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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이야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오정화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1월
평점 :
지브리스튜디오는 전 지구인들에게 따스하고 벅찬 감동을 주는, 멋진 컨텐츠를 여태 만들어 온 업적만으로도 세상에 끼친 공헌이 지대합니다. 당장, 오픈AI의 챗GPT만 해도 임의의 이미지를 지프리풍(風)으로 바꿔 주는 서비스를 통해 점유율을 크게 높였고, 한국인 상당수의 프사가 바뀐 걸 우리들도 지금 놀랍게 체감하는 중입니다. 뻔한 전략으로 전형적인 감정선 자극을 노린다는 비판 정도로는, 까다로워진 현대인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스즈키 도지오[鈴木敏夫] 대표가 치밀하고 권위 있게, 자격을 갖추고 편집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브리가 꾸준히 명작을 만들어 온 지난 세월을 그윽히 돌아볼 수 있고, 아울러 (지브리 컨텐츠에 의해 건강해지고 따뜻해진) 우리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지브리 관계자 여러 명의 참여와 진술, 협조를 통해 집필되었습니다. 따라서 책임편집자 스즈키 도지오 대표도 3인칭으로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일본에는 스즈키라는 성씨가 (저 한자 표기까지 동일한) 아주 많이 분포하므로 스즈키라고만 하면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지브리 대표이사이자 사실상 이 책의 저자인 그분이 맞습니다. 저는 작년 12월에 픽사 CEO인 피트 닥터가 쓴 <인사이드 아웃 아트북>을 읽고 후기를 쓴 적 있는데, 우리가 아는 그 캐릭터 그 스토리가 사실은 기획 과정에서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바뀔 뻔했는지 상상하며 제법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스즈키 대표와 그의 동료들이, 세상 사람들과 관객들과 함께 더 밀도 높게 공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p80을 보면 우리도 잘 아는 <추억은 방울방울>이, 제작 과정이 두 번이나 중단되고 심지어 aborted될 뻔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리고 그가 신임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 勳] 등이 일정이 맞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가졌음이 확인되고 그 차이가 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형 기획 하나를 발주하고, 재주꾼들의 열성과 창의를 모아 작품 하나를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게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추진력으로 기어이 극장에 무엇 하나를 걸 수야 있겠으나, 우리가 영화사(映畵史)에서 익히 봐 왔듯 심지어 당대 예술장인인 감독의 소신 그 결과물이라 해도 기록적인 실패(fiasco), 심지어 파산 사례는 그리 드물지도 않게 봅니다.
1983년에 미국 스필버그 감독의 <E.T>라는 저예산 SF물이 예상을 깨고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 인형을 아이들마다 갖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으며 어른들도 영화 안에 든 깊은 휴머니즘 메시지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이 책 p187을 보면 1997년에 지브리가 만든 <모노노케 히메>가 일본 안에서는 저 14년 전의 <E.T>를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지브리의 소중한 심장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문제까지도 부수적으로 해결했다는 재미있는 평가도 책에 나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부터해서 그 후에도 여러 명작을 만들고 관객들을 만족시켰습니다.
스즈키 대표와 미야자키 감독은 지브리 미술관을 건립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간 이 회사가 쌓은 금자탑들을 더 체계적이고 장엄하게 감상, 평가할 공간을 마련합니다. 이 역시도 예삿일이 아닌 게, 부지 확보부터 해서 그저 자금이나 아이디어, 그간의 넉넉한 성과물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했기 때문입니다. 미타카[三薦] 시(市)라고 해서 도쿄 인근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향적으로 협조 의사를 밝혔고, 부담 조건부 기부 형식으로 해서(우리식으로는 기부채납) 미술관을 시유(市有)로 두되, 그 운영은 지브리 측이 주도하는 공익재단이 맡는 형식이었습니다. 이게 1998년~2001년 사이에 모두 마쳐졌는데, 일본의 행정 그 청렴성과 도타운 문화 풍토에 부러움을 느끼게도 되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노구교 사건(일본의 자작극)을 기회로 터지고, 장개석 정부는 패퇴를 거듭하여 중경(충칭)까지 쫓겨갑니다. 일본은 당시 엄청난 폭격을 임시수도 충칭에 퍼부었는데 이때의 참상을 담은 사진이 인터넷에서도 많이 유통되어 우리 눈에 익습니다. 이처럼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우월한 항공 전력을 보유하게 된 데에는 비행기 설계자들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는데, <바람이 분다>(이 책 p384 이하)에서는 이것 관련한 이야기가 주요 배경을 이룹니다(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중국(피해자 측)과의 관계를 세심하게 고려하는 등 여러 애로가 있었음이 술회됩니다.
무려 스즈키 대표가 직접 저작명의를 올린 책이니만큼 지브리 팬들에게는 머스트해브 아이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