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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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권의 저작에서 뽑은 에센스 중의 에센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문학자이자 문학가인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무척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혹 선생의 열렬한 추종자, 팬이라고 해도 그 모든 책들을 일일이 읽고 소화하기란 힘듭니다. 다작을 한 문필가의 모든 결과물을 톺아보는 일이란 참 만만치 않은데, 예를 들어 지금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인 세계사에서 박완서 전집을 일찍이 펴낸 적이 있고 저도 소장 중인데, 아직도 다 읽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대한 정신의 소산 그 핵심만을 추려 읽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로 고마운 일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바는, 이어령 선생은 문장을 문단이나 챕터, 개별 저작으로부터 고립시켜(추출하여) 읽어도 그 하나하나가 명언이며, 어떤 의도로 하신 말씀인지 뜻이 명확히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맥락과 분리되면 뜻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정반대로 왜곡될 수도 있는데, 이어령 선생의 문장과 명언은 그 자체로 잘 읽히고, 이렇게 에센스 포맷으로 접할 때 거꾸로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힙니다. 제 짐작으로, 이어령 선생은 처음부터 글을 이렇게(의식적으로) 쓰시는 분이며, 마치 수학의 프랙털 구조처럼, 부분을 보면 전체가 유추되고 또 전체로부터 부분이 짐작되는, 천재만의 입체적 역동적 글쓰기가 가능한 분이었던 듯합니다. 이 책 서문의 제목은 "어록은, 이어령이 쓴 일행시다"입니다. 이 서문은 선생의 천생배필이셨던 강인숙 여사가 쓰셨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던 고인류(古人類)입니다. 선생은, 원숭이나 다를 바 없었던 이들이 무덤이라는 걸 만들어 죽은 동료를 기리고, 놀랍게도 그 안에 꽃가루를 넣었다는 사실(p92)에 주목합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어느 원숭이가 무덤에 꽃을 놓을 줄 안단 말인가?" 원숭이는 고사하고 사람 역시도 해야할 도리를 하지 않는 자가 부지기수지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로 이런, 무덤에 꽃을 둘 줄 알았던 원숭이부터 갈라져나온 영혼들입니다. 다만 여기서 독자인 저는 망자에 대한 예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본성, 사후 세계에 대한 명상 등에 초점을 두어 읽었는데, 책에서 이 대목의 제목을 뽑기로는 "아름다움"으로, 그 미학적 측면을 더 중시한 듯합니다.

"무언극, 그것은 침묵으로 이룩한 음악이다(p202)." 저는 여태 책프에 참여하며 이어령 선생이 아직 30대였던 시절에 쓴 희곡 몇 편을 읽고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선생이 희곡 창작에 한창 정열을 쏟을 때는, 유럽(특히 프랑스)에서 외젠 이오네스코 같은 (공산권 루마니아 출신) 작가가 연극 문법 종래의 것을 모두 해체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추송웅씨 같은 배우가 1인극, 판토마임 등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뭔지도 모르면서 겉멋만 들어 자신이 연예인인 양 착각하는 미친 노파도 수원에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이 언명은, 특히 그가 성의를 들여 창작했던 희곡 여러 편을 염두에 두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요약하길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p331에서 이어령 선생은 "한 가지 위에만 오래 앉은 새는 그 삶이 참으로 편하겠으나, 대신 어떠한 생기도 즐거움도 딱히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먹이와 쉼터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한 자리에 안주하면 결국은 도태됩니다. 세상을 벌벌 떨게 한 사라센 제국, 오스만, 몽골, 브리티시 엠파이어도 결국은 달콤한 현실에 만족하고 멈추면서 쇠락의 길을 밟았습니다. 선생도 특히 21세기들어 디지로그 같은 책을 쓰며,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담론을 무척 일찍부터 체계화하여 설파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정신을 언급한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그 어떤 사상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우리 민족만의 장점과 개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리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권으로 읽는 이어령, 방대한 이어령 유니버스(?)의 주요 경영인이자 지분권자인 강 여사님이 그 편집에 관여하셨기에 더욱 권위 있는 멋진 원 볼륨 데퍼니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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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 이정하 산문집
이정하 지음 / 마음시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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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책!" 이 책을 보여 주니 제 주변에도 알아 보는 이정하 작가님 팬들이 많으며, 저도 25년 전에는 그저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작품을 이번 기회에 다시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시회의 기존 문학서들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양장본입니다. 시대가 흘러도 빼어난 문필가의 감성은 여전히 빛나며 독자의 마음을 섬세히 터치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인본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바꾸면 주소록 바꾸는 게 또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정하 작가님은 솔직하게, 새 핸드폰에 누굴 옮기고 누굴 이참에 (버리는 폰에) 남겨놓을지 고민하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만약 당사자들이, 내가 사람의 가치와 친밀도와 효용을 빠른 속도로 채점하여 생살부처럼 추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착잡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님은 우리 속물들과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아예 낯선 이름(p28)이 다 있는 걸 보면 그와 얼마나 격조했는지 새삼 느끼는데, 그래도 이 이름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한번 불러 주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비로소 불러 주어 꽃이 된 그의 이름(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이정하 시인은 일단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봅니다. 이게 시인과 우리들이 다른 점이지요.

