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스페인의 움베르트 에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하여,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스페인소설은 처음으로 접한 것이라 조금은 난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이 작품은 잔잔한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평온함과 함께 지난날을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결코 밝지 않았지만.
지중해의 한 버려진 망루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를 찾아온 병사. 그 둘이 3일동안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시절을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이 책의 전부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는 예전에 종군기자였고, 이 남자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남자는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 한장때문에 인생이 비극으로 치달았던 크로아티아병사다.
전쟁터를 누비며 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뛰어다녔고, 국제 언론인협회상도 수상한 이력이 있는 파울케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붓을 잡은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녀의 시체까지도 찍어댈 정도의 남자가 변한 이유를 난 정확히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파울케스가 수많은 전쟁을 카메라에 담는 과정에 그저 스쳐지나가듯 셔터를 눌렀을뿐인 사진에 찍힌 마르코비츠. 세월이 흘러 이 둘이 만났을때 파울케스는 마르코비츠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 사진 한장으로 인생이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마르코비츠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흐뜨러뜨린 파울케스를 죽이기 위해 그를 더많이 알려 했고, 더 많이 안 상태로 지중해의 그 남루한 망루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편안한 소재도 충분히 많은데,유독 전쟁을 그리냐는 물음에 "죽음이 있는 곳에 희망도 있는 법"이라고 답하는 파울케스를 보면서 그럴수도 있구나! 하는 공감대를 자아내 씁쓸하기도 했다.
마르코비츠가 떠오르는 아침해와 일몰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참 마음이 아팠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에게 여명은 흐린 하늘, 우유부단,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이지요...... 그리고 낙조는 다가올 암울함, 어둠, 두려운 마음에 대한 위협이고요. 땅속 구덩이의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속에서 소총 개머리판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 병사의 끝없는 기다림......"(p122)
어떠한 명분으로도 절대로 결단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지게 한다. 사물이나 상황은 똑같은데, 그사람의 심리와 과거때문에 180도 달리 보이고, 달리 느껴진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 불러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칼을 꽂는 이런 전쟁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파울케스는 왜 올비도가 바닥에 떨어진 공책을 줍기 위해 움직일때 지뢰에 대한 감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초정도 망설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도 지뢰를 느꼈으니 당연히 올비도 지뢰를 감지할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거의 감지하기도 힘든 찰나의 시간인 그 3초의 망설임때문에 파울케스는 올비도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지켜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긴 대화를 끝내고 마주선 파울케스와 마르코비츠는 그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같은 책을 읽었어도 개개인별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것이다. 난 작가의 의중을 정확히 이해는 못하겠으나, 아무튼 전쟁을 겪은 이들의 아픔을 느낄수 있었고, 극한 상황에서 잔인할수 있는 것은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일수 밖에 없음에 한없는 슬픔을 가져봤다.
아직은 스페인소설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일까? 지명도 낯설었고, 정서적으로도 100% 이해는 못했으나, 음미하며 잔잔하게 읽을수 있어 꽤 괜찮았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