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픽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닌 설정은 없다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 책의 여주인공과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난 정말 재기불능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싶었다.
새벽마다 털털거리는 오토바이소리때문에 동네주민들의 원성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점에 남주 도훈은 노란헬멧을 착용하고 새벽을 깨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비가 내리는 새벽녘에 도훈의 차앞으로 미끄러진 오토바이. 그런데 헬멧녀는 은근 까칠할뿐만 아니라 도훈의 질문에도 툭툭 내뱉는 어투다.
분명 아무 연관이 없기에 무시해도 무방했건만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도훈은 그녀가 신경쓰인다.
그런 즈음 도훈이 경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측에 의뢰가 들어왔고, 나름 최고이자 적정선에 맞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건넸으나 의뢰인의 요구는 까다롭기만 하다. 자신이 보낸 주문을 이해하지 못한듯 하다고 직접 방문까지 한 빈우를 보고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기억을 해내지 못하고 맘에 안들면 냅둬라 식으로 상담을 끝낸다.
빈우가 처음부터 이렇게 까칠하고, 새벽녘에도 배달을 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것은 아니다. 여느집처럼 단란하게 살아가던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180도 돌변해서 빈우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단번에 내치는 엄마 혜정.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던 빈우. 그렇지만 유전자 검사까지 강행했고, 결국에는 호적정리까지 끝내버리는 엄마의 태도를 보고 그녀 역시도 무너져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빈우모는 23년이 지나서 자신이 친모가 아니라고 매몰차게 항변을 했던 것일까? 그때부터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빈우.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집을 남동생 영호에게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에 텅빈 집을 지키고 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1층은 손도 대지 않고, 2층 자신의 방만 왔다갔다 하는 심정. 그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런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할수 없지 싶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퇴짜놓았던 여자와 노란헬멧녀가 동일인이라는 알게 된 도훈. 그때부터 그의 관심도는 더 높아져간다.
참 인연이 되려고 빈우가 창업하려고 모색했던 건물주가 도훈의 아버지일줄은.
도훈은 빈우의 삶속에 능동적으로 빠져들고, 그녀를 알게 모르게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진심을 다하면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빈우는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도훈에게 차츰 마음이 가고, 결국에는 사랑에 빠진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 제아무리 상대를 좋아하고 바라본다 하더라도 행동하지 않고, 그냥 언제어느때든 상대가 그자리에 있을거라 자만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빈우와 정민의 관계를 보면서 느꼈다. 왜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을까?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고 그 사이에 딸아이까지 생겼다면 어떻게든 잘살아보려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정민을 사랑했던 서연은 빈껍데기인 정민과 살면서 피폐해졌을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의 딸 아영에게도 엄마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많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나중에 딸을 위해 변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연을 보면서, 이제는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 제대로 사랑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다시 도훈과 빈우의 사랑이야기로 넘어와서, 이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애정표현에도 적극적이었다. 달달한 내용들이 좋았고, 19금씬도 섞여있어 나름 얼굴 붉혀가며 읽을수 있었고, 도훈의 아버지가 샤워하고 나온 아들의 허리춤에 있는 수건을 잡아당기며 아침이 멀쩡하냐고 묻는 장면에 있어서는 풋 하고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로설은 절대적으로 개취다. 그렇기에 그냥 밋밋하다고 할 사람도 있고,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없어 심심하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로설에 있어 엄청 호평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이 책도 마음에 딱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