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영어공부 -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김성우 지음 / 유유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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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무조건 컴퓨터로 시간을 들여 썼는데, 그러다보니 점점 부담이 커지기도 하고, 그 부담 때문에 오히려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읽기만 겨우 하는 책들이 늘어가서, 오늘은 잠깐 도서관 들렀다가 얼른 와서 일도 해야 해서 겸사겸사 모바일로 간단히 리뷰를 남긴다.

영어공부를, 특히 성인 이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는 책이고, 더 멀리는 전반적인 공교육으로서의 영어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 좋을 내용이 담겨 있다. 책 제목에 ‘영어공부’가 버젓이 들어 있지만, 실제로는 영어를 통해 학습자가 어떤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말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 학습자로서 나를 ESL 그룹이라고 단순히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나는 EFL 그룹이었다(잉글랜드 풋볼 리그 아님). 전자가 영어를 제 2언어로, 생활 속에서 접하는 환경이라면 후자는 생활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쓰며 별도로 영어를 학습하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영어 학습과 관련해 접하는 영어권 자료들에서 전제하는 학습자 모델에서 다소 벗어난 환경에서 학습자들이 어떻게 영어를 배우고 익히면 좋을지를 폭넓게, 그러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고 서술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독학으로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 이들의 채널을 구독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들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다들 공교육의 틀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나 역시도 그렇게 해서(공교육을 마친 이후에 본격적으로 영어를 학습하며) 영어를 좋아하고 실력을 키워가는 입장인데, 이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보자니 영어 공교육 모델의 부실을 방증하는 표본처럼 느껴져서 왠지 좀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괜찮다. 앞으로 함께 개선해 나가면 되니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이 차오른다.

나도, 저자가 이 책의 머리말에 소개하는 ‘영어학습 자서전’을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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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If I were a bird (내가 새라면)나 "If I were a millionaire(내가 백만장자라면)보다는 "If I were a Pakistani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 내가 한국의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라면)나 "If I were a Muslim refugee in the US"(내가 미국의 무슬림 난민이라면)가 예문으로 나오는 책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삶과 어휘와 문법을 엮어 내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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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넷플릭스에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막 올라왔을 때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간질간질했던 기분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소설이다(이제 이 영화를 봐도 더는 간지럽지 않지만). 영화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의 소설 원작인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떠오르기도 했다(별 다섯개로 추천하는 소설). 굳이 노선을 구분하자면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는 로맨스가 벌어지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라서, 사건보다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개인의 감정 변화와 심리 묘사가 탁월한 《사라지지 않는 여름》과는 좀 결이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복잡다단한 이야기라서 좋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딱 한 단어로 이 책을 소개하자면, "엉망 본질 주의자"가 좋을 것 같다. 엉망진창의 사건과 사고, 사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불협화음이 넘길 책장이 거의 다 바닥날 즈음에는 어느새 서로 어울려 음악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런 독서 경험과, 등장인물들이 자주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또, 예전에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문제로 출제된 러시아 가수 '비타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가수는 무척 높은 음역으로 노래하는데,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자신의 노래가 닿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도 비슷한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러고 보면 음악만큼 하늘에 닿는다는 상상을 하기 좋은 대상도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중간중간 그림으로 삽입된 주인공이 끄적인 메모가 등장하는 구성은 살짝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메모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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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의 낭만을 잃은 때가 언제였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딱 다섯 글자를 떠올린다. 코니 윌리스. 과학책 읽기를 취미 삼게 되면 시간 여행의 환상을 잃는 건 사실 시간 문제다. 논픽션의 영역에서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인간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한 이유와 한계'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픽션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 '그 여행'이 아님을 현실적으로 일깨우며, 그 선두에는 단연 소설가 코니 윌리스와 그의 시간 여행 연작(?)이 서 있다.

