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운다
안영실 지음 / 문이당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영실 작가의 단편 여덟 작품이 실렸습니다.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다!" 서문에 나오는 작가님의 말인데, 아니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도 아니고, 소설이 이야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같은 서문 안에 안영실 작가 본인이, 답 아닌 것 같으면서도 답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떠도는 존재다." 이건 또 무슨 동문서답입니까? 하지만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보다 더 적실한 설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국 소설에는 왜 이렇게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떠도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역마살이라는 이름으로 좋게 포장하곤 하죠. 이게 여자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게 더 기가 찹니다. 든 정이 있어서(p22l 차마 사람을 미워하지는 못하겠고 그저 사주팔자에 무슨 마가 껴 저러는 거겠거니 합리화를 하는 심리인데, 아무튼 이게 지난시대 어른들이 세상사를 이해하던 한 방식이었습니다. <만전춘별사>까지 그 유래를 거슬러올라갈 수 있네요(그보다 훨씬 전이겠지만). 그리고 아일랜드의 봄, 갓 구운 스콘에까지 심상이 옮아옵니다. 극과 극의 전환이며, 에밀리를 위한 왈츠(?)를 말로 표정으로 연주하는 "그"와 함께 금지, 아니 지금의 밤이 깊어갑니다. 원심력은 그저 겉보기로 구색을 맞춘, 힘의 평형을 이루는 장식에불과하니 결국은 이 왈츠가 돌림노래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비지땀의 뜻을, 비지를 먹으면서 흘리는 땀이라고 의도적으로 제시한 오답 선지를 읽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문제은행의 그 출제자는 사람들더러 웃으라고 그런 선지를 고안한 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진지하고 심각한 학력평가에 그런 문장이 나오니 웃음보가 터질 수밖에 없었겠는데... p58(<늑대가 운다> 中)을 보면 비지는 날콩을 갈아넣어야 제맛이 난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요즘 K푸드가 세계를 휩쓰는 세상이라지만 날콩과 익힌 콩의 그 미묘한 차이를 외국인들이 비지(혹시 이걸 먹는다면)에서 알아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비지는 그 비릿한 맛 때문에 한국인도 잘 못 먹는 이들이 많죠. 

지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외교 방침(한때 기업 화웨이의 영업전략이기도 한)을 전랑의 그것이라 불렀는데, 이런 걸 보면 그들의 유전자 안에 몽골인의 그것이 적잖이 들어갔나 봅니다. p61에 보면 몽골 전통의 연주 가락을 "흐미"라 부른다고 나오는데, 이게 그들이 좋아하는 늑대 울음소리와 닮았습니다. 개들의 하울링, 숙희(이 작품에서 개 이름입니다)의 울음... 사람들도 이에 익숙해지면 뭔가 속으로 감정이 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나 늑대나 그 깊은 본성은 닮은데가 있고 둘 다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니. "마니 녜드 이녜드(네 이름은 웃음이란다)." 

"늙음은 미(美)가 아니라 추(醜)다." 이건 죽은 움베르토 에코 같은 사람한테 물어 보면 책 두 권으로 답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 <매미>에서 화자는 한자를 파자(破字)하며 그 깊은 뜻을 파고들려 합니다. 술 유(酉)에 귀신 신(神)이 붙은 글자라는 건데, 그럼 모습이 보기 싫어지는 건가요? 여튼 상관없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화자가 "미만 따지는 시상(세상)이 덜 되야먹은 겨!"라고 바로 일갈하시니 말입니다. 경(經)을 읽으면 절로 눈물이 난다...(p84) 전 도저히 그 경지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개수대도 깨끗하고 젊은 양반 기억도 싹 사라진 치매의 부작용, 아니 특효까지도 말입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p105(<여자가 짓는 집> 中)에 인용되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 제목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확실히 그 눈에 콩깍지가 씌는지 엄마 눈에는 딸 인생 망칠 작자(J라는 분)라는 게 훤히 보이는데도... 이 사위라는 자는 학벌이 아깝고 인물이 아까운데(그 장모님의 평가입니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합니다. J가 멋진 양복을 입고 첫출근을 하던 날 전철에서 유도선수들에게 맞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같은 회사 직원들이 손쓸새 없이 그런 일이 터졌겠다고 짐작은 되지만, 전 솔직히 요즘도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그런 걸 일부러 시키는지 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설정상 요즘 일은 아닙니다). 약은 인간은 전철에서 설령 시비가 붙어도 상대 약만 올려놓고 적정 단계에서 빠져나오는데 J는 고수한테 아직 배울 게 많은 듯합니다. 아, 아무튼 지금 숨이 가뿐 건 내가 아니고, 이 수치스러운 감정도 내가 아니며 나는 어딘가에 상처없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그 여성분의 생각, 너무 슬픕니다. 

