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조차 "다시는 이런 실수를 안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예측하지 못해서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알아야 할 건, 세상이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랐을 때 배워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겁니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생긴다.’

이런 불확실성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발생할거라고 예상하는 일‘과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 크게 차이 나더라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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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3루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소수의 특권층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라자트 굽타에게는 야구장이 보이지도 않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두 가지를 좋아한다. 부를 만들어내는 것과 부러움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 두 가지는 서로 함께 갈 것이다. 또래들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은 더 힘들게 노력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아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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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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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친구(바위)랑 요시고 사진전에 다녀왔다. 다음날이 도서 검토서 마감이었고, 물리적으로만 보면 겨우 70% 남짓 끝낸 상태였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야 나머지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고 우겨본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한 10분쯤 늦을 것 같아서 연락을 남겼더니 그럼 그김에 가보고 싶던 카페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서 만나서 한참 얘기도 하고(어쩌다보니 대부분 검토서 얘기랑 YA 문학 이야기였음) 이번에 출간된 바위의 따끈따끈한 번역작도 선물 받았다.


한두 시간쯤 지나서 요시고 사진전에 가서 즐겁게 전시도 구경하고 아무 말로 감상도 떠든 다음 장소를 이동해서 맛있는 피자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우리는 만나면 웬만하면 맥주를 꼭 마신다). 앞으로는 맥주 메이트에 이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함께 전시를 보는 전시 메이트가 되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한창 떨고 재미있게 놀다 저녁쯤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니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검토서 마감이 샐쭉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밖에 나와 있으면서도 마감 생각에 마음 한켠이 불안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을 텐데(그래서 사실 애초에 마감이 잡혀 있으면 외출을 거의 못한다), 이날만은 어쩐지 별 생각없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어쩐지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관해 함께 이야기한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이동 중에 바위의 집에서 연락이 한 번 왔기에 마침 제가 느낀 묘한 기분에 관해서 바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나도 이날 외출하러 나서며 엄마한테 들은 "(그렇게 나가 놀면) 일은 언제해?"하는 물음에, "갔다와서 하지~~"하고 답했던 일화를 전했었다.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왠지 뭔가 열심히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딱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고 있던 시점에 《풍덩!》의 저자가 올린 트윗을 읽고 갑자기 홀린듯이(?) 이 책을 세 권 주문했다. 한 권은 내 거. 나머지 두 권은, 가위와 바위의 몫으로.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난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던 몇 달간 내내,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낼 것인가에 관해서는 열심히 고민했지만, 제대로 쉬는 일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애나 아카나 프로젝트가 끝난 지는 이제 꽤 몇 달이 흘렀지만 뒤늦게라도 성황리(?)에 끝난 가위바위보 프로젝트에 청량한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저자를 몇 년 전 여름, 《혼자 있기 좋은 방》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우지현 작가의 이미지는, 화가가 어떻게 이렇게 글까지 잘 쓰지?" 정도였다(지금은 이를 논리적인 인과 관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딱히 행사에 참여한다든지, 어느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든지 하는 일을 거의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는데, 북토크에 당첨되어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뭐라도 한 마디 전하고 싶어서 염소 소리로 용기내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원고를 구성할 때 그림을 먼저 고르고 글을 썼는지, 글 내용을 먼저 정하고 그림을 골랐는지, 뭐 그런 걸 물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았을 텐데, 하는 은은한 아쉬움이 새삼 남는다.


전작에 비하면 《풍덩!》은 글 분량이 조금 더 간소하고 여백이 많다. 하지만 짤막짤막한 원고 내용에 쓰나마나하게 뻔한 장식형 문장은 전혀 없다. 대신 이 한 권에는 글과 여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다(작품 속에 또 다른 그림 작품이 들어 있는 구성이니 일종의 액자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백에는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휴식을 찰랑이듯 듬뿍 담았다. 너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칠 요소들이 많아서(나도 몇 번이나 그럴 뻔하다가 돌아가 다시금 속도를 늦춰가며 읽었다). 이 책을 펼쳐드는 독자들 모두 모쪼록 이 달콤하고도 청량한 휴식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리뷰를 쓴다.

내게 이 책은 물과 그림, 수영을 소재 삼아, 휴식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따금 '수영'에 관해 생각할 때면, 언젠가 초경을 하기 전이자 아직 운동화 끈을 리본 모양으로 맬 줄 몰라 혼란스럽던 4학년 여름방학 때 딱 한 달쯤 수영을 배운 흐릿한 기억과,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미묘한 문제--어느 부위를 얼만큼 제모하고, 대체 어떤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해야 하는가,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감상해도 괜찮은가 등등을 고민하느라 잠시 딴길로 새기도 했지만, 대체로 읽는 내내 기분 좋은 휴식과 피서가 되어 주었다.


휴식의 해답은 '현재'에 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현재에 두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즐기는 것이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오롯이 쉴 수 없다.

