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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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법 공부를 하고, 마침내 사법시험(구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 죄 지은 자들을 찾아내어 엄단하고, 또는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세상을 공평하게 바꾸겠다는 마음을 품었던 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요즘은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이 배출되고 그 과정도 복잡하여, 예전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하여 법조인의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여튼 과거에는 이런 절차를 거쳐 법조인이 양성되었고 그들 상당수가 지금 정계로 진출하였기에 정치인 대다수가 법조인 출신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정의로운 이들이며, 법조인이 된 후 초심을 지켜 사회에 공헌하였을까요? 저자 강준만 교수는, 사정이 전혀 그렇지 않았으며 오히려 남을 짓밟고 부당한 이익을 거두려는 추악한 출세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훨씬 많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가 지금 난장판이 된 대한민국 정치판, 재계, 사회라는 것입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이라고, 한국 현대사 연구에 많은 흔적을 남긴 외교관, 언론인이자 저술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논문이나 저술은 1980년대 후반 시사잡지에도 자주 인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해 우리는 그가 명문 프린스턴 박사 출신이라서 대단히 영어에 능통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헨더슨은 "마치 영어를 어떤 공식에 맞춰, 머리에서 조립하여 말하는 것 같았다."라고 예리한 인상 비평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런 헨더슨은,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으며, 삶은 오로지 그 안이라야 살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p40).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적한 게 아니라(그는 1988년에 타계했습니다), 해방 직후 그 혼란한 와중에도 그러했으며, 심지어 조선 시대에도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문외출송이라는 게 양반 계급에게는 하나의 형벌로 기능했겠습니까? 한국인에게는 조선, 아니 고려 이래 중앙에서 벼슬하여 권력을 잡고 동료들을 아래로 깔아보는 자리에 오르는 게 영원한 로망이었던 것입니다.  

p90을 보면 저자는 존 스타인벡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우리는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 감당할 수 없는 책임,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후 헌법 수정조항을 통해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3선이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이미 그 전에도 재선임기 만료 후 퇴임을 불문율로 존중했던 것입니다. FDR도 어쩌면 그런 중압감 때문에 건강을 미리부터 크게 해쳐 급서에 이르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발표되었을 때 히틀러는 그 책을 읽고서 "미국은 곧 망할 것이다!"라며 쾌재를 불렀다고도 하죠.

이처럼 대통령이란, 마치 초인과도 같이 명석하고 강인하고 심지어 건강하기까지 해야 하는 자리일진대, 과연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뽑아 왔는지 강준만 교수는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지성 대신 배우자의 개성과 흡인력에 과도하게 의존한 사람은 아니었는가? 나아가 강 교수는 진보 진영 인사들을 향해서도, 출세욕에 빠져 압제의 시절에도 저항하지 않고 도피하여 이기적인 고시공부에만 몰입한 수구 세력과 얼마나 차별되는 인생이었는지 공평하게 꾸짖습니다. 서울법대는 육법당의 하위파트너였다는 비판(p67)도 있는데, 이는 5공 출범 당시 집권 민정당이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으로 주류가 짜여졌고, 서울 법대가 육사에 오히려 밀려 아래 서열을 이룬 현실을 타매하는 표현입니다. 30년 전부터 일관되게 강준만 교수는 서울대 망국론을 설파한 적 있죠.

