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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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간다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어려서 엄마, 아빠만 알던 아이가 또래들과 소통하고 긴밀한 정서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격도 성장하고 감정도 더 풍부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작은 책은 모두 13단계로 구성되었는데, 표현 하나에 9개 국가 언어가 같이 딸려옵니다. 예전 같으면 9개 국어를 배워 봐야 일생을 두고 어디다 써먹을까 회의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챗GPT 등이 있어 말을 번역도 해 주겠지만, 기왕이면 사람이 직접 자신의 영혼을 담아 정겨운 말투로 말을 건넨다면 사람 간의 마음이 더욱 도탑게 오갈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3챕터에는 QR코드가 달려 있어서 원어민들의 발음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원어민들의 발음을, 아직 선입견 없이 깔끔하게,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어른은 이게 안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자주 들려 줘야, 나중에 발음기호나 다른 보조 수단 없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인사 "안녕!"은 아마도 모든 언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표현이겠는데, 프랑스어로는 봉쥬르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한국 제빵 브랜드인 "뚜o주르"도 tous les jours, all the days라는 뜻이라서 이 단어 jour가 들어가는 표현입니다. 정작 good day 같은 영어 인사 표현은 호주 등에서만 많이 쓸 뿐이니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도 hello!가 대표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챕터 4에서는 같이 놀자는 표현을 배웁니다. jouons ensembles라는 게 프랑스어의 표현인데, "쥬옹 앙상블"이라 발음합니다(책에 한글로도 써 놓았습니다). 동사 jouer의 1인칭 복수 명령형인데, 영어에는 명령형이 2인칭에만 있고 그나마 형태가 원형과 같습니다. 따라서 영어만 배운 이들은 복수 명령형 활용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let's 형태가 있을 뿐인데 이건 다른 사역동사의 힘을 빌린 것이지 자체 활용(conjugation)이 아닙니다. 독일어도 영어와 비슷하여, lasst uns zusammen spielen!에서, lasst uns는 영어의 let us와 완전히 같습니다. lasst는 lassen의 2인칭 복수형이며 예전 같으면 laßt로 쓰였겠습니다. 아무튼, 어린이용 책이므로 복잡한 문법 사항은 알 것 없고,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바를 자꾸 듣고 표현이 상황에 따라 척척 나오게끔 연습하는 게 최고입니다. 

포르투갈어는 재미있게도 vamos jogar를 쓰는데, 스페인어로는 같은 페이지에 juguemos(후게모스)라고 책에 발음도 정확하게 나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스페인어로는 간략하게, jugar가 1인칭 복수 격변화하여 표현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구태여 vamos를 조동사처럼 끌어들여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와 같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언어인데도 이런 패턴은 영어와 비슷하게 생성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기본어휘만 놓고 보면, jogar(포르투갈어)와 jugar(스페인어)도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것만 놓고 보면 방언의 차이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넌 할 수 있어! 아이한테 힘을 주는 멋진 말입니다. 영어로야 You can do it!이며, 요즘은 어린이들도 아주 유식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통해 다른 언어 표현도 함께 공부하는 건데, 이탈리아어로는 puoi farcela!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puoi는 potere의 2인칭 단수형인데, 이게 영어의 can과 같은 조동사입니다. 조동사이므로 뒤에 farcela라는 동사원형이 왔습니다. potere는 영어의 potential 같은 말과 어원이 같으며 possum이라는 라틴어의 직계 후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tu puedes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본동사가 따로 안 온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포루투갈어로는 conseguir라는 동사가 따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tu consegues!라고 책에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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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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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행만 추구하는 브랜드보다 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p54)." 브랜드는 그저 듣기에, 발음하기에 좋은 음소 몇을 모아 놓은 단순음향이 아니라, 창업자와 그의 승계자들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를 압축해 둔 한 마디의 기업헌장입니다. 그러니 현대의 소비자들이 어찌 브랜드의 지향성을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 민은선 대표는 말합니다. "유행은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니 유행에만 기대는 기업은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여 민 대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기업만이 영속할 수 있으며, 기업은 따라서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지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는가? 저자는 자신이 업계에 데뷔할 무렵에는 열정, 감성 등의 요소가 높이 평가받았으며, 이런 요소들이 패션 그 자체로까지 여겨졌다고도 회고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진리라면, 그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어야 했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물론 열정은 소중한 요소이지만,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토종, 혹은 해외 브랜드의 많은 예들이 열거되는데, 무엇이 행동이고 무엇이 철학이며 또 무엇이 단순 열정에 불과했는지를 독자들이 읽으며 확인 가능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같이 정보가 흔한 사회에서는 일반 소비자들도 어떤 기업이 말뿐이며 어떤 기업이 행동에까지도 나서는지 얼마든지 검토 가능한 세상이라는 점도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정부 예산이 대거 투입된 사업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습니다. 대구 중심의 섬유 공업이 사양산업화하자 고부가가치 구조로의 전환을 꾀했던 건데, 이 책 p126 이하에서는 그 시도를 실패로 규정합니다. 한국도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제조업이 크게 일어났던 나라이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모두 그런 과거가 남긴 흔적에 크게 빚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덩샤오핑의 영도 하에 본격 부흥을 시작했었으며, 이 책에서는 경남 진주(한때 세계적인 실크 원단의 본산 중 하나) 역시 신화직물의 폐업을 계기로 완전히 명성을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원단 산업이 근방에서 잘 지탱되어야 의류 섹터도 활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인사이트에 수긍하게 됩니다.  