"슬픔은 방황하는 사랑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p38 이하에 실린 짧은 산문의 저 제목이 그닥 가슴을 후벼판다거나 하지 않고, 당연한 말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랑이 제 갈 길을 못 찾고 누가 나 좀 저 안에 들여 주었으면 하며 지레(?) 방황하는 이들(나를 포함하여)은 그저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산문에서 정작 포인트는 그게 아니라, 성가대의 "그애"가 유독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김 선생님"의 존재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뭐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제3자가 끼어들기에 항상 아프고, 방황하고, 눈물짓고, 마침내 먼 어디로 가기까지 하는 사단이 터지는 거죠. 물론 문제는 저 김 선생님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인 내가 다 떠안습니다. 김선생님은 그냥 유유히 상황을 즐길 뿐이니 이보다 더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휴.

그래서 시인은 절규합니다. 잠깐만이라도 그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길!(p44) 마약 중독이나 기타 나 외의 무엇에 족쇄가 채워져 끌려다니며 괴로워하는 이들. 사랑이고 뭐고 내가 지금 이렇게 미치도록 괴로운데 소망이든 "너"이든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초라해도 별은 여튼 자신만의 빛을 낼 줄 안다지만, 내 안의 빛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해 마치 스스로를 불태운 지귀(志鬼)의 신세처럼, 마지막 초라한 tantrum에 에너지를 모두 쏟고 티끌로 사멸할 뿐입니다. 해로운 중독의 끝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그 대상이 사랑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너를 사랑하지. 널 이렇게 보고 있는 동안에만(p73)." 바로 이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정하 시인께서 속한 그룹인 그시절 X세대의 사랑법입니다. 서로를 만질 때 용광로처럼 뜨겁게 사랑하다, 이제 시들하다 싶으면 delete 키를 눌러 삭제합니다. 이 세대에게는 이별할 "권리"가 있었고 그래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과연 시인께서는 그시절 범상한 젊은이들과는 다른 빛깔의 영혼이셔서, 헌신, 몰입, 희생이라는 지난 시대의 가치를 잠시 살짝이라도 주시할 줄 압니다. 그게 바보스러움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게 저 역겨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속물스러움과 무지와 무책임함과 천박함을 열심히 휘날리고 비호감을 적립하던 언필칭 포스트모던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입니다.