사면의 일상화, 인질극의 구조 등은 p129에서 인용되는 이국운 교수의 책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관예우의 폐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법부에 대해 근원적인 불신을 품게 하는 원인인데, 이 역시도 조선시대 이래 내려오는 관존민비의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그늘이 오늘에까지 잔존하는 불길한낌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아무리 마련된다 한들 이런 "인질극"의 상태가 법복귀족들을 장악하는 한 사법개혁의 효과라는 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강남이 "한국 자본주의의 엔진"일 수 있으나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며 불의의 카르텔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을 수 있는 독자들에게도 맹성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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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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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표지에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클림트의 <죽음과 삶> 일부가 미려하게 인쇄되었습니다(본문 중에서는 p368에도 있습니다). 현대지성에서 고전을 정확히 다듬어 펴낸 기획이 이 번역본으로 벌써 예순세권째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은 유기환 한국외대 명예교수께서, 카뮈 특유의 그 박력 있고 냉소적인 문체를 잘 살린 완역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 현대지성 클래식 특유의 일관된 장정 디자인은 여기에서도 그대로이며, 본문 중에는 뭉크, 빅토르 타르디유, 게리 맬커스 등의 그림들이 천연색 도판으로 실렸는데, 이 작품 <페스트>의 내용 전개와 어느 정도 관련도 있는 주제들이라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번역본의 특징 중 하나는 요즘 독자들에게 낯설다 싶은 한자어에 일일이 한자를 병기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p62 같은 곳에서 기벽(특이한 습관. 奇癖), 명구(名句) 같은 단어들이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대목에서 베르나르 리외(Bernard Rieux)가 그랑(Joseph Grand)을 가리켜 "출처를 모를 진부한 표현을 덧붙인다"며 불편해하는 모습이 담겼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의사인 리외는 이내 "필경 심각하지는 않을, 여기서의 페스트가 아니라, 역사상의 재난이었던 페스트 한복판에서도 그는 항복하지 않을 사람"으로 그랑을 평가합니다. 물론 지금 이 역병이 대수롭지 않으리라는 의사(le docteur)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이 번역본에서 "꿈 같은 시절"로 옮긴 구절 원문은 un temps de reve, "도원경의 불빛"은 un eclairage feerique입니다.

"이때는 또한 도시에 갇힌 모든 수인(囚人)이 자포자기하던 시절이기도 했다(p137)." 기자 랑베르는 특히나 무력감을 느끼며 특히 리외의 눈에는 길 잃은 유령처럼 보였다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이 고전을 읽은 이들은 익히 다 알듯 랑베르는 당시 그럴 만한 개인적 사정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식민 북아프리카에 딱히 뿌리를 둔 처지도 아닌데, 하필이면 끔찍한 역병이 돌 때 손으로 찾았던 도시에 억류된 꼴이니 말입니다. p174를 보면 코타르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죠. "다른 의미에서는, 페스트가 돈 이후로 제 형편이 더 좋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알쏭달쏭한 말은 그의 수수께끼 같은 처지와 함께 독자에게 묘한 느낌을 주며 나중에서야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건을 암시합니다.

"페스트가 끝날 때가 됐어(p218)." 시민들은 희망 섞인 바람을 근거도 없이 품고 표현하지만 이 질병이 도시에 내린 계엄이 해제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이 강점한 북아프리카 오랑(Oran)의 암울한 처지를 이 장편이 암유했다고 해석했으며, (카뮈의 정치적 성향과 다소 배치되기는 하나) 미셸 푸코적 의미에서의 감시, 처벌, 억압 기제를 이 페스트(la peste)가 상징한다고도 새깁니다.