냉장고 정리를 평소에 잘 해둬야 합니다. 안 그러면 p218(<바람벽에 흰 당나귀> 中)에서처럼 가뜩이나 내성발톱으로 아픈 발가락을 더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죠. 전 가끔 소설가분들이 마치 AI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소설이라는 게 이런이런 효과를 노리고 치밀하게 설계된 소산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꺼내시는 중 기막히게 떠오른 온갖 이미지와 주제가 희한한 조화를 이루며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니 말입니다. 내성발톱 이야기가 나왔다고 진짜 작가분이 내성발톱으로 고생하는 건 아닐건데, 또 물리학 전공하고 졸업 후 재벌사에 입사한 남친이 정말 있었던 것도 아닐텐데 이야기가 이렇게 신기하게 잘 이어지니 말입니다. 아무튼 <갈릴레이 갈릴레오(순서가 바뀐 건 이유가 있습니다)>에서 희수와 함께 망원경을 들고 다니는 J는 앞의 그사람과는 또다른 인물이겠습니다. 옷 벗은 마야(p167)가 사실 진짜 아름다운 데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그는 망원경도 필요 없는 인물이며, 유도선수들에게 맞은 곳도 이제 멀쩡히 다 나았으리라 믿습니다(아니, 애초에 다른 사람이었지만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장 - 365 에세이 일력,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결심 (만년형, 스프링북)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 랩에 싸인 종이박스를 개봉하니 정말 예쁜 일력 한 권이 나옵니다. 요즘은 이렇게 탁상용으로 제작된 일력 형태의 출판물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일종의 굿즈도 되고 팬시상품도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권의 책이며 독자는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차분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일력들이 그렇듯이(아닌 것도 있습니다만) 날짜는 적혀 있지 않고, DAY 1, DAY 2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를테면 DAY 5에는 데일 카네기의 말이 나오는데, 주제는 걱정 내려놓기입니다. 걱정해도 아무 소용 없는 문제로부터는 스스로를 좀 해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해야 마음의 평화가 생긴다는 건데, 사실 마음의 평화라는 것도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사치입니다. 하루하루의 과제를 열심히 해결해 나가는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걱정을 빨리 제거해야 자신의 당면과제에 집중할 여력이 생깁니다. 단, 걱정을 벗어나는 것과 현실을 도피하는 건 엄연히 다릅니다. 현실의 어려운 과제가 내게 도전해 오면 바로 맞서야 하며, 이를 피했다간 더 큰 위험과 손해가 닥칠 뿐입니다. 나를 위협하는 손톱만한 시도에도 죽기살기로,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 문제가 일부라도 해결됩니다. 

데스몬드 투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앙글리칸) 주교였고 생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분입니다(3년 전 타계). 이분의 말이 DAY 54에 나오는데, 그 주제는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하게 되고 싶어하며, 평범한 자신에 끝없이 실망하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그러나 투투 주교는 "당신이 미처 느끼지 못할 뿐,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우리들에게 힘을 줍니다. 나의 장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럿 있겠지만, 투투 주교는 메모지에다 그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죽 적어 보는 것을 그 중 하나로 꼽습니다. 

사람은 일도 해야 하고, 그 바쁜 일로부터 릴랙스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걸 20세기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일과 사랑의 균형"이라고 불렀고 그 내용이 DAY 85에 나옵니다. 그 표현이 재미있는데 "당신이 가능을 믿든, 불가능을 믿든, 당신이 딱 믿는 대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매사가 부정적인 사람은 그 말이 재수없어서라도, 될 일조차 안 되기 마련입니다. 이 페이지에는 심리학의 개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도 함께 실렸습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감정, 지식은 이미 불구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DAY 123을 보면 마우드 V 프레스틴의 말이 소개됩니다. 이분 이름은 정확하게는 Maude V Preston인데 Sharing이라는 제목의 시(詩)에서 앞 연(聯)을 인용한 것입니다. There isn't much that I can do,
But I can share my bread with you, And I can share my joy with you, And sometimes share a sorrow too, As on our way we go.가 영어 원문입니다. 인생이란, 결코 혼자 걷는 길일 수 없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데서 온전한 형태가 완성됩니다. 