거꾸로 내 시간 여행의 낭만이 최초로 잉태된 순간을 되짚어 보자면, 예전 MBC에서 〈시간탐험대〉라는 일본 만화가 방영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시간" 여행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배웠다면(다만 2021년 기준으로 여러 나라의 상식을 배울 유익한 어린이 만화를 고른다면 차라리 〈카르멘 산디에고〉를 추천한다), 시간 "여행"의 낭만을 간직하게 해 준 건 꽤 오래 전 에버랜드에서 탔던 '지구마을'이라는 놀이 기구였다. 배를 타고 가만히 각국의 인형을 구경하는 어트랙션인데 지금 검색해 보니 2015년 9월 운행을 영구 중단했다.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라는 제목의 첫 인상은, 솔직히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내세운 역사 교양서 같았는데, 펼쳐보니 다행히도(?) 시간 "여행"의 낭만을 일깨우는 책이다. 이미 이 책 안에 '진짜로 재미있는 시간 여행 책'이라는 추천 코멘트가 잔뜩 실려 있지만, 굳이 말을 더 보태자면 이 책은 솔직히 재미있다. 역사(시간)의 측면에서도, 여행의 측면에서도, 심지어 과학적 측면에서도.

책은,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우리에게 사실은 '시간 여행'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고 알려 주며, 멋진 관광 상품을 소개하듯 각 나라의 만국 박람회와 전시 일정, 입장료 등을 소개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 여행을 막는 유일한 방해물이 코로나19 시국이라는 착각에 마저 빠져들게 한다. 페이지를 넘나드는 기분이 꼭, 언젠가 '지구마을'을 타던 때처럼 꿈결같았다. 이런 몰입의 감정은 순전히 여행은 고사하고 내도록 집 안에만 갇혀 지낸 코시국의 영향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일찌감치 시간 여행의 낭만을 잃었다. 코니 윌리스 외에도, 이 책의 부록에 실린 추천 도서 중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 거기에 큰 몫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비일상성'에 있다고 믿는데,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 아주 낯선 장소로 가서 지낼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거기서도 집에서와 똑같이 고되게 일하고 여유라고는 없이 보내야 한다면(보통 우리는 그걸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부른다) 굳이 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리고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는 이런 여행객 특유의 시선을 '피상적인 관찰자'라 표현하는데, 머릿속 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퇴사를 하고 워킹홀리데이 출국 준비를 하면서부터 영화제를 핑계로 여러 도시로 여행을 몇 번 다니면서 나도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이후에 그보다 더 멀리 런던까지 가서 체류하면서는 일상이 여행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이유가 뭐였을까? 내 삶에서 관찰자가 되려면 일상과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고, 나는 이게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내가 있는 물리적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여행이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내 일상에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며, 이런 전제 하에서는 결론적으로 이 책의 슬픈 후기(?) "사실대로 말하자면"의 내용과 달리, 시간 여행도 가능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책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는 딱 제목 그대로 우리의 여행에 아주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유용했던 시간 여행 참고 도서 몇 권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찰스 배비지의 차분 기관을 모티프로 전개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엠마》 10부작

영국과 일본은 섬나라라는 공통점 탓인지, 서로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엠마》는 가부장적이고 나이브한 스토리지만 적당히 시간 보내며 읽기에 좋다.

나는 '만국 박람회'의 존재를 어릴 적 이 책으로 처음 배웠다.


《CSI 모던 타임스》

시간 여행 하고 싶은 곳을 꼽아보자면 나는 미국의 재즈 시대(1920년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당시 어떤 범죄가 횡행했고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법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사례로 소개한다.


〈닥터후〉

시간 여행 고전. 이 세계관으로 들어가면 이동 문제도 타디스로 해결하고

내 신원도 사이킥페이퍼로 가뿐하게 퉁칠(?) 수 있다.

https://youtu.be/Dzl9Dy_DPN0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가끔씩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등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콘텐츠도 올라오는데

코로나 시대,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 보면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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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지 않는 것은 '지혜'라 할 수 있다





과일 샐러드라는 단어에는 왠지 이걸 과일 '사라다'라 불러야 할 것 같은 20세기 한국 출생자 특유의 어색함이 잔잔히 남아 있다(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과일 '사라다'가 최악인 지점을 솔직히 털어 놓자면, 토마토 보다는 그게 마요네즈에 버무려진다는 것과 건포도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런 생뚱맞은 제목을 붙이며 잠깐 찾아 본 과일과 채소의 차이를 대강 정리해 보자면, 식물학적으로는 꽃이 진 자리에 맺는 것을 열매라 칭하는데 이를 다시 식품공학적 한국어로 재정의하면 이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과일',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 외 식물의 기타 구성을 '채소'라 부르는 것 같다.