아, 나한테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허울 아래 나는 그녀를 새장(p159) 안에 가두려 하지 않았습니까? 의심이 있는 곳에 사랑이 깃들 수 없듯, 그녀 역시 나의 구속복과 수갑 아래 너무나도 답답해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했다면, 그녀의 마음이 딴 데 가 있어도(p166) 그대로 놓아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리우스처럼 내 눈을 부시게 하던 그 혹은 그녀가 마침내 평범(p168)해 보이기 시작할 때, 나 역시 비로소 자유를 찾고 중독에서 벗어나며 살아야 할 진짜 이유(p119)와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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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해커스 투자자산운용사 한권합격 핵심개념 + 적중문제 - 본 교재 인강ㅣ무료 바로 채점 및 성적 분석 서비스ㅣ이론정리+문제풀이 무료 특강ㅣ하루 10분 개념완성 자료집ㅣ필수암기공식
백영 외 지음 / 해커스금융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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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께 해커스에서 나온 투자자산운용사 최종핵심정리문제집을 리뷰했었습니다. 지금 이 신간은 제목이 약간 바뀌었습니다만 큰 틀에서 보면 그 작년판의 맥을 잇는 교재입니다. 이 책 외에, 같은 집필진이 쓰신 최종실전모의고사 책도 있으니, 이론은 그만하면 됐고 문제나 빡세게 돌리자 싶은 수험자라면 그 책을 대신 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작년판 리뷰에서도 말했듯, 1권+2권 분책이 가능하지만 자동 분책은 안 되고 면도날로 조심스럽게 작업해야 합니다(꼭 분책하고 싶다면). 2권에 제3과목 핵심정리가 들어간 점도 작년과 같은데 아마 분량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문충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나서,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대표 유형 문제가 위에 제시되고, 그 아래 적절한 해설이 나오는데 이 해설 파트를 핵심개념정리용으로 쓰면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금융관련자격증 교재가 이런 편제입니다. ★ 표시는 출제 빈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집필진이 매긴 중요도일 수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후자입니다. 이 표시는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은 학습자가 자기 나름대로 플랜을 짜서 문항, 사항별 취사 선택을 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한 권 정도는 빠짐없이 남김없이 마스터해야 한다는 주의지만, 사람 일이 언제나 그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교재 맨 앞의 권장 학습계획을 보면 4주, 2주를 남겼을 때 각각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예시가 나옵니다. 단 4주만에도 투자자산운용사 대비 완성이,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제2과목 중 레버리지 분석에 대한 문제가 중요도 ★★★으로 p239에 나옵니다. 제2과목은 투자운용 및 전략/투자분석인데, 왜 제2과목의 명칭이 이렇게 되었는지(제1과목은 금융상품 및 세제[稅制]입니다) 궁금하게 생각하는 수험생도 있던데, 시험 제도의 통합 연혁 관련해서 이런 사정이 생겼습니다. 제가 작년판 리뷰에서 언급했으므로 참조하실 수 있겠네요. 아무튼, 페이지 하단에 깔끔하게, 재무레버리지와 결합레버리지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으니 이걸 읽기만 해도 무엇인지 개념이 잡힙니다. 결합레버리지의 정확한 개념을 알려면, 바로 앞 항목 영업레버리지도(DOL)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정확하게는 재무, 결합레버리지도 뒤에 도(度. degree)가 붙어야 하며, 이 교재는 영어 원어를 같이 써 놓고 있어서 수험생이쓸데없는 곳에서 헷갈리지 않게 배려합니다.

세무사나 CPA만큼은 아니지만 세법 과목은 아무래도 전공자에게건 문외한에게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1과목 이름은 투자상품및세제이지만 순서는 세제가 더 앞에 나옵니다. 배당소득 파트에서 가장 어려운 건 그로스업 설명 부분인데, 작년판 리뷰에서도 제가 자세히 언급했더랬습니다. 과연 이 2025년판이 작년판과 대조해서 많은 부분이 개정되었을까 궁금해서 제가 작년판도 옆에 같이 펼쳐 두고 검토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이 25년판 표지에 보면 100% 신규문항이라고 자신있게 강조한 문구가 있는데, 사실 투자자산운용사 시험 자체가 대폭으로 기본 사항이 개정되지는 않으므로 교재가 꼭 매년 대개편을 할 필요는 없는데, 이 정도로 개편되었다는 자체가 역시 수험생의 현장 요구에 귀기울인다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인 셈이라 뭔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끄제 미국국채시장 금리가 폭등한 게 일본인들이 청산을 시작해서라는 분석이 있었는데(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 등에서는 그게 아니라 상품으로서 미국 국채가 그만큼 위치가 취약해져서, 일본이고 뭐고 간에 각국(미국 포함)의 투자기관, 큰손들이 미국 국채를 슬슬 작별하는 징조라는 해설을 내놓았습니다. 그것 관련해서 p175, 제2과목 투자분석에서 채권차익거래 항목 관련 문제가 나옵니다. arbitrage transaction이야말로 투자의 예술이 그 진면목을 발휘하는 국면이며, 매번 뉴스나 증권사의 리포트만 보고 아 그래서 그 일이 터졌나, 아니 여기서는 반대로 말하는데? 라며 이리저리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이처럼 기본 이론(다 학부 수준입니다)을 꼼꼼히 공부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마련하여 본인 판단 하에 투자를 해 나가면, 재미도 있고 자기책임투자 원칙도 지켜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3과목에서도 CAPM이라든가, CML 같은 재무관리 과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멋진 이론들이 문제화하여 수험생들을 기다리니 긴장을 놓지 않고 머리를 풀가동해야 합니다. 증권시장선(SML)에 대한 이론은 p672, 11번 항목에 나옵니다. p675에는 베타에 대한 문제가 나오는데 이 문제 하나만 풀어 봐도 주식방송에서 애널들이 나와 대체 베타 베타 거리던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출제가 실제 되는 사항들만 잘 추려 문제화했으므로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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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싱가포르 - 최고의 싱가포르 여행을 위한 가장 완벽한 가이드북, ’25~’26 최신판 프렌즈 Friends
박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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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수백 년 전부터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20세기 들어서도 말레이시아로부터의 극적인 독립 과정을 거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부를 누리는 선진 도시국가입니다. 지금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절묘한 지정학적 균형을 잡으며 실리를 취하고, 화려한 과거도 과거지만 미래가 더 기대되는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82에는 싱가포르에 놀러갔을 때 쇼핑에 참고할 만한 좋은 정보가 제시됩니다. 슈어홀릭(shoeaholic)이란 말은 한국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두루 통하는데 여성들이라면 이 페이지에 나오는 "꼭 슈어홀릭이라서가 아니라 여성 쇼퍼라면 공감할"이란 문구에 눈길이 절로 갈 만합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명소는 "찰스앤키스"인데 키스가 kiss가 아니라 사람 이름인 Keith입니다. 싱가포르가 위치한 곳이 기후대가 기후대이다 보니 다음 페이지 "바샤 커피" 같은 곳도 원두와 완제품을 고르기 좋은, 이름난 샵입니다. 

