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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 정말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하는 울분이 치밀었다. 그녀들의 운명이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너무나도 쉽게 그들을 매도해버렸던 시대적 배경이 느껴져서일것이다.
첫장에 나오는 윤금이 사건은 정말 뭐라 말할수 없을 정도의 아픔을 건네었다. 너무나도 잔인하게 짓밟힌 그녀의 인생이 가엾기도 했지만, 가해자인 케네스 이병에게 주어진 형벌은 우리가 얼마나 약한 민족인지를 깨닫게 했기에 더 아팠다.
기지촌을 배경으로 했던 안정효님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읽었을때와 같은 고통이 왔었고, 또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절대 피해자이면서도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그당시의 여인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이면서도 아프다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까지 외면을 받아야 했었고 환향녀라는 주홍글씨를 끌어안을수밖에 없었다.
그때와 뭐가 달라졌나 싶었다.
옐로택시라는 정말 화가 치밀어오르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비단 미군만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나라 여성들을 비하하고 우스개소리로 떠벌일때 거기에 박자를 맞춘 정말 못난 남자들이 더 비난받아야 하고, 부끄러워할줄 알아야 하지 않나?
아무튼 누구보다도 기지촌 여자들의 애환을 잘 알수 밖에 없는 정태가 아이린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운명이었을것이다.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누구보다 미군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던 정태, 그런 그를 언제고 손한번 봐주겠다고 벼르는 미군들의 미묘한 갈등이 그저 소설속 설정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지칭하는 양공주라는 말이 그녀들을 얼마나 치욕감에 떨게 했을지...
그런 양공주의 실체를 알면서, 그녀들의 고달픈 인생을 누구보다 더 잘알것 같은 정태가 아이린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운명의 장난 같고,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어느날 빚때문에 딸을 팔아넘긴 아이린의 엄마는 과연 어떻게 용서를 해야 할지. 자신이 먼저 그런 인생을 살아봤기에 그 길이 얼마나 부당하고, 인간에게 씻을수 없을만큼의 고통과 상처를 주는지 알면서 그런 선택을 한 아이린의 엄마가 참 미웠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던 구혜주. 사랑하는 여자인데도, 빚때문에 계속 기지촌 생활을 하는 아이린을 지켜봐야 했던 정태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지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을 정도다.
아이린을 폭행하고 괴롭히는 미군의 살해용의자로 정태가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고,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하지만 마땅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작가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책표지를 차지하고 있는 저 여인이 아이린일것이다. 저 젊은 여인의 표정속에 녹아든 삶의 권태와 고통스러움이 과연 해소될수 있을지. 그녀도 꿈이 있을텐데, 그 꿈을 위해 새롭게 도약할수 있을지 기대가 되고, 무한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