링컨도 생전에 그토록이나 많은 반대에 직면했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을 변함없이 지지한다고, 함께 가 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아마 큰 힘을 얻었으리라는 저자의 말씀(DAY 151)이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링컨은 강철 같은 의지를 가졌던 인물이며 지지자도 많았으므로 그가 생전에 가던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믿음이 곧 (그에게)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도 합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역 U자형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20세기 초에 프랑스를 이끌었던 정치인입니다. 이분 말이 DAY 351에 나오는데, 이 장에는 데일 카네기의 말도 함께 실렸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 글쎄 현실적인 필요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취미에만 몰입할 수 있는 특권은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부여되지 않겠습니다만 여튼 자신의 정직한 열정이 무엇인지 알 필요는 있겠습니다. 물론 그게 주제파악이 안 되는 환각, 자기기만이 되어서는 대단히 곤란하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아픈 경험을 참척(慘慽. p10, p75, p133)이라고 부릅니다. 고 박완서 선생은 1988년, 57세 때에 당시 25세였던 맏아들 서울대 의대생 호원태씨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박완서 선생은 둘째 아드님도 의사로 키우신 분인데, 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로 자라나야 마땅했을 금쪽같은(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장남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셨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박완서 선생은 작가로서의 데뷔가 당시 기준으로는 다소 늦은 편이었는데, 1981년 <엄마의 말뚝 2>의 이상문학상 수상으로 문단과 독자들 앞에 완전히 그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이후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는데, 그 와중에 저런 큰일을 겪으신 겁니다. 이 책은 초판이 2004년에 나왔고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습니다. 아드님이 돌아가신 후 16년이 지나서야 관련 글들을 모아 책을 내셨다는 사실도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이 책엔 평소 선생의 글쓰기 스타일이나 주제와는 크게 다른 글들이 많아 독자를 처음에 약간 당황하게도 합니다. 하지만 글들의 모티브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면 당연히 저런 문장과 생각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선생은 팬들이 다 알듯이 가톨릭신자이며, 1980년대 전반 혹심한 군사독재의 칼날이 번득일 때 용감하게 정치(그리고 사회의 병든 세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작품 안에 띄우기도 한 분입니다(물론 통속 소설도 잘 쓴 분입니다). 저는 그걸 천주교인으로서의 양심 그 발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독실한 신자분이 아무 잘못도 없이 성실히 삶을 산 엘리트 아드님을 갑자기 데려간 신에 대해 이처럼이니 격한 분노와 원망을 표현하니, 얼마나 그 참척의 아픔이 크셨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p62를 보면 다섯 아이를 젖먹여 기르던 당시에 영세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책 곳곳에 나오듯 선생은 평소에 여러 목사님의 설교집, 불교의 법구경 등도 깊이 읽으시던 분입니다. 

p55를 보면 생전에 호원태씨가 마취과로 인턴 진로(p63)를 정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차분하게 어머님 앞에서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마음과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면서도 합리적인 의욕으로 가득한지 모릅니다. 어머니들이란 본래 아들에 대해 객관화가 안 되는 법인데, 이처럼이나 태생부터가 잘나고 똑똑하며 도덕적으로도 흠 잡을 구석이 하나 없는 아드님의 의젓한 말씀을 들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자긍심으로 가득차셨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아들이 또 있을 수 있나, 전세계 그 어느 귀공자들을 트럭으로 데려와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만합니다. 자 그런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아들을 뺏어간 신이라니? 이건 신이 아니라 살인강도의 악독한 범죄와도 비겨 마땅하다고, 기존의 모든 신앙을 폐기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에는 도무지 이유를 댈 수 없는 부조리와 비합리가 많습니다. 기독교 구약의 욥기(p30)를 보면 한때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욥이라는 장자에게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닥칩니다. 이 이유는 그저 신과 악마가 내기를 했다는 사실뿐이었는데, 욥 본인보다도 기록 밖에서 이 모든 사정을 다 관찰하는 독자가 더 화가 날 정도입니다. 대체 욥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런 사람을 상대로 저 장난을 친단 말인가? 악마야 본래 악마라고 쳐도, 신이 이 저열한 장난에 동조한다는 게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그래서 선생은 욥기를 읽어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분노를 돋운다고까지 솔직히 말합니다. 독자들이 선생의 글을 좋아하는 것도 이같은 솔직함이 잘 드러나서입니다. 