언제나 휴식은 현재 시제에서만 가능하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 풍덩!》 p. 66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내 곁에는 '휴식'이 있었다. 요시고 사진전을 보고, 맛있는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바위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일만 보쯤 걸었던 어느 날처럼. 자연히 내 곁에는 '현재'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찰나의 '여름'이 있었다. 늘 빠르게 흘러가버리기만을 바랐던 이 계절과 처음으로 마주보며, 그 속에 오롯이 담겨 충만한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이따금 뒷목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하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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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지막 장의 이 장식 문구로 끝난다. "Don't forget to have a good time while you're doing things. Political work should not be work." 한국어로 멋들어지게 옮기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아, 대신 이렇게나마 요약한다. 세상만사가 어떻게 돌아가든 각자의 삶 속에서 다만 한 조각의 즐거움을 놓지 말 것. 다시 표지로 돌아오니 "분노는 유쾌하게"라는 문구가 새삼 달리 다가온다(전체 제목은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이다).

몇 년 전, 코니 윌리스의 작품을 막 읽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시간 여행에의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 여행은 점차 내게 피로한 개념이 되었다. 과거 혹은 미래, 어느 시간대를 넘나든대도 그 속에 여전히 인간 세계 혹은 그 엇비슷한 문명이 존재했고 이들의 삶이 지탱하는 일상은 웬만해서는 고단했다(그래야 이야기가 되기 때문일까).

읽는 것만으로도 함께 피로해지는 시간여행기의 책장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간 여행을 향한 내 환상이 어디에 기인한 것이었는가를. 그리고 내가 내린 답은 '일상'이었다. 낯선 여행지에 가서 탱자탱자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일상과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해지는 잠깐의 일시정지 기간. 어찌됐건 시간 여행도 '여행'으로 끝나니까, 어느 정도 비일상성을 동반하리라 기대했건만, 시공간을 건너간 이들이 여행지에서조차 너무 열심히 현생에 몰두해서 더는 대리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이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를 읽었다. 특히 첫 꼭지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를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을 읽고 났을 때만큼이나 피로했고, 상영관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났을 때만큼이나 기운이 쭉 빠졌다. 웃긴 일이다. 직접 이 삶을 살아낸 이들을 제치고 애먼 내가 고작 글이나 좀 읽었다고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책의 마지막 꼭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소변 문제〉는 미국의 노숙인 문제를 다룬다. 없는 살림에 아등바등하며 런던에서 잠시 체류하던 시절에 매일 이번 달 월세는 어떻게 낼까, 하는 공포에 시달리며 외출할 때면 대형 쇼핑몰 앞에 죽 늘어 앉아 있던 노숙인들이 내 미래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아마 나는 외국인 신분이었으므로 얼마 못 가 본국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더 높았겠지만). 그게 아마 100%의 본심은 아니었을 거다. 나는 연락할 가족도 있었고, 돈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지막의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으니까. 트레일러에서 살며 식당과 호텔 청소 투잡을 뛰던 저자에게 "진짜 삶"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던 것처럼.

선택할 여유가 생기면, 현생의 고단함은 아무래도 견딜 수 있다고, 그래서 시간 여행 중 겪는 잠깐의 고난은 고생이랄 것도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아직 "진짜로" 힘든 게 아니라고, 이런 마음으로 내 가난과 고생을 남에게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시기가 있었다. 그땐 도리어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얄궂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경제 상황을 선형으로 줄 세우며, 나보다 더 형편이 나아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왜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웃기는 생각을 매일 했고, 게임 화면처럼 사람들마다 머리 위로 파운드화 표시가 반짝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 가난을 증명할 만큼 충분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생활을 끝낸다는 마지막 선택지가 있긴 했지만 당시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 삶과 다른 차원에 놓인 선택지였고, 그 선택이란 현재 내 삶을 끝낸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저자의 이 치열한 기록이 한가로운 취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삶은 여러모로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삶의 자원 배분은 애초에 공평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꿈꾸고, 그게 절로 채워지는 경험이 아니라면 그 외 어떤 잉여를 곁에 두더라도 우리의 삶은 끝까지 만족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 내 결핍이나 소소한 고생도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한 것이 된다. 누군가 내게 던져준 레몬을 그득히 쌓아놓고 내내 썩히다가 이제야 이걸로 부실한 레모네이드라도 만들어 볼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런 아주 약간의 여유를 짜내려면 나와 내 삶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여행도 좋지만(가능하다면 시간여행도 오케이), 저자는 거리두기 한 방법으로 '쓰기'를 제시한다. 내가 몇 년 전 지극히 자기 중심적으로 얻은 교훈을 이번에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다른 이들의 삶을 한층 가까이 바라보며(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남긴 기록을 통해 다시금 배웠다.

켄 로치(〈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유독 이런 인간적이고도 철학적 주제에 관해 고찰해 보려면 매번 내 자신에게서 여성을 지우고, 남성 혹은 백인 등으로 대표되는 인간 기본형으로 내 시점을 다시금 설정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때가 많아 이따금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저자 덕분에 오롯이 인간 여자의 시점 그대로 이 세계의 모습을 치밀하면서도 세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되어 특히 이 부분이 뭉클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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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삶 \ Q. E. D. 큐큐클래식 4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이성옥 옮김 / 큐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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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영문 모르고 읽은 책들을 한참 뒤 다시 펼치면 그게 내 삶의 궤적이 되어 줄 때가 있다. 스타인의 소설이 요즘 청소년에게 그런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반복된다.”는 말을 내내 곱씹으며 읽게 되는, 옛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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