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요즘 들어 부쩍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게 된다.특별히 그런 부류의 책을 찾는 것도 아닌데 결국 손에 잡히는 것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다.최근에 내 방 책장에 꽂혀있는.. 사놓고 읽지도 않은 수 백 권의 책들 사이에 초서까지 하며 읽었던 책들 대부분은 글쓰기 책이었다.어떻게 보면 약간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데 글쓰기 책을 찾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25년을 꿋꿋이 버티며 내 길을 걸어온 어느 순간, 난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던 터라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좀 쉬게 되었다.하지만 잠깐 앉았다 가려던 그 벤치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내가 걸어왔던 길‘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수많은 것들을 길에 떨어뜨렸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최근에는 그것들이 두통이 되어 하루 종일 날 괴롭히고 있었고 난 이 통증을 어떻게 하면 내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글을 쓰는 것으로 그것들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또 하루를 살아내면서 습관적으로 나태해져 가고, 그 사이 내 안에는 또 다른 상념들이 채워지고 말았다.---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다시 한번 펜을 들게 한 책이다.각각에 목적을 가진 수많은 기계가 돌아가는 나의 직장(당분간은)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읽었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잠자리에 누워 잠들려고 하는 순간 작가가 느꼈을 그 Devotion이 나에게도 전달되었음을 아주 강하게 느꼈다.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 글을 시작으로 무언가를 써보려 한다.그냥 뭐라도 써보려 한다. 어제를 살아내고 현재를 살아내며 내일을 살아내야 할 나 자신에게 큰 용기를 주었으니, 작가에게 조그만한 보답이라도 하려면 말이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세 번째 읽게 되었다.좋은 책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그 문장의 의미가 달리 보인다고 했다. 이번에 읽었을 때는 전과는 달리 지나온 날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이 더욱 분명해졌다. 매년 인생을 살아오고 돌이켜보며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이 달라진다.그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면 점점 희미해져 가든지...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그 인연은 순간 불타올라 강렬하게 내 마음속에 태워졌던 흔적을 남기지만 영원하진 않다. 하지만 때때로 그 그리움이 불타오를 때가 있다.그리움의 횟수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줄어들지만 그렇게 줄어든 횟수만큼 순간적인 불타오름은 더욱 강렬해지기만 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하루키에게 있어 ‘그녀‘는 그런 존재였을까? 무엇이 그렇게 불현듯 글을 쓰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계기는 그에게만큼은 간단한 것이었지만, 이 소설을 읽은 나에게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내심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10대를 거쳐 20대 초반을 살아가며 글을 읽은 건,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받았던 대본 외에는 단 한 번도 읽는 행위를 하지 않던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난 이 책을 고교 때 만났던 첫사랑에게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은 편지와 선물로 받았었다. 그것도 9개월 동안 휴가와 외박 한번 나가지 못한 군인의 신분으로...(결혼을 한다는 소식은 책장 맨 앞에 쓰인 채 책 가장 앞 장 갈무리에 접혀 이 책을 받고 1년 뒤, 전역할 때 읽게 되었다..)이 책을 받고 남은 1년 남짓의 군 생활 동안 10번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왜냐면 작품 속 주인공의 감정에 너무 몰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로는 쓰여 있지 않는 여러 가지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젊은 날의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 독서라는 행위는 내 인생에 숨 쉬는 일처럼 되었으며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도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