그런데 참척의 가장 교과서적인 예는 바로 신약의 복음서에 잘 나옵니다. 바로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의 경우(p70)인데, 이분은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분입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자, 살인자, 강도 들이나 받던 형벌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대체 무슨 죄를 지어 그런 상황에 처해야 했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그 모든 분노와 불만과 부정의 감정이 다 정화(p172)될 수 있습니다(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박완서 선생의 경지를 추측건대 그렇겠다는 생각입니다. 전 그렇게 착해질 자신도, 의도도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화도 축복이다 - 고정관념의 세상에서 뜻밖의 축복 누리기
정재영 지음 / 이비락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다들 보기 좋다고 하며 동안이다 뭐다 해서 지나치게 외관을 꾸미는 노력을 요즘은 그리 좋게들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자기 나이대로 보이는 게 최고이며, 그에 따른 연륜이 멋지게 드러나 보이는 늙음이야말로 가장 축복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문평론가 정재영 선생이 쓴 이 책에는 그런 멋진 노화에 대한 유익한 상념이 담겼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렸을 때에도 이성(異性)에 대한 설렘, 반함 같은 감정이나 체험이 있을까요? 답이 "있다"라는 건 우리 모두 그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p41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어떤 여자애한테 반했는데, 외모가 예뻐서라기보다는(물론 예쁘기도 했겠지만) 풍금(당시에는 학급마다 풍금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연주 솜씨가 뛰어나서였다고 합니다. 아마 초등학교 때 관악부에서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 앞에서 지휘를 하는 친구 등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좋아했던 기억은 다들 있겠습니다(물론 공부 잘하는 것 앞에 다 깨갱이지만 ㅋ). 

아닌게아니라 악기를 잘 연주하는 재주는 남자건 여자건 당사자를 매우 돋보이게 하는데, 중근세 유럽 왕실에서도 공주들에게 이런저런 악기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이상하게도 동아시아에서만 이런 솜씨를 창기들이나 익히는 것이라 하여 기피했죠. 아무튼 이 챕터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씀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악기 연주 같은 것에 취미를 붙여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라는 겁니다. 그 활동은 첫째 창의적일 것, 둘째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어야 할 것, 셋째 여럿이 해도 좋지만 혼자서도 가능한 활동일 것 등입니다(p46). 너무 쉬운 건 금세 재미도 잃을 뿐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안 되며(이 책에는 치매 관련 정보가 매우 많습니다), 나이 들면 인원이 잘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p114)는 일찍이 내 힘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안달복달해 봐야 어차피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걸 걱정해서 대체 뭘 어쩌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저자의 부인께서 들려 주는 충고가 매우 현명하며, 에픽테토스를 능가하는(?) 통찰이 든 말씀이라서 우리들도 귀담아 새길 만합니다. 워런 버핏은 심지어,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만 빼고 다 버리라고까지 했습니다. 

늙는 게 딱히 서러울 필요가 없다는 게 저자의 말씀인데, 가장 젊고 아름다웠을 시절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성기가 있고, 걔는 그대로 박제된 채 또다른 내가 늙어갈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말은 원래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박완서 선생이 했다고 나오네요(p164). 이런 생각을 연장하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작으나 크나 그래도 흔적을 남겼다는 게 큰 의의가 있으며, 보람 없이 살다가는 인생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누구나 소소하게라도 전성기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p179를 보면 노안(老眼)이 와서 상대의 외모 결점이 잘 안 보인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도 멋진 표현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대목을 잘못 읽고, 나이 들면 미남(미녀)이나 추남(추녀)이나 다 똑같아져서 차별이 사라진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老眼이 아니라 이건 老顔인 셈이죠. 명배우 故 찰스 브론슨은 젊었을 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하게 못생긴 개성으로 유명했는데 나이 들고는 그 중후함이 외모에 완전히 각인되어 여느 미남배우보다 훨씬 근사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 감각이 서서히 상실됩니다. 그런데 p204를 보면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라는 할머니(스페인 분)는 청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온갖 잡된 헛소리, 시비거는 못된 놈들의 음성이 귓전에서 싹 없어지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더라는 건데, 물론 이분의 경우 고가의 청각보조장치 덕에 의사소통에 불편이 적었다는 점도 감안은 해야겠으나 여튼 무슨 말씀을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요. 세상만사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어 진짜학습지 첫걸음 - 하루 10분! 중국어가 저절로 외워지는 새로운 공부 습관 진짜학습지
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원스쿨에서 나온 외국어 교재를 지금까지 여러 권 리뷰했었고 그 중 학습지 포맷은 영어 두 권, 일본어 한 권이었습니다. 지금 이 교재는 중국어인데, 그 구성은 쓰기 노트 1권, 기초편 네 권, 기초편의 워크북 네 권, 발음편과 발음편 워크북 각 한 권, 초중급편 합본 한 권, 모두 12권이 파일폴더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학습지 포맷의 가장 큰 장점은 매일단위로 계획을 세웠을 때 큰 부담 없이 조금씩 소분해서 진도를 나갈 수 있다는 점, 휴대가 편하다는 점 등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조금씩 공부를 할 수 있게 배려한 학습지를 다들 한 번 정도는 겪어 봤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일단 초급자들을 위해 이 학습지는 기초편을 제법 많은 분량으로 편성했습니다. 시원스쿨 교재들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가장 핵심이 되는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기초편 1권 p4)"했다는 게 이 교재에서도 드러납니다. 시원스쿨 진짜학습지 사이트에 가면 중국어 자료실에서 모두 8세트의 음원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고, 나머지 1세트는 유료 구매자만이 접근할 수 있어서 무료로 제공받은 저는 다운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운받은 8세트만 갖고 공부해도 차고넘칠 정도이며, 언제나 시원스쿨 음원을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참 제작이 잘 되었습니다. 

