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지막 장의 이 장식 문구로 끝난다. "Don't forget to have a good time while you're doing things. Political work should not be work."
한국어로 멋들어지게 옮기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아, 대신 이렇게나마 요약한다. 세상만사가 어떻게 돌아가든 각자의 삶 속에서 다만
한 조각의 즐거움을 놓지 말 것. 다시 표지로 돌아오니 "분노는 유쾌하게"라는 문구가 새삼 달리 다가온다(전체 제목은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이다).
몇
년 전, 코니 윌리스의 작품을 막 읽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시간 여행에의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 여행은 점차 내게 피로한
개념이 되었다. 과거 혹은 미래, 어느 시간대를 넘나든대도 그 속에 여전히 인간 세계 혹은 그 엇비슷한 문명이 존재했고 이들의
삶이 지탱하는 일상은 웬만해서는 고단했다(그래야 이야기가 되기 때문일까).
읽는
것만으로도 함께 피로해지는 시간여행기의 책장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간 여행을 향한 내 환상이 어디에 기인한
것이었는가를. 그리고 내가 내린 답은 '일상'이었다. 낯선 여행지에 가서 탱자탱자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일상과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해지는 잠깐의 일시정지 기간. 어찌됐건 시간 여행도 '여행'으로 끝나니까, 어느 정도 비일상성을 동반하리라 기대했건만,
시공간을 건너간 이들이 여행지에서조차 너무 열심히 현생에 몰두해서 더는 대리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이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를 읽었다. 특히 첫 꼭지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를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을 읽고 났을 때만큼이나 피로했고, 상영관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났을 때만큼이나 기운이 쭉 빠졌다. 웃긴 일이다. 직접 이 삶을 살아낸 이들을 제치고 애먼 내가 고작 글이나 좀 읽었다고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책의
마지막 꼭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소변 문제〉는 미국의 노숙인 문제를 다룬다. 없는 살림에 아등바등하며 런던에서 잠시 체류하던
시절에 매일 이번 달 월세는 어떻게 낼까, 하는 공포에 시달리며 외출할 때면 대형 쇼핑몰 앞에 죽 늘어 앉아 있던 노숙인들이 내
미래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아마 나는 외국인 신분이었으므로 얼마 못 가 본국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더
높았겠지만). 그게 아마 100%의 본심은 아니었을 거다. 나는 연락할 가족도 있었고, 돈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지막의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으니까. 트레일러에서 살며 식당과 호텔 청소 투잡을 뛰던 저자에게 "진짜 삶"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던 것처럼.
선택할
여유가 생기면, 현생의 고단함은 아무래도 견딜 수 있다고, 그래서 시간 여행 중 겪는 잠깐의 고난은 고생이랄 것도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아직 "진짜로" 힘든 게 아니라고, 이런 마음으로 내 가난과 고생을 남에게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시기가 있었다. 그땐 도리어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얄궂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경제 상황을 선형으로 줄
세우며, 나보다 더 형편이 나아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왜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웃기는 생각을 매일 했고, 게임 화면처럼
사람들마다 머리 위로 파운드화 표시가 반짝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 가난을 증명할 만큼 충분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생활을 끝낸다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긴 했지만 당시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 삶과 다른 차원에 놓인 선택지였고, 그 선택이란 현재 내 삶을 끝낸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저자의 이 치열한
기록이 한가로운 취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삶은 여러모로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삶의 자원 배분은 애초에 공평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꿈꾸고, 그게 절로 채워지는 경험이 아니라면 그 외 어떤 잉여를 곁에 두더라도 우리의 삶은 끝까지 만족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 내 결핍이나 소소한 고생도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한 것이 된다. 누군가 내게 던져준 레몬을 그득히
쌓아놓고 내내 썩히다가 이제야 이걸로 부실한 레모네이드라도 만들어 볼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런 아주 약간의 여유를
짜내려면 나와 내 삶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여행도 좋지만(가능하다면 시간여행도 오케이), 저자는 거리두기 한
방법으로 '쓰기'를 제시한다. 내가 몇 년 전 지극히 자기 중심적으로 얻은 교훈을 이번에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다른 이들의 삶을
한층 가까이 바라보며(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남긴 기록을 통해 다시금 배웠다.
켄
로치(〈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유독 이런 인간적이고도 철학적 주제에 관해 고찰해 보려면 매번 내
자신에게서 여성을 지우고, 남성 혹은 백인 등으로 대표되는 인간 기본형으로 내 시점을 다시금 설정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때가
많아 이따금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저자 덕분에 오롯이 인간 여자의 시점 그대로 이 세계의 모습을
치밀하면서도 세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되어 특히 이 부분이 뭉클하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