이왕 개인적인 '사라다' 취향을 털어 놓은 김에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시절 나는 공부 보다는 입시 자체를 둘러싼 공부법이나 신변 잡기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는데, 그때 20세기에 입시 공부를 잘한 걸로 유명했던 형제 뮤지션 팀(이렇게만 말해도 20세기 사람들은 누군지 바로 알겠지?) 두 사람의 공부 방식이 아주 상이했다는 이야기를 주워 들은 일이 있었다. 한쪽이 이론을 탄탄하게 갖추고 그걸 예제에 적용해 푸는 톱-다운(연역) 방식이었다면, 다른 한쪽은 다양한 예제를 접하며 그게 정리되어 이론이 되는 보텀-업(귀납) 방식인데 둘 중 입시에 더 효율적인 쪽을 고르라면 단연 후자라는 내용이었다. 뭐, 이 예시의 두 사람처럼 공부를 충실히 한다는 전제만 성립한다면 결과적으로 방식은 크게 상관이 없다. 현실 세계의 입시는, 방법이야 어쨌건 공부를 하는 파와 나처럼 방법에만 정신을 팔며 공부와는 담쌓는 파로 나뉘니까.

그런가 하면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냅이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부딪힌 방식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공부와 담쌓는 파 말고, 다양한 예제를 직접 접하는 쪽). 때론 읽기 괴로울 만치 처절하기까지 한 그의 고군분투기, 《욕구들》을 읽고 나면, 서론 말미의 이 문단에 새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뭉클한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끝내 살아남아 버텨 준 자를 향한 경외감이라 해야 할까?


오늘날 내게 좋은 하루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조정은 나 자신이 유능하고 강하며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다. 또는 하루치 일을 견실하게 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고, 친구와 웃으며 통화한 날, 좋은 음식으로 식사한 날, 혹은 밤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와 포옹한 채 시간을 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욕구들》,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이 책의 원제 'appetites--욕구들'의 사전상 의미는 "허기를 채우고자 자연스럽게 뭔가를 원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연스러운' 욕구를 해석하고자 저자는 자연계에 속한 인간종의 원초적 감정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여러 감각 기관을 동원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먹는다'는 행위와 '본다'는 행위다.

여자들이 정체 모를 허기(나라면 '사회적'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은 허기)를 채울 목적으로 도리어 먹는 행위를 조절하고 해로울 지경까지 몸을 비우게 된 모순은 결국 보는 행위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의 주체가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즉 인간 사회의 여자들이 '보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는 존재'라는 관념이 널리 퍼지며, 여자들은 먹을 자유를 비롯해 여러 자유를 억압당한다. 이러한 자유와 욕구는 오히려 너무 원초적인 탓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해 왔지만, 저자는 이것이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속박임을 몸소 겪은 방대한 예시를 동원해 충실하게 정리한다.

내 부모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캐럴라인 냅은 2002년 6월 3일, 지나치게 이른 나이 마흔 둘에 폐암(자살이 아님을 꼬집고자 순전히 내 욕심으로 구태여 부연하는 병명)으로 이 세계에 작별을 고하지만, 생전 그가 여성의 욕구를 입 밖으로 내며 또 한 번 발발한 이 전쟁에서 저자의 사후에 출간된 회고록 《욕구들》은 명백히 "끝"이 아니라 "시작"을 말하는 기록이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우리의 이 전쟁은, 어쩌면 언젠가 윈스턴 처칠이 마주한 것 이상으로 길고 지난하며 참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욕구들》을 읽고 지금 이 리뷰를 남기는 나조차도 오랜만에 발견한 내 몇 년 전 사진을 보며 '그때보다 더 살찐 나도 괜찮아' 같은 생각을 애써 하면서도 깊은 내면에는 '그래도 저때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같은 찌꺼기 같은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때로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그럴싸한 여성주의적 사고로 표면을 둘둘 감은 뒤 그 속으로는 그와 상충하는 생각들에 잠기기도 하니까.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동원해 "내 인생은 아무 문제 없다는 환상"을 유지하듯(《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캐롤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하지만 이런 생각들마저도 자연의 일부임을, 나는 캐럴라인 냅의 사유를 빌려 다시금 확인했다. 그래서 여성주의 측면에서 다소 떳떳하지 못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이제는 그냥 내 탓을 하며 더 철저히 나를 숨길 고치를 짓기 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만다. 그 속에 더 깊이 잠기지도, 더 멀리 달아나려 애쓰지도 않고 그냥 그 본능과 욕구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그 안에는 내가 있기도 하고, 이 사회의 단면이 담겨 있기도 하다.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듯, 차분한 마음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보이는" 시선 대신 내가 직접 "본다"는 감각에 빠져 있는 동안 은은하게 나를 채우며 허기가 해소되는 경험은 단순한 지식만으로 일깨우기 힘든 과정이다.