"사랑을 대신한 맹목적 고집에 저녁마다 더없이 충실하고 음울한 목소리를 부여한 제자리걸음 소리(p222)"는, 비상사태 때문에 더이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일체의 기계음 따위가 사라진 도심에서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소리, 힘없는 구둣발 소리 등을 놓고 저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점령된 도시, 빼앗긴 문화와 문명, 압류당한 자유와 활기를 이렇게 묘파한 카뮈의 통찰과 상상력이 빛나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보잘것없었던 만큼 더욱더 효율적이었던 페스트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p218)." 이민족이 명분 없이 짓쳐 들아오건, 조상 대대로 지켜온 자존과 명분을 능멸당하건, 사실 우리 소시민들은 비굴하고 무기력하며 비루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된, 하찮기 그지없는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같은 고귀한 사치가 비상시에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역병균은 바이러스와 달리 여름에 강하고 겨울에 힘을 잃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 공간 배경에서 만성절(p280)이라 하면 오늘날의 할로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시민들이 살아 있는 유령들이 되어가는 즈음, 코타르는 p281에서 "이 (억압된)도시의 하루하루가 만성절이었다"라는 기막힌 독백을 뇌까립니다. p330에서 코타르는 드디어 사람들이 우려하던 방향으로 경솔한, 혹은 통제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르며, 도시의 긴장이 해소되어가는 흐름과 정반대의 침체를 겪는 그를 보며 독자의 마음도 착잡합니다. p362에서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는 개 한 마리와, "형용사가 모두 지워진" 도시의 풍경을 보며 우리도 일상과 비상의 진정한 경계가 무엇인지 생각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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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스페인어 단어장 - 실전 말하기와 시험 준비까지 완전 정복!, 개정판 GO! 독학 시리즈
이소라 지음, Raimon Blancafort Lopez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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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GO! 독학 독일어 단어장을 리뷰했었습니다. 제2외국어도 요즘은 다양한미디어를 교육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만큼, 독학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가이드가 함께하면 단어 공부도 지루하지 않고, 독학할 때 올바른 방향성이 잡히는 점도 유익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제가 가장 만족하는 건 예쁜 편집인데, 스프링제본이라서 한 페이지씩 넘기기도 편합니다. 32일 공부 분량에다, 20챕터(스페인어로 capítulo)를 배분했고, 개별 카피툴로 밑에 4개 정도의 세부 unidad(영어의 unit)가 다시 깔려 있습니다. capítulo는 antepenultimate 강세에 유의해야 하겠는데, 만약 저기 강세가 없다면 "나는 항복한다"라는 뜻의 동사가 되어 버립니다. 교재에서 세심하게 표기한 기호, 다이어크리틱 하나하나에 독자들은 신경 써서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capítulo 04의 unidad 02(p100)를 보면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단어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교재에서 이렇게 따로 정리한 걸 저는 개인적으로 자주 보지 못했는데, 하긴 원래 스페인어 단어장 교재 자체가 드물기는 합니다. tener una buena actitud라는 표현은 "좋은 태도를 가지다"라는 뜻이라고 나옵니다. 영어의 해당 표현과 겉모습도 꽤 비슷하죠. tratar bien a alguien은 "~를 잘 대하다"라는 뜻인데, 페이지 오른쪽 칼럼에 보면 예문으로 En el trabajo todo el mundo me trata bien.이 나오네요. 여기서 trabajo가 직장이라는 뜻이며, todo el mumdo가 특징적인 표현인데, 같은 페이지에 바로 설명이 나오지만 이게 "모두, 모든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영어의 everyone처럼 얘도 대명사 취급을 하며 3인칭 단수로 받습니다. 그래서 이 예문의 동사도 trata, 3인칭 단수 현재형입니다.

capítula 06의 unidad 04(p163)을 보면 시험과 성적에 대한 단어들이 정리되었습니다. examen parcial이 중간시험이라는 뜻입니다. diploma는 수료증 또는 자격증이란 의미인데 스페인어가 아니라 해도 이 단어의 뜻이 어느 언어에서나 비슷합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certificado도 자격증, 수료증, 증명서 등의 뜻을 갖습니다. 자기소개서는 carta de presentació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p192). 스페인어권 유학을 처음 준비할 때 이런저런 사이트의 안내 페이지에서 많이 접했을 단어들입니다.

capítulo가 끝날 때마다 여러 가상의 인물들이 나와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코너가 있습니다. 이 코너의 제목은 ¡muéstrame lo que sabes!인데 그 뜻은 실력을 보여 줘!라고 한국어로 바로 풀어 두었습니다. lo que가, 영어로 하면 복합관계대명사라서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알다"라는 뜻의 동사 saber의 2인칭 단수 현재형입니다. 이걸 만약 영어로 옮긴다면 what(ever) you know 정도이겠는데, 우리말로는 "네가 아는 것"이겠습니다. 또는, sabes 뒤에 hacer(영어의  do)를 부정사처럼 덧붙여, "할 줄 아는 걸 보여줘"라고 쓸 수도 있습니다. 코너 제목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 코너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 생생한 구어체 표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작동하다, 기능하다 라는 뜻의 동사로 영어에는 function이 있고, 비슷한 게 스페인어에는 p285의 funcionar가 있습니다. capítulo 10의 unidad 04, 가구 및 집안용품 관련 단어 설명 중에 나옵니다. sillón은 의자라는 뜻이고 소파는 sofá는 스페인어로도 소파라고 합니다. tender la ropa는 "옷을 널다"라는 의미인데, 단어나 구절 밑에 귀여운 일러스트가 함께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영어의 robe하고도 모습이 닮았는데 어원이 같아서 그렇습니다.

