경험만 가지고서 그의 글 전반을 평가할 수는 없겠다. 다만, 이 책에서만큼은 그의 문장이 간결하고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가 평냉이라는 단일 품목에 적용하는 평가의 기준은 앞머리(‘들어가는 말’)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으며, 그 기준이 어떤 식으로 체크리스트화되었는지는 책의 마지막 부분(‘평양냉면 리뷰 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상비평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비평가의 원칙을 밝힌 것인데, 그 원칙이 서른한 곳의 평냉집 비평을 두루 관통한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비록 평냉을 많이 먹어보지 않았더라도, 그 이전에 평냉이 어떤 음식인지조차 잘 몰랐더라도, 평냉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이 눈은, 안목이라고도 한다.

 

 

  2.

  개인적으로는 ‘추천의 말’도 너무 좋았다.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사소한 질문을 공격적인 화살이라 생각하고, 나름의 속마음을 천편일률적인 비아냥거림이라고 분노하는. 이를테면 방어력만 만땅인 시대에 비평을, 그것도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하고 있는 대중적인 대상을 비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의견에 대한 궁금함이 사라진 시대, 혹은 대중적인 것을 전문적인 문장으로 전환해내는 것을 권력이라고 오해하는 시대. 『한식의 품격』의 작가 이용재가 직면한 세상은 이렇게 자신의 의견이 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으로 전달되고 감정 섞인 실드로 응답받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은 가장 대중적인 어떤 곳에서 필요로 하는 ‘문장’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두가 너무 쉽게 각자의 의견을 갖게 되는 시대에, 바로 지금 상상하고 사유해야 할 지점을, 상대방이 재수 없어 하고 귀찮아하더라도 설파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 직업. 그래서 나는 다양한 비평의 글들을 사랑한다. (후략) (영화감독 변영주 ‘추천의 말’ 앞부분)

 

 

  어쩜 이렇게 나의 마음을 유리병 보듯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평냉을 잘 모르니까, ‘평냉에 비평‘씩이나’ 필요해?’ 하는 생각을, 감히 이 책 보기 전에 잠깐 했었다.

  (사실 나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영화, 책, 시, ...기타 등등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양식을 대상으로 하는 비평가의 말은 군더더기 취급받는다. 군더더기가 거름이 되어 대중문화의 또다른 밑거름이 되기까지, 그 여유 있는 시간을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평과 비평가에 대해서 그렇게(=재수 없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비평이 왜 필요한지, 적확한 언어로 짚어낸 글이다. 보통 추천사는 안 읽고 넘어가도 독서에 하등 지장이 없는 부분이라 여겼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읽었는데), 이 추천사를 보니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라는 말도 생각나고 그렇다.

 

 

  3.

  비평의 세계에서 별점만큼 직관적이고 즉물적인 요소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단비평에 별점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불행으로 여겨야 할지. 요새 문단의 분위기를 보면 후자로 기우는 것이 내 개인적 심정이다.) 별점은 비평문이 공들인 모든 언어를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다. 내 마음을 성급하게 이끄는 결론이다. 좋은 비평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래서 여기는 별점이 몇 점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별점 시스템은 저자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도 아니니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독자로서 ‘참고점’으로만 삼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3-1.

  이런 글을 쓰면서 별점을 매기는 것이 모순이라고도 생각하게 되고.

  빈 별 하나의 의미는 굳이 붙이자면 ‘판단유보’다. 위에서 적었듯, 이 책이 내가 첫 번째로 읽은 저자의 글이자 책이기도 하고, 이 책에 담긴 비평이 정성스러운, 좋은 비평임을 알기는 하지만 내가 ‘평냉’을 잘 모르기도 하고, 평냉에 조금 더 익숙해진 뒤 내 마음속에서라도 별을 하나 더 덜거나 더하거나 할 수는 있으므로.

 

 

  4.

  ‘후보로 삼았던 40여 군데 가게 중 서른한 군데를 간추려 담았다. 음식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평가 자체가 무리이거나, 소위 ‘노키즈존’을 표방하는 등 기본적인 음식점의 조건을 갖추지 않은 곳은 제외했다.’(‘들어가는 말’ 중, 강조는 인용자)

 

 

  노키즈존 ‘따위’가 외려 ‘사업장의 운영상 자유’로 포장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쉬쉬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기본적인 음식점의 조건을 갖추지 않은 곳’이라고 적시해 주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ps. 나와 배우자가 아껴 마지않는 평냉집(내가 경험한 평냉집 두 군데 중 한 군데)은 별점이 형편없었다. 여기서 심정적으로 마이너스 1점. 그러나 나와 배우자가 모두 ‘아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평냉집(내가 경험한 나머지 한 군데)도 별점이 좋지 않았다. 저자의 기준은 정말로 ‘일관’되었구나. 그 일관성을 높이 사서 플러스 1점. -1+1=0. 제로섬이라서 이 책의 별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ps2. 이 책의 가치는 이런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처음에 도서관에서 종이책으로 빌려서 휘리릭 보고 반납하려다가, 이 책을 두 번 세 번, 나중에라도 곱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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