외환위기 여파에도 알게모르게 생명력이 지속되던 곳도 있었습니다. 밀리오레, 두타 등이 흥했던 건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리모델링에 힘입어 쾌적한 쇼핑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몰(mall)들이 "자생적 컨텐츠 생산지가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으로 변질되면 상가는 투자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라고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왜 바이어들이 떠났는가? 더 이상 새로운 디자인과 상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p136). 

원가 타령만 하고 중국에 운명처럼 먹힐 수밖에 없었다고 자탄할 게 아니라 원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아이디어, 창의력이 샘솟듯 솟아야 하는데 그게 더이상 안 되니 쇠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동대문 업체들이 광저우에 가서 카피를 해 오는 현실이란 말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들(특별히 눈 밝은 이들)이 서울 남대문, 동대문에 와서 싸고 질 좋은 디자인에 감탄했었습니다. 한국은 원래 이런 걸 잘하는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과거에는 동대문 주변의 봉제공장들이 있어 배후의 공급기지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된 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니어들을 시니어라고만 부르는 것도 일종의 편견입니다. p190을 보면 better, not younger라는 브랜드가 소개되는데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젊어지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원숙미가 갖춰지면 충분하다는 철학의 압축이라고 하겠습니다. 패션+아트로 머추어한 콘텐츠를 만드는 도쿄의 긴자식스 예를 보며 우리 패션 산업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도 영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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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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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국어로 배우는 언어 표현, 세계 어린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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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
막심 로베르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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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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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 - 하 -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고전 아틀리에 4
최기재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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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4) 2월에 최기재 선생의 <치유의 언어> 상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또 재작년(2023) 2월에는 같은 저자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독후감도 썼었습니다. 이 하권은 2024년 6월에 발간되었으며 제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지금에서야 후기를 등록합니다. 또 이 책은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고전아틀리에 시리즈 제4권이기도 합니다. 

상권에서 저자가 공자를 잠시 분석한 후 <도덕경>과 <열자>를 심층적으로 해설했다면 이 하권은 <장자>에 집중적으로 분량을 할애하며 전개됩니다. 노장 사상, 도가의 개조가 이이, 즉 노자이긴 하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더 그 사조의 깊이를 더하고 더 친숙한 이미지로 어필한 사상가는 장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최기재 박사님은 <장자> 원문을 병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특유의 시원시원한 어조로 일관된 관점으로부터의 해석을 자구 하나하나에 적용하십니다. 

