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낭만을 잃은 때가 언제였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딱 다섯 글자를 떠올린다. 코니 윌리스. 과학책 읽기를 취미 삼게 되면 시간 여행의 환상을 잃는 건 사실 시간 문제다. 논픽션의 영역에서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인간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한 이유와 한계'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픽션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 '그 여행'이 아님을 현실적으로 일깨우며, 그 선두에는 단연 소설가 코니 윌리스와 그의 시간 여행 연작(?)이 서 있다.

거꾸로 내 시간 여행의 낭만이 최초로 잉태된 순간을 되짚어 보자면, 예전 MBC에서 〈시간탐험대〉라는 일본 만화가 방영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시간" 여행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배웠다면(다만 2021년 기준으로 여러 나라의 상식을 배울 유익한 어린이 만화를 고른다면 차라리 〈카르멘 산디에고〉를 추천한다), 시간 "여행"의 낭만을 간직하게 해 준 건 꽤 오래 전 에버랜드에서 탔던 '지구마을'이라는 놀이 기구였다. 배를 타고 가만히 각국의 인형을 구경하는 어트랙션인데 지금 검색해 보니 2015년 9월 운행을 영구 중단했다.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라는 제목의 첫 인상은, 솔직히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내세운 역사 교양서 같았는데, 펼쳐보니 다행히도(?) 시간 "여행"의 낭만을 일깨우는 책이다. 이미 이 책 안에 '진짜로 재미있는 시간 여행 책'이라는 추천 코멘트가 잔뜩 실려 있지만, 굳이 말을 더 보태자면 이 책은 솔직히 재미있다. 역사(시간)의 측면에서도, 여행의 측면에서도, 심지어 과학적 측면에서도.

책은,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다. 우리에게 사실은 '시간 여행'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고 알려 주며, 멋진 관광 상품을 소개하듯 각 나라의 만국 박람회와 전시 일정, 입장료 등을 소개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 여행을 막는 유일한 방해물이 코로나19 시국이라는 착각에 마저 빠져들게 한다. 페이지를 넘나드는 기분이 꼭, 언젠가 '지구마을'을 타던 때처럼 꿈결같았다. 이런 몰입의 감정은 순전히 여행은 고사하고 내도록 집 안에만 갇혀 지낸 코시국의 영향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일찌감치 시간 여행의 낭만을 잃었다. 코니 윌리스 외에도, 이 책의 부록에 실린 추천 도서 중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 거기에 큰 몫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비일상성'에 있다고 믿는데,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 아주 낯선 장소로 가서 지낼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거기서도 집에서와 똑같이 고되게 일하고 여유라고는 없이 보내야 한다면(보통 우리는 그걸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부른다) 굳이 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리고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는 이런 여행객 특유의 시선을 '피상적인 관찰자'라 표현하는데, 머릿속 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퇴사를 하고 워킹홀리데이 출국 준비를 하면서부터 영화제를 핑계로 여러 도시로 여행을 몇 번 다니면서 나도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이후에 그보다 더 멀리 런던까지 가서 체류하면서는 일상이 여행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이유가 뭐였을까? 내 삶에서 관찰자가 되려면 일상과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고, 나는 이게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내가 있는 물리적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여행이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내 일상에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며, 이런 전제 하에서는 결론적으로 이 책의 슬픈 후기(?) "사실대로 말하자면"의 내용과 달리, 시간 여행도 가능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책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는 딱 제목 그대로 우리의 여행에 아주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유용했던 시간 여행 참고 도서 몇 권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찰스 배비지의 차분 기관을 모티프로 전개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엠마》 10부작

영국과 일본은 섬나라라는 공통점 탓인지, 서로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엠마》는 가부장적이고 나이브한 스토리지만 적당히 시간 보내며 읽기에 좋다.

나는 '만국 박람회'의 존재를 어릴 적 이 책으로 처음 배웠다.


《CSI 모던 타임스》

시간 여행 하고 싶은 곳을 꼽아보자면 나는 미국의 재즈 시대(1920년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당시 어떤 범죄가 횡행했고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법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사례로 소개한다.


〈닥터후〉

시간 여행 고전. 이 세계관으로 들어가면 이동 문제도 타디스로 해결하고

내 신원도 사이킥페이퍼로 가뿐하게 퉁칠(?) 수 있다.

https://youtu.be/Dzl9Dy_DPN0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가끔씩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등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콘텐츠도 올라오는데

코로나 시대,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 보면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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