스페인 하면 또 패스트패션 트렌드를 이끈 자라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매번 저렴이 옷만 입을 수는 없고 때로는 명품이나 브랜드 의류도 좀 걸치고 싶습니다. 스페인어로 브랜드라고 하면 그 표현이 capítulo 15, unidad 02, 407페이지에 나오는데 marca라고 합니다. 영어의 mark하고도 모양이 닮았죠. 포인트 적립 카드라는 표현도 있는데 tarjeta de cliente라고 한다네요. 특정 고객에게 그 실적이 계속 누적되는 게 기록이 되는 카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이처럼 스페인어 교재에 본래부터 자주 나오는 표현들도 있고, 여행 등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표현들도 있어서 효용 범위가 넓습니다. 스페인어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두루 쓰므로 한번 배워 놓으면 가성비가 정말 좋은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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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스팟 - 인생의 숨은 기회를 찾는 9가지 통찰
샘 리처드 지음, 김수민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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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치는 일을 직분으로 삼는 이, 예를 들어 대학 교수 같은 분이 스스로를 "배우는 사람"이라 칭한다면, 정말 겸손하신 성품의 한 증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 저자 샘 리처드 교수님 같은 분이 그러한데, 그는 이 책에서 우리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했었으나 차마 밖으로 꺼내 표현하지 못한, 그러면서도 나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그 무엇을 "스위트 스팟"이라 부릅니다. 누구나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고,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이룬 후에도, 정작 내게 가장 소중한 걸 놓쳐 버려, 마음은 황량한 사막처럼 텅 비었다면 그 이룬 성취가 다 무엇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나만의 스위트 스팟을 지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전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성비 만점인 비밀의 행로를, 샘 리처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역시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p80을 보면 저자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보면,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진학 경쟁이 펼쳐지는 등 어렸을 때부터 생존 경쟁이 장난 아닙니다. 주변에 보면 항상 잘나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득실득실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서 기 죽을 필요 하나 없습니다. 왜? 나 안에는 나조차도 몰랐던 거대하고 풍요로운 우주가 살아 숨쉬면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우주는 그 어느 잘난 친구도, 직장 상사도, 대기업 회장님도 갖지 못한 나만의 보물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나의 우주를 찾아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꽃을 피워내는 그 사람이 바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p129에 보면 아이코노클래스트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상 파괴자라는 뜻인데, 기독교 특정 종단에서는 매우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영어 사용 국가들은 과거에 대개 프로테스탄트 계열이므로 이 단어는 매우 개척적이고 진취적인 뜻을 갖는 게 보통입니다. 근세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도 4대 우상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앎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깨뜨려야 나의 진로가 열리고, 참다운 나의 가능성을 내 자신이 그 누구보다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타인을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나부터가 근거 없는 미신, 우상에 사로잡혔으니 남에 대해서도 공연히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포용하십시오." 그래야 나의 우주도 내 눈에 더 잘 보이게 됩니다.