p156 이하를 보면 올드시티가 소개됩니다. 올드시티에 대한 설명으로 "콜로니얼 풍"이라는 말이 (꼭 이 책뿐 아니라) 싱가포르 특정 구역에 대한 형용사로 자주 쓰입니다. 영국인들이 싱가포르를 장악하고 새로 건설한 시가지인데, 이에 비해 뉴타운은 20세기 들어, 특히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 식민 지배를 끝낸 후에 본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같은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가 아직도 수도를 (식민지 시절에 세워진) 뉴델리에 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기능하는 것과 살짝 대조됩니다.

p167에는 사부어 레스토랑, 레이 가든 등의 맛집이 소개되며, 특히 홀리 크랩이라는 재미있는 간판의 식당도 있습니다. 물론 holy crap이란욕설과는 철자도 발음도 다르니 오해 없어야 하겠지만 사장님이 짓궂다는 생각이 매번 드네요. 책에는 트렌디한 메뉴로 젊은층에게 인기 많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가 보면 인테리어도 그렇고 추구하는 방향성은 좀 보수적입니다(제 개인적 평가입니다).   

p254에 보면 부기스와 아랍스트리트가 소개되는데 저자님의 말대로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라는 점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리콴유 수상이 중국계라서 싱가포르는 중국계 엘리트들이 꽉 잡고 있는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수백년 영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애초에 무슬림 상인들이 중세 때부터 무역의 이점으로 이곳을 찾았으니 당연합니다. 프렌즈 시리즈 고유의 특징으로 깔끔한 쇼핑 지도가 잘 정리되었고 원래 이 구역이 저렴한 쇼핑으로 높은 평가가 나온다고도 소개됩니다. 리콴유 수상도 독립 당시에 이슬람 시민들에 대한 배려와 정치적 존중에 무척 공들였습니다.

우리가 바로 위의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대해 인도차이나라고 부를 때, Indo-라는 형태소가 다름아닌 인디아를 가리키는 뜻입니다. 이 일대는 과거에 인도의 문화적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고, 다만 그 영향이라는 게 마우리아 제국, 쿠샨, 굽타 제국 등 강력한 불교 정책을 편 통일 정치 단위가 들어섰을 때에 한정되었다는 게 유감일 뿐입니다. 호라산에서 발원한 이슬람 대륙 세력이 새로 10세기부터 인도 아대륙을 석권한 이후에는 인도가 동남아시아에 끼친 영향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275 이하에는 리틀 인디아라는 구역이 여전히 독특한 인도 문화의 색채를 뽐내며 21세기에도 관광객을 반갑게 맞습니다.