초중급편 1과 2가 음원이 각각 두개씩 네 개인데, 그 중 둘은 단순음원이 아니라 음성강의 파일입니다. 재생해 보니 낭랑하고 또렷한 목소리의 여성 쌤 강의가 나옵니다. 시원스쿨 자료실에 올려진 파일들은 대부분 압축파일이어서 다운받은 후 압축해제를 따로 해 줘야 하는데, 이 파일들도 압축이 된 상태지만 해제해 보면 전후로 그 용량이 큰 차이가 나진 않습니다. 학습지에 딸린 음원들인 만큼, 학습지 본체가 하나하나 소분되었는데 정작 음원은 통으로 묶였다면 좀 불편할 수도 있겠죠. 음원도 물론 챕터별로 다 쪼개 놓았기 때문에 이용에 불편함이 전혀 없습니다. 8세트의 용량을 다 합치면 대략 300Mb에 약간 못 미칩니다(압축상태 기준). 

기초편을 펼쳐보면 컬러 일러스트가 친근한 모습으로 독자들을 맞습니다. 이렇게 뭔가, 그 생긴 모습부터가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시원스쿨 교재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이 기초편에서는 등장인물 네 명이 계속 독자들의 학습을 이끄는데, 好久不見!이라고 외치는 양웨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식 한자어 발음으로는 [호구불견]이지만, 중국식으로는 [하오지우뿌지엔] 비슷하게 읽습니다. 모든 중국어 발음에는 로마자 병음이 달렸지만, 물론 원어민 음성이 녹음된 음원으로 직접 들어보고 큰 소리로 따라해 봐야 실력이 는다는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초편 넷째권 p42를 읽어 보면 부사 才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우리말에서는 이게 예전에 의존명사 살(나이)이라는 뜻으로도 쓰였지만, 중국어로는 부사로 쓰일 때 "고작'이란 의미라고 하네요. 이런 뜻은 한자를 한문(고전) 속에서만 배운 사람들은 전혀 짐작이 안 되죠. 또 비교문에서 比라는 글자는 "~보다"라는 뜻인데, 우리말로는 비교라고 할 때의 그 비 라는 글자입니다. 학습지 겉표지가 생긴 건 부드러운 원색으로 밋밋해 보여도 일단 펼쳤다 하면 내용은 굉장히 컬러풀합니다. 

발음편은 더 다채롭게 알록달록합니다. 1권 p24를 보면 병음으로 zh, sh, ch, r 등이 나오는데, 이게 중국어를 좀 공부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모두 권설음, 즉 혀가 입천장 뒤로 말려올라가며 내는 발음들입니다. 이게 남방 쪽으로 내려오면 이런 권설음이 서서히 없어지죠. 중국어는 운모라는 말을 쓰는데(발음편 p34) 이게 타 언어의 모음과 대충 일치하지만 모음에 없는 개념이 조금 더 들어갑니다. 이 교재에서 중국어의 4성조를 배울 수 있습니다(p40). 

중국어 초급, 중급편은 모두 두 권 구성인데 1권 15일분, 2권 15일분 해서 모두 30일분입니다. 여기서부터 내용이 슬슬 어려워지는데 예를 들면 2권 p14(DAY18)의 得了, 不了를 활용한 가능 표현 같은 게 그렇습니다. 또 DAY23(p34)에는 일반부사 여럿이 나오는데, 白, 決不, 肯定, 一定 등이 나옵니다. 세번째 것은 우리말로 읽으면 "긍정"인데 이게 중국어 구어에서는 "확실히"라는 뜻이니 신기합니다. 매일매일의 분량을 부담없이 익힐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한 그 편집부터가 벌써 백점짜리 교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