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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가의 상자 -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만화 영화 같은 일상
스즈키 마미코 지음, 전경아 옮김 / 니들북 / 2025년 2월
평점 :
원 이런 책이 다 나오나 싶어서 받아들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원제는 이 책 겉표지에도 나오듯이 <鈴木家の箱>이며 우리말 번역제목 그대로입니다. 스즈키 가문이라니 어떤 스즈키를 말하는가? 지브리 대표 스즈키 도시오의 큰따님 마미코[實子. 일본인이라서, 實이라는 글자가 우리와는 다른 모양입니다] 씨가 자신의 집안과 지브리에 대한 여러 사연을 솔직히 털어 놓은 책입니다. 저자는 지브리 컨텐츠 일부에 본인의 기여를 남기기도 했고, 과연 그 피가 어디 안 간다고 문화 관련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에서 열심히 사는 분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가 궁금한 건 과연 스즈키 대표께서 집에서는 어떤 가장이고 아빠였을까 하는 점이죠. 책 앞부분에 자세히 나오고, p74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오는데 아빠와는 달리 엄격하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타입이라고 저자는 회고합니다. 사실 스즈키 대표가 지금 따님한테 받는 "같은 집에 사는 타인"은 스즈키 대표 또래의 일본 대부분 남성, 나아가 한국의 그 세대 가장들도 공유하는 이미지입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경제 성장이 가팔랐던 시기, 속한 회사의 과중한 업무와 책임감에 짓눌려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는 거의 돈 벌어오는 기계로 인식이나 되고,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이한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국외자. 하지만 본심이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p102를 보면 저자의 사치스러운 고민(?)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자인 저는 남자지만, 이 책을 읽을 여성 독자들도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을 텐데, 사실 이런 체형은 고민거리이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이자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저는 저자가 은근 "흘리기" 의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신 듯하지는 않고, 이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듯 꽤나 솔직한 성격이시기 때문에(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정말로 학생 시절 그런 고민이 가득했던 회고가 아닐까 하는 게 제 개인적 결론입니다. 궁금하신 지브리 팬들은 직접 읽어 보면 되겠습니다. 다음 챕터에 이어지는 (축소) 수술 이야기도 솔직하니까 이렇게 적을 수 있는 거겠고 말입니다.
아이들의 심리란 미묘합니다. 노부코(實名일까요? 한자로는 信子라고 쓸까요?) 이야기가 p164 이하에 나오는데, 이런 걸로 급우에게 시비를 건다는 게 우습지만, 애들이 못되게 군다는 게 대체는 이런 유치하고 안타깝기까지한 동기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합니다. p171에 보면 (어른이 된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는데(사실일까요?), 그렇다해도 사춘기 당시에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단언하는 걸 보고 사람인 이상 생각은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도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두 할머니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마미코 씨의 양친이 대조적인 성격이었듯(이렇게 만나는 커플들이 많죠), 마미코 씨의 두 조모도 대조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글쎄, 남자의 경우에는 조부와 특별한 감정적 유대를 언제나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치부라든가, 말못할 고민을 손자가 조부에게 털어놓는다거나 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게 자주 가능한데... 외할머니는 쇼와 시대 조신한 여인의 대명사 같은 점잖은 분이었고(그러니까 엄마가 잔소리쟁이고 까탈스럽게 굴었겠죠?), 반면 친할머니는 괄괄하고 대단히 직설적인 스타일었나 봅니다. 싸움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 p215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p228을 보면 확실히 친할머니 성격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 며느님(즉 저자의 모친)에 대한 언행만 봐도 그렇습니다. 세상 어느 자녀라도 누가 자신의 엄마한테 저렇게 구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후... 그런데 따님께서 이런 난감한 이야기까지도 책에서 다 공개하시는데, 스즈키 대표가 혹시 개인적으로 난처한 일은 없었는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까지는 아니라도, 스즈키라는 예술 장인이자 위대한 프로듀서에게 이런 개인사(간접적으로 추론이 되죠)가 있었나 싶어서 흥미로웠던 이야기 보따리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