p173을 보면 저자는 "리더십이 곧 팔로워십"이라고 말합니다. 남을 이끌려는 사람은 먼저 남을 섬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도 일찍이 servant leadership을 말한 바 있고(성경에 대놓고 그런 말은 없지만 이후 많은 신학자들이 정리한 개념이죠), 부처님도 자신에게 배우기 전 먼저 변소(화장실) 청소부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비우고, 에고를 지우고 세상을 포용하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참된 나의 우주도 찾아지는 법입니다. 세상은 본래 위아래가 없는 법이라 남을 깔아뭉개려는 자는 결코 남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p176 같은 곳에서 저자가 한국을 언급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은 리더십보다 팔로워십이 강조되므로 팔로워 만으로도 의미있는 경력 쌓기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진단입니다. 우리들은 그게 당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 말이 특별하다는 걸 모르지만 미국, 영국에서는 리더가 되어야 번듯한 커리어가 형성되니 그게 차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카페 이벤트에 나오는 자계서를 보면 그렇게나 리더니 리더십이니를 강조하는 거죠(담론이 다 서양권에서 만들어졌으니). 저자는 이런 동아시아 사회의 미덕을 서구권도 좀 배워야 한다고 이미 이 책 서문에서부터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점차 미국 회사의 구조를 각 직장이 닮아가니 미국식 리더십의 장점을 또 수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프레임을 사회학에까지 도입하면서 개인은 자유의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미리 구조가 만들어 놓은 구조에서 의식이나 행동이 못 벗어나기 일쑤라고 주장했죠. 이 책 p285를 보면 저자는 (그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독자인 제가 알 수 없으나) 사회적 복제인간(social clone)으로 시스템이 마련한 틀에서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합니다. 남을 인정하고 소통하되 나만의 소중한 세계를 발견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이를 심화하라는 저자의 가르침을 우리 모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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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스피치 스피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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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으며, 실제로 로마 제국은 방대한 정복지를 순조롭게 다스리지 못하고 혼란 끝에 동서로 분열했습니다. 무력만으로는 기층 민중의 자발적인 순응, 충성을 이끌어내지 못함을 증명하는 유력한 사례입니다. 이 책 띠지에서 이어령 선생은 말합니다. "칼과 돈의 위력과는 달리, 말의 힘은 상대방을 스스로 무릎 꿇게 합니다." 꼭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관계와 협력을 지속성 있게, 건강하게 이어가려면 위력이나 탐욕, 매수 등이 아닌 진정한 교감과 공감이 간절히 요구됩니다. 이어령 선생 3주기를 맞아 기획된 이 책에서, 강의(록)를 통해 다시 만나는 선생은, 말의 새로움과 참됨을 통해 우리 겨레가 대립을 지양하고 창조와 화합의 길로 나아갈 것을 힘차게 권유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1을 보면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중앙공무원 교육 강연에서 남긴, 길면서도 통찰 가득한 명연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선생은 GND에 대해 언급하는데, grand new deal의 약자입니다. 지금까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흑백논리가 이끌고 온 우리 사회라면, 이제는 각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져 모두가 융합하고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새로운 창조와 화합의 경지가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선생은 그전부터 디지로그, 즉 정확한 측정과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디지털, 그리고 감성과 미학의 가치를 중시하는 아날로그의 통섭을 일찍부터 주장한 적 있습니다. 이렇게 평소부터 그 지론으로 치밀하게 완성한 고유의 담론이 단단히 구조를 구축했기에, 어디서 어떤 강연을 하셔도 일관되고 교훈적인 가르침이 가능하신 듯합니다.

이러한 창조, 즉 미증유의 생성과 화합이 가능하려면 말, 이 말이란 것의 위력에 기대어야 합니다. 말이야말로 겨레와 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그 안에 품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선생은 워드 파워, 소프트 파워라고도 부릅니다. p126을 보면 이런 말의 힘을 전 민족과 공유하고 개개인의 창의를 분출하게 만드는 리더의 출현이 무척 절실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은 새 밀레니엄 첫번째 베이비의 탄생을 방송에서 중계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밝힙니다.

사실 선생은 TV에 무척 자주 출연하셨던 편인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당시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열정을 다해 그 인문적 의미를 시청자들과 함께 부여했다고도 하죠. 이 강연은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 회의에서 펼쳐진 건데, 새천년의 불이 아직도(이 연설 당시 기준) 타고 있는 호미곶에서 이를 어떻게 운반할지를 두고 자신이 기여하신 바를 자세히 말씀합니다.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한국 지방 행정의 경직성,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은근히 일침을 가하는 선생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그런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정신, 영혼이 현실의 옹색함 앞에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겠습니까.

"에디슨은 최초로 빛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었지만...(p156)" 괴테는 죽기 전 유언으로 "빛을, 더 많은 빛을...!"을 입밖으로 되뇌었다고 하죠. 선생이 생전에 강연과 저술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포인트가 빛, 광명, 밝음과 생성의 에너지였다고 기억합니다. 만인이 화합하고 대동 공존해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창조와 창의만큼은 원맨쇼라야 하며, 창조를 투표로 결정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다는 게 선생의 힘찬 논지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독(獨)과 창(創)은 자주 함께 어울리며 상호친화적입니다.

모직은 털 모(毛), 짤 직(織)을 한자로 씁니다. 그래서 단위의 길이가 짧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대목(p201)을 읽으며 선생께서는 참 모르시는 게 없다 싶었습니다. 식물에서 뽑아내는 섬유는, 반대로 원하는 만큼 길이를 뽑아낼 수 있고, 이 식물섬유와 동물성 옷감의 싸움에서 산업혁명이 비롯했다고도 합니다. 이 강연은 인사이트 창간 10주년 포럼에서 행했다고 나오는데, 역시 선생님다운 원대한 시야가 돋보입니다. 천재이자 현인의 통찰과 진단은 이처럼 적확하고 심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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