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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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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H. 프랭크는 경제학자답게 행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릿적 램프를 쓸어 소환하는 지니만큼이나 신비하고 우연한 개념 대신 사회적 인프라와 제도들을 들어 구체적이며 독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분량으로 매우 훌륭하게 통찰한다.


특히 누진소비세에 관해서는 인간의 상대적 이기심을 들어 부자들의 소비 규모에 맞춰 거둬가는 세금이 좀 더 는다고 해서 절대 그들의 절대적 부가 무너지는 일 같은 건 없다고 시종일관 가진 자들을 잘 달래는 듯한 어조를 띤다. 과연 보수당의 마음을 바꿀 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만 하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 좌우란 상관되지 않는 개념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이다. 다수 보편적 복지라는 것이 중하위층뿐 아니라 그들에게마저 불필요하게 빠져나가는 손실을 줄여줄 것이며 삶의 질을 끌어올려줄 것이고, 심지어는 그들을 여전히 부자로 남게할 거라는 것이다.


이 책은 좀 간단히 설명하자면 더 나은 미국을 만들어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들을 행운의 미국인으로 만들어준 세계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좀 더 진실된 아메리칸 드림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조국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2016년 봄에 출간된 미국인 경제학자의 책이 2018년 여름 한국에 번역 출간된 것이 조금 흥미로운 구석이다. 저자는 아마 그 해 가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운 좋게도 교육 수준이 아주 높으며 주로 그와 비슷한 환경을 거쳐온 이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을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적어도 겉으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었을 것이다. 여자 대통령 후보에 대한 반감이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푸른 빛깔 단꿈이 완전히 사그러들기 전 그의 원고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 삼을만한 일일 것이다. 우연히 한국어로 다시 쓰인 저자의 책을 읽은 한국인 독자로서는, 차라리 운 좋게 10여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한국에서 이번 정권 기간 내 이 책의 주장이 전염성 강한 믿음으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도 가져보게 되는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는 네팔이나 짐바브웨 같은 국가를 예시로 들며 미국인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에 나고 자란 것이 얼마나 큰 우연이자 행운이었는가를 쿨하게 인정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우주로 보이저 골든 레코드를 쏘아올리던 칼 세이건과 그의 친구들처럼(물론 그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우선은 그 시작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자가 책을 통해 내내 이야기하듯 본래 인간이란 제가 가진 것에 있어서는 인지가 좀처럼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그가 일생 동안 남자로서 누려온 특혜에 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음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느낀다. 미국인 저자가 쓴 자국의 이야기임을 감안한다 해도 여기에 성별을 유의미한 변수로 삼았다면, 어쩌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책을 덮는 시점이 되어서는 반쪽짜리 고찰로 남았단 인상을 받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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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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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그림과 친해지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우선 그림은 책이나 음악과 다르게 시작과 끝 지점이 명확하지가 않다. 그래서 불시에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늘 눈을 굴리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림을 보는 나의 인지적 시간은 언제나 0초였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도 괜찮다는 점이 어려웠다.


저자는 방이라는 개념을, 개인에게 사적인 감정을 남기는 여러 공간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여 그림을 매개로 독자에 소개한다. 마치 부동산 에이전트처럼,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고 그 방을 이미 차지하고 있는 가구와 소품 그리고 현재의 주인(?)까지 찬찬히 짚어준다. 그 조근조근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여기로 할게요, 라는 말이 절로 목 끝까지 올라온다. 이번 방이 마음에 들건 마음에 들지 않건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다음 공간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이 뷰잉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을 통해 저자는 그림으로써 삶을 살아온 여러 화가들과 그들이 남긴 수많은 작품의 존재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를 프린트된 형태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한 때 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진이 보편화된 시대의 '그림의 소용'에 대해 어리석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림과 사진은 모두 프레임 즉, 시선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좀 더 자유롭고 세밀한 감정이 있음을 뒤늦게야 배워가는 중이다. 생생한 그림 묘사를 읽어내려가며 함께 실린 그림을 들여다보는 루틴에 슬슬 익숙해질 즈음이면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림을 마주하고도 제법 당황하지 않고 어설프게나마 그것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해보게 된다. 그렇게 그림은 읽는 이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리라.


옛 그림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듣는 것도 재미가 있었는데, 18세기 영국의 화가 애나 블런던을 필두로 여러 화가들이 함께한 프로젝트 '셔츠의 노래'를 통해 (특히 섬유업계의)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고 나아가 이것이 실질적 정책 마련으로 이어져 이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3년 동안 실제 작업에 쓴 기간은 3개월이고 나머지 시간은 만찬으로 등장시킬 음식을 맛보는 데 전부 썼다는 일화도 재밌다. 그가 운 나쁘게 후원자의 채근에 못 이겨 단 몇 개월만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도 그의 작품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떨칠 수 있었겠느냐 하면 다소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평한 마음으로 내려보는 가정이다.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특히 21세기 이전 작품들의 지나치게 단순한 제목과 소재의 사소함에 사뭇 웃음이 난다. 그런가하면 그 풍경이 우리의 일상에 좀 더 바짝 닿아있을수록 마음을 채우는 위안은 배가된다는 점에는 신기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요즘 같이 푹푹 찌는 날씨일 때면 어떤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역시 저자가 책에서 제목을 귀띔해 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주세페 데니티스의 '완전 추워!'가 좋을 것 같다.


                    Giuseppe De Nittis, Che freddo! (1874)


<혼자 있기 좋은 방>은 2015년 시작되어 햇수로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완성된 이야기라 들었다. 운 좋게 참여하게 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내심 묻고 싶던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에 대한 간접적 대답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보낸다고 했다. 어느 누구보다도 '왜 하필 방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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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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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을 틈 타 사무실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무슨 말로 리뷰를 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정식 출판본에 실릴 21편 중 총 8편의 단편을 읽었다.

선집의 얇은 두께에 비하면 모든 챕터가 결코 단번에 읽어버릴 수는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와 '어떻게'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다.


작가 록산 게이가 책을 통해 던져주는 단어들이 서서히 내 안에서

입체적으로 의미를 넓혀가는 듯한 그 느낌이 참 좋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그랬듯, 여자들에게 줄곧 붙어왔던 어려운이라는 수식 역시

내 사전 속에 한 권 분량의 의미를 더 얻게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려운 여자들 선집을 읽고 얻은 교훈: 이런 걸 서평이라고 적어 게시하는 일이란

굉장히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훔치는 건 내 월급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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