무용의 용(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신세를 서러워할 게 아니라, "쓸모 없는 그늘에 누워 쉴 수 있으니 이 또한 쓸모이다(p30)"라는, 잘 알려진 교훈입니다. 혜자(惠子)는 이 대목에서 쓸모 없는 박을 쪼개 버린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이에 장자는 답하여 말하길, 손등을 치료하는 약을 어떤 이는 돈 몇 푼을 받고 솜 트는 일꾼에게 팔 뿐이지만 어떤 이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을 돌보는 데 요긴히 활용하여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박의 쓸모를 졸렬하게 파악하여 기어이 쓰레기로 만든 혜자의 협량을 할난하는 데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소요(遡遙)가 곧 지락(至樂)이라는 장자 사상의 요체가 저자의 입으로 되풀이됩니다. 최 박사님의 지적대로 이 대목은 춘추전국시대 지사들의 유세(遊說)의 한 예화인데, 장자에게서 우리 독자들이 의외로 실용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면모를 엿보게도 됩니다. 

내편(內篇)에 보면 진인(眞人)에 대한 장자의 긴 논변이 있습니다. 도인, 신선 등을 소재로 삼은 민담을 보면 자주 나오는 단어이기도 한데 간혹 사이비종교의 경전에서도 접하는 말입니다. p158에서 장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초월하여 하나로 볼 줄 모르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파하는데 여기서 진인과 군자(君子)는 서로 통하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발뒤꿈치로 호흡한다는 구절이 인상적인데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 "인도의 요가 수행이 중국에까지 영향을 끼친 흔적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최 박사님이 각주에서 짚습니다. "부지런히 걸어간 사람"이란 뜻의 근행자(勤行者)란 언명도 우리 독자들이 곰곰 새길 만합니다. 

백락(伯樂)은 말을 잘 다스린 사람이었으며, 목수와 도공은 나무와 흙을 잘 다스리는 직분(p226)이라는 게 세상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 역시 많이 부족한 말들일 뿐이며, 천하가 어울려 돌아가는 이치가 어떻게 한두 사람의 재주로 가능하겠냐고 반문합니다. 도공이 고운 흙을 놀려 가마에 넣고 그릇을 빚는 게 기실 그 전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 나아가 불어오는 바람과 음양의 이치인들 그에 기여하지 않았겠냐는 것입니다. 대동(大同)의 큰 의미를 새길 때, 자연 안에서 결국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늘과 교통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상권에서도 그러했지만, 저자는 수시로 유가(儒家)의 경전 <논어(論語)>에서 여러 구절을 뽑아 "필사하기" 코너에 배치하여 독자의 학습을 돕는데, 여기서는 자로(子路)편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발췌하여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선행은 남들이 모르게 완수해야 그게 참된 선행이며, 남들 다 보란 듯이 크게 목소리를 높이면 그게 어디 선행이겠냐는 뜻입니다. p283을 보면 송나라의 탕(蕩)이 장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장자는 과연 그답게 "인은, 이리와 호랑이가 곧 인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는 유가의 가르침 중 인(仁)을 비판하는 의도이며, 범이나 이리도 부자(父子)간에 서로 친하니 그를 어질다 못할 바가 어디 있겠냐는 반어입니다. 소위 삼강(三綱)이라 하여 상하간의 서열이 분명히 정해져 있고 위에서 아래에게 선심이나 쓰듯 어짊을 작위하는 건 전혀 어짊이라 할 수 없다는 호된 꾸짖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63에는 서무귀(徐無鬼)가 여상(女商)을 따라 위(魏)나라의 무후(武候)를 찾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의 관상, 고양이의 관상을 논하며 진실로 세상사에 달통한 사람은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는데 무후는 서무귀와의 회견을 마치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여상은, 자신이 시, 서, 예, 악을 논하고 육도삼략을 설파했을 때도 주군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 그같은 하찮은 변설로 높은 이의 마음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듭 묻습니다. 서무귀(가상의 인물)는 무후가 진인의 기침 소리조차 듣지 못한 지 오래였으나 이제 비로소 참된 인간의 담론을 접하고 기뻐하지 않을 리 있겠냐며 답을 대신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사실 언어의 상론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태도와 눈빛, 처신 자체가 모두 뜻이 깊은 가르침이며, 이를 알아본 무후 역시 예사로운 군주는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책 곳곳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던지고 있으며, 실제로 서강대에서 출제되었던 논술 기출 문제들도 수록되었으니 수험생들이 심화 학습 교재로 활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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