복잡다단한 자연계의 삶이란 게 본래 그런 것이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순전히 인간끼리 만들어 낸 산출물이라면, 우리의 삶은 인간종을 훌쩍 초월하며 쉽사리 다독여 정리할 수 없는, 말하자면 자연이 출제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 범위 내에서 '토마토는 과일이다'와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지 않는 선택' 즉,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범주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과 고립의 구분이 그러하듯(《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이론과 예제(혹은 실전), 어떤 것을 앞세우든 결국 둘은 진실이라는 접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이를 구분하는 방법론 자체는 부수적 장치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건 진실과 그 속에 숨은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자유를 추구하려 꾸준히 나아가는 노력이 아닐까. 이러한 노력과 의지의 씨앗을 우선 심었다면, 캐럴라인 냅의 저작은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게일 콜드웰이 쓴 서문처럼, 캐럴라인 냅이 투병 시절 집필한 《욕구들》은 그가 남긴 유산이자 희망의 모음이다. 이 새로운 희망은 어쩌면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1977)〉으로 이어지는 '데스스타의 설계도'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2021년 블로그 포스트 '최악의 비유상' 후보에 오를 법한 문장…).

이 책의 프롤로그 속 문장을 따라 읊조리며 캐럴라인 냅이 그랬던 것처럼 내 소원 역시 우주에 가닿길 바라 본다. 우리가, 여자들이 몸도 마음도 충만히 채워지게 해 달라는 기도가 모쪼록 그가 이미 가 있을지 모를 저 멀고 먼 어느 우주까지 뻗어 가기를.

책 바깥의 이야기로 리뷰를 마무리하자면, 《욕구들》이란 제목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문법상 가산(욕구들), 불가산(욕구) 명사 모두 쓸 수 있는데, 'appetites'라는 가산 복수 명사로 된 제목에서 총괄적이면서도 여러 갈래로 세분화된 욕구라는 어감이 동시에 느껴져 좋았다. 또, 국내에 출간되어 현재 유통 중인 캐럴라인 냅의 저서 총 네 권의 번역자가 총 세 분이라는 점도 무척 재미있는데(?) 같은 저자의 다른 문장을 각자의 연륜으로 탁월하게 옮기면서도 개별 번역자의 매력이 잘 살아 있어 충만하게 채워지는 독서의 경험을 제대로 선사한다. 국내 외래어 표기법이 보편화되기 전 '나무처럼'에서 출간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과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는 작가명 표기를 "캐롤라인 냅"으로 하고, 비교적 근간이자 작가의 사후 출간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바다출판사'의 《명랑한 은둔자》와 '북하우스'의 《욕구들》은 "캐럴라인 냅"으로 쓰니, 도서 검색에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덧붙여, 《욕구들》은 일찍이 프로이트를 통해 유명해졌다고 전해지는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women want)?"라는 여자들의 욕구를 납작하게 싸잡는 질문을 차용해, '여성의 욕구를 만들고 정의하며 통제하는 문화에서, 여성 개인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체 무슨 수로 알아내고 이를 받아들이는가(How does a woman know, and then honor, what it is she wants in a culture bent on shaping, defining, and controlling her desires)?'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작품이라고 한다(출처는 아마존 책 소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자들에게 교묘히 금지돼 온 여러 욕구를 파해쳐 보고, 다시금 책의 부제이기도 한 이 질문('여성은 왜 원하는가')을 이렇게 따져 되묻고 싶어졌다. "여성은 이제까지 왜 원하지 못 했는가?"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캐럴라인 냅이 남겨 준 데스스타 설계도… 아니, 새로운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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