p331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소개되는데 이게 오사카에도 있고 제가 작년 9월 프렌즈 오사카 편을 리뷰하며 언급한 적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고작 도시국가이고 그 좁은 곳에 테마파크를 지을 데가 어디 있겠나 싶은데, 센토사 섬이 대략 백사십만 평(서울대 관악캠퍼스보다 조금 넓죠), 그 중에 육만 평을 점유합니다. 참고로 싱가포르 전체 면적은 220만 평 정도이며, 서울보다 40만평 정도(여의도의 1/3) 더 큽니다. 싱가포르 여행에 필요한 알짜 정보가 잘 정리된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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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존 R. 히빙.케빈 B. 스미스.존 R. 알포드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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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한국이나 극심한 정치적 분열 때문에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국가에서는 다른 이가 나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며, 이미 성장을 멈춘 죽은 공동체가 아닌 이상에야, 시민들은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슈를 어떻게 다른 시민과 다뤄 나가는지를 실전을 통해 배우며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내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메타적으로 바라볼 생각이 들었다는 건, 곧 내 개인적 신조와 성향이 절대 진리, 종교적 교의가 아님을 긍정하는 첫걸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정치 성향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그 신체 기관 중 어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지를 따지자면 아마도 대뇌일 것입니다. 그래서 p34에서는 편도체, 뇌섬엽, 해마, 전방 대상회 피질 등 뇌과학에서나 쓸 법한(사실은 대중 자계서에도 자주 나오지만) 용어들을 원용하여,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이 사실은 어떤 해부학적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지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특히, 심리학 용어인 동기화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란 말에 주목하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겉으로는 사안 별로 모두 별개의 인식 틀이나 논리 도출을 행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처음에 형성된 사고 습관이나 기존의 선입견이 반복 작동되는 데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동기화가 synchronized가 아니라(同期化), 처음에 부여된 동기(motivation. 動機)를 따른다는 의미임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p112를 보면 자동증(自動症. automatism)이란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서, 우리들 대부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이식된 무의식, 습관, 선입견, 집단 가치관 등에 지배되며 일상의 매순간 뭘 일부러 의식하고 일일이 다른 결정을 내려서 행동하고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반사는 대뇌까지를 거치지 않지만, 조건 반사는 대뇌를 거쳐 그 사람이 여태 살아온 과정과 사연을 반영합니다. 이어 책에서는 대단히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이, 사실은 뜻밖에 그 사람 뇌 안에 생긴 종양 때문이었음이 밝혀집니다. 그렇다고 이런 취향을 가진 모든 환자, 범죄자가 다 뇌종양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닐 것입니다. 여튼 허무하게도, 뭔가 숭고하고 불가해한 이유 때문에 정치적 신념이나 성향이 생겼거니 여겨도, 사실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을 이 부분 논의는 지적하려 합니다. 

p180 등을 보면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도출합니다. 대체로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 즉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진영에서는 긍정적 이미지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모두 강화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지성보다는 감성적 반응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주의, 반응, 인식 등에 이런 성향의 차이가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정보의 획득과 활용에까지 차이를 낳게 하는지에 대해 책은 논의를 이어갑니다. 루치아나 카라로가 주도한 이탈리아 학자들의 연구와, 이 책 저자들의 연구가 비슷한 듯 다르게 대비되어 정리, 서술되므로 독자들은 이 맥락을 잘 찾아서 읽는 재미를 높일 필요가 있겠네요.

아무리 프랑스의 젊은 세대가 학교에서 PC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그 심층에 흐르는 호오의 감정이나 본능적인 반응에는 후천적인 노력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나 봅니다. p214를 보면 블레즈파스칼대학교 연구진이 세바스티앙(백인)과 라시드(아랍인)의 사진을 보여 주고 측정한 반응을 보면, 대부분이 백인인피실험자들에게서 아랍인에 대해 더 경계하는 전기적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치적 태도와 행동에 생물학적 요인이 (마치 운명처럼) 작용한다는 다소 씁쓸한 결론은 이 책 전체를 통해 시시컬하게 유지되는 편입니다(전적으로 긍정되는 건 아니라 해도). 대립 유전자, 다형성 영역, AVPR1a 유전자 구간, 1바소프레스 수용체(펩타이드 호르몬의 일종) 등의 개념을 적용하여 전개되는 논의는, 운명론과 정치성향 사이의 상관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탐구하도록 돕습니다. p325 이하에 전개되는 "두 도시 이야기", 컨서베이턴 이론(가상의)은 저자들의 논의에 인